1. 음식물 알레르기 검사(혹은 지연성 알레르기 검사나 IgG4 검사)를 권유받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권위 있는 알레르기 학회에서는 해당 검사가 진단적 가치가 없으므로 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EAACI (유럽 알레르기학회), CSACI (캐나다 알레르기학회) 및 AAAAI (미국 알레르기학회))
2. 이전 글 류코트리엔(싱귤레어) 편에서 비만세포가 히스타민을 방출함으로써 본격적인 알레르기 반응이 시작된다고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한데, 알레르기 반응은 우리 몸이 침입자에 대항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라 보기에는 어쩐지 너무 절박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비만세포에서 히스타민을 방출하는 모습부터 마지막 수단으로써 자폭을 선택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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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몸에는 외부 물질을 감지하고, 무단 침입을 알리는 감시 시스템이 있습니다. 면역 글로불린이라고 불리는 이 단백질들은 마치 등산을 하고 나면 바지 밑 단에 가득 붙어 있는 도깨비바늘처럼 Y 자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행동 방식도 어쩐지 비슷합니다. 두 팔로는 침입자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면서 몸통에서는 비상등을 점등해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4. 한데, 알레르기 반응에 관여하는 면역 글로불린 IgE는 범용적이지가 않습니다. 딱 한 가지의 표적만 두고 만들어집니다. (감작과정) 그래서 땅콩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IgE는 다른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혈액으로 하는 MAST 검사도 수십 종의 용의자 알러젠에 혈액을 하나하나 반응시켜 범인을 색출하는 방식입니다.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 일반적이지 않은 드문 항원이 범인이라면 비싼 금액을 지불해도 MAST에선 나오지 않으니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됩니다.
5. 알레르기 반응의 개시도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알러젠이 IgE에 감지된다고 바로 히스타민이 방출되는 게 아닙니다. 꼭 두 IgE 분자가 하나의 항원에 동시에 연결될 때 비만세포의 히스타민 대 방출이 시작됩니다. 이건 마치 핵잠수함에서 어뢰를 발사할 때 함장과 부함장이 함께 키를 돌리는 그 장면과도 비슷합니다.
6. 이렇게 알레르기 반응, 즉 히스타민이 방출되기 시작하는 것부터 까다롭게 검증하는 것은 사실 IgE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려 준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IgE 면역반응은 원래 기생충 감염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7. 기생충은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전혀 차원이 다른 침입입니다. 일단 사이즈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예를 들어 소고기를 통해 감염되는 무구조충의 경우 길이가 4~12m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크니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대식세포가 먹어 치우는 방식으로 면역작용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하나의 어엿한 생물체이다 보니 껍질도 단단합니다. 이걸 세포 수준에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8. 그래서 이런 심각한 침입에 대비해 준비한 특수한 면역 단백질이 바로 IgE입니다. 침입자를 감지한 IgE가 알람을 울려 부르는 친구들도 다른 면역단백질들과 다릅니다. 바로 호산구(Eosinophil)입니다. 이 비장한 세포는 ‘부가적인 피해 (collateral damage)’를 감수하더라도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 부대에 가깝습니다.
9. 유명한 알레르기 증상들 즉, 비만세포가 일으키는 작용도 실은 기생충에 대항하기 위해 준비된 것들입니다. 온몸에서 점액을 분비함으로써 기생충이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것이 콧물, 눈물, 침입니다. 기관지를 수축시키거나 장을 경련시켜 기침이나 대변을 통해 얼른 밖으로 뱉어내게 유도합니다. 무엇보다 혈액을 떠다니던 호산구가 침입한 기생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 얼른 도달할 수 있도록 혈관 벽을 벌려줍니다. (빠져나가야 하니까요) 그 탓에 피부는 붓고 코는 막히고 간지러워집니다.
10. 특수부대 호산구가 기생충에 대응하는 방식이 바로 자폭입니다. 호산구는 기생충 표면에 달라붙어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e)등을 분비해 기생충의 단단한 껍질을 녹여냅니다. (탈과립 degranulation 전략) 녹여내고 침투한 호산구는 최대한 기생충 조각을 머금고 자폭합니다. 자폭한 호산구의 잔해는 출동한 대식세포들이 처리합니다.
