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코트리엔 길항제
1. 두드러기나 비염에 효과가 좋은 항히스타민제는 왜 천식 치료제로 쓰이지 않는 것일까요? 같은 알레르기 질환인데도 말이지요.
2. 편두통 약, 이미그란 정에 대해 쓴 글에서 최초의 편두통 치료제는 호밀빵에 핀 곰팡이(맥각)에서 추출되었다는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어고타민은 혈관을 수축시키는 효과가 강해서, 뇌혈관이 팽창하여 시작되는 편두통에 아직까지도 치료제로 곧잘 쓰이고 있습니다. (크래밍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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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느 날, 한 과학자가 맥각에서 어고타민을 추출하는 실험을 하던 중 어고타민과 전혀 다른 성질의 물질을 우연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 물질은 하는 일이 어고타민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실험동물에다 주사해 보니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쑥 떨어뜨렸고, 기도는 꽉 막혔으며, 두드러기가 올라왔습니다. (마치 알레르기 반응처럼요!) 1936년 노벨상 수상자 헨리 데일 (Henry Dale)은 이 물질이 과민 반응, 즉 아나필락시스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실로 역사적인, 히스타민의 발견이었습니다.
4.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히스타민은 맥각과 같은 외부에만 있지 않고,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생산되고 보관된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비만 세포(Mast cell)는 외부 침입자에 대항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 히스타민을 알레르기 항원이 들어오는 순간, 확 쏟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쏟아져 나온 히스타민은 혈관을 넓히고, 분비물을 늘려 콧물이나 가래를 만들고, 신경을 자극해 가려움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5.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던 알레르기의 비밀이 처음으로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히스타민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낸다면 비염이나, 두드러기나,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연관 증상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6. 1942년. 드디어 최초의 항히스타민제 안터간(Antergan)이 프랑스에서 개발되어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모든 알레르기는 정복될 것!"이라고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대로 두드러기나 콧물에는 항히스타민제가 기가 막히게 잘 듣는데 유독 천식 환자에는 효과가 참 없었습니다. 특히. 기관지가 수축함으로써 생기는 증상, 숨 가쁨에는 항히스타민이 거의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7. 1979년, 마침내 이유가 밝혀집니다. 천식은 히스타민 외에 다른 면역 인자가 작용하고 있었고, 그 물질이 지속적인 천식 증상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이었습니다. 외부 자극에 의해 비만세포 등(호산구, 호염기구)에서 분비되는 것은 같지만, 히스타민처럼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순식간에 배출되지 않았고, 자극을 받은 비만 세포가 합성해서 내어놓는 물질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 물질에 반응한 폐는 기관지가 더 수축하고, 끈적끈적한 점액이 더 많이 분비되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류코트리엔이었습니다. (당시에 처음으로 붙은 이름은 SRS-A, Slow-Reacting Substance of Anaphylaxis, 아나필락시스를 유발하는 느린 물질이었습니다.)
8.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류코트리엔은 천식의 근본 원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류코트리엔에 작용하는 몬테루카스트 등은 스테로이드만큼 천식 치료에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운동성 천식이나 아스피린 유발성 천식과 같이 스테로이드보다 유리한 것으로 보고되는 질병도 있으나 대부분은 스테로이드를 보조하는 정도이며 스테로이드 흡입치료를 하는 환자에게 류코트리엔 조절제로 변경할 경우 질병 조절이 안된다고 주의를 남기기도 합니다.
9. 그 이유는 우리 몸의 염증 반응은 매우 복잡해서, 류코트리엔을 차단하더라도 다른 염증 물질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천식은 어느 한 경로만이 문제가 되어 발생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이고 상이한 원인들로 비슷한 증상이 일어나는 질환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10. 한 예로, 비만 또한 천식을 유발하는 큰 원인 중에 하나인데 비만형 천식은 일반적인 천식과 양상이 전혀 달라 스테로이드를 써도 천식이 잘 관리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알레르기 면역 반응이 아닌 전신의 만성 염증이 천식 증상을 유발하기 때문으로 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체내 염증을 조절하는 기전의 GLP-1Ra를 천식 치료에 써보려는 연구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11. 현재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약(몬테루카스트 등)은 류코트리엔이 결합하는 CysLT1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길항하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아예 류코트리엔 생산 경로 자체를 막는 질류톤과 같은 약도 있지만 간 부작용이 있어 우리나라에는 수입되지 않았습니다. 류코트리엔 경로를 모두 막는 질류톤은 아나필락시스 등에 쓰이는 치료제로 가능성이 보인다고 합니다.