11. 그러고 보니 제가 알레르기 반응이 절박해 보인다고 말씀드린 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나요? 알레르기가 마냥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우리 몸은 알레르기로 너무 많은 피해를 감수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무방비인 것 같은 좌절감도 듭니다. 과연 우리 몸에서는 다른 대책은 세우지 못하는 걸까요?
12. 침입자에 대항하는 일반적인 감시체계 중에는 IgG라는 면역 글로불린이 있습니다. IgG 또한 IgE처럼 B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동일합니다. B세포는 질병관리청처럼 외부침임에 대항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합니다. B 세포가 어떤 종류의 면역 글로불린을 생산하는지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여러 정보 (사이토카인)을 통해 결정됩니다.
13. IgG라는 명칭은 낯설지 몰라도 사실 우리에게 제법 익숙합니다. 먼저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끝마친 뒤 항체가 생겼냐 안 생겼냐 피검사로 확인할 때 보는 것이 바로 이 IgG입니다. 임신 전 검사에서 아이에게 해로울 수 있는 감염병의 항체가 준비되어 있는가, 없다면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가를 판정하는 것도 역시 이 IgG를 통해서 결정됩니다. 면역학적으로 백지에 가까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력 또한 엄마의 IgG가 태반을 통과함으로써 전달됩니다.
14. 그러니까 IgG는 급성 감염 이후에 만들어진 "비상 대응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특정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침입 이후 성공적으로 면역 반응을 마무리하면 우리 몸은 성실하게 매뉴얼을 만들어 이후를 대비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인 IgG,4형은 이상합니다. (G1, G2, G3, G4가 있음) IgG4는 1960년에 발견된 아형 중 하나로, 총 IgG 중 겨우 5%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드문 면역 단백질입니다.
15. IgG4는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도대체 뭘 위해서 만들어졌는지가 의문이었던 존재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면역 글로불린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라면 외부 물질의 침입을 빨리 감지해 알람을 울리는 경보장치입니다. 그런데 IgG4는 검출은 매우 잘하는 반면, 경보를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IgG4에 걸린 외부물질은 면역 작용의 대상에서 피해 갑니다. (비염증성 특징)
16. 이게 가능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복잡하긴 하지만 면역 글루불린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경보장치 면역 글루불린은 문제가 되는 원인물질에 부착하기 위해 Y 자 형태의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려진 두 팔로는 침입자를 꼭 붙잡고, 도망치기 전에 다른 면역 세포들을 불러 모으려 큰 소리로 '여기 침입자다!'라고 목청 터져라 소리 지르는 겁니다.
17. 근데 IgG4는 항원과 결합해도 다른 면역세포와 결합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실 수 있듯이 IgG4의 몸통 부분은 C1q 및 Fcγ 수용체에 대한 결합 친화도가 낮아 면역 복합체를 형성하거나 보체 경로를 활성화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NK 세포나 대식세포가 하는 제거 작용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체반응을 일으키거나 면역복합체를 이루지도 않습니다.
18. 게다가 더 웃긴 것은 IgG주제에 마치 IgE처럼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IgG들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입을 관장하는 Th1 세포의 지시로 B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IgG4는 뜬금없이 Th2 세포의 신호를 받아 B세포에서 만들어집니다. 예상하셨겠지만 Th2 세포는 알레르기 반응, 즉 기생충 침입을 대응하는 팀입니다. (Th2 면역 반응의 일부이며, IL-4/IL-13에 의존하는 B 세포의 클래스 전환을 통해 생성)
19. 그 결과 IgG4는 IgG주제에 꽃가루나 땅콩과 같은 알러젠과 결합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혹시 IgE를 잘 못 본 것 아닌가 했더니 어엿한 IgG 답게 태반을 통과해 아이에게 전달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IgG4에 결합한 알레르기 항원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가?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몸통의 구조는 또 IgG 형이라 IgE처럼 비만세포와 결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FcεRI가 아님) 가장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이리저리 다니면서 서로서로 두 팔을 서로 교환해 항원은 또 두 종류씩 결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 그 결과, IgG4는 IgE와 알레르기 항원을 놓고 경쟁하는 듯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서로 다른 두 종의 알레르기 항원을 쥘 수 있는 IgG4라니, IgE에게는 꽤 강한 경쟁상대임은 분명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