12. 대표적인 류코트리엔 길항제(LTRA)로는 싱귤레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번만 먹으면 되어서 편리하므로 우선적으로 처방됩니다.
13. 다른 류코트리엔 길항제로 프란루카스트와 자피를루카스트가 있습니다. 특히 프란루카스트(상품명 : 오논, 프란테어츄정, 씨투스 등)는 하루에 두 번(아침, 저녁)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제법 처방이 느는 추세입니다.
14. 아무래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0년 3월 몬테루카스트로 인한 심각한 정신 건강 부작용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몬테루카스트가 뇌혈관장벽(BBB)를 통과할 수 있고 뇌의 수용체에 작용하며 불면, 악몽, 우울, 자살 충동 등의 성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5. 개인적으로 싱규레어를 자주 처방하는 편입니다. 몬테루카스트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고 은근히 효과도 뛰어나며 무엇보다 면역 조절에 있어 스테로이드 제제보다 거부감이 덜합니다. 특히 호쿠날린과 같은 툴로부테롤 (tulobuterol) 패치와 혼합하면 이른바 천식 '끼'가 있는 감기 환자에게 효과가 좋은 처방이 됩니다. 툴로부테롤은 벤토린과 같은 베타-2 항진제로 기관지 확장 효과가 있습니다.
16. 여러 임상 연구에 의하면 류코트리엔 조절제는 기관지 확장 효과가 약간 있고 기침 같은 천식 증상을 줄이며 폐기능을 호전시킨다고 알려졌습니다. 류코트리엔 조절제는 아스피린 과민성 천식 환자에서는 특히 효과적입니다. 생각에 보면 그 이유는 명확한데요. 아스피린이 다름 아닌 COX를 억제하는 식으로 작용하니 프로스타글란딘으로 가지 못한 염증 재료, 아라키돈 산이 전부 LOX경로로 몰려가 류코트리엔으로 싸그리 바뀌기 때문입니다.
17. 흡입 스테로이드에 부작용이 있는 환자나 알레르기 비염이 동반된 경우 류코트리엔 조절제는 좋은 대안이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류코트리엔 조절제의 단독 사용은 저용량 흡입 스테로이드보다 효과가 적어 이미 흡입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천식 환자가 류코트리엔 조절제로 바꾸면 천식이 조절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흡입 스테로이드에 추가하여 사용하면 스테로이드 용량을 줄일 수 있고 저용량이나 고용량 흡입 스테로이드로 조절이 되지 않을 때 류코트리엔 조절제를 추가하면 증상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추가 약물로서의 효과는 지속 흡입 베타 2 항진제보다 낮다고 평가됩니다.
(그러니까 천식 환자라면 흡입제는 필수입니다!)
18. 체내에서 류코트리엔은 저녁에서 그다음 날 아침까지 많이 만들어지므로 싱귤레어는 저녁에 먹으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더불어서 바로 효과가 나지 않고 당분간 먹어야 수용체에 접합함으로써 증상을 호전시킵니다. 먹자마자 효과를 발휘하는 항히스타민제와 차이나는 점이므로 '뭐 먹어도 별 효과 없네' 싶으시더라도 꾸준히 드시도록 하십시오.
19. 그나저나 싱귤레어의 독특한 분홍색 사각형 모양은 MSD 머크의 아이디어였는데요. 특허권이 만료되어 많은 복제약(제네릭)들이 나왔지만 환자들이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여전히 싱귤레어와 비슷한 분홍색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은근히 입맛을 돋우는(?) 패키지라 저는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