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간간이 가슴이 쥐어짜듯 아파 관상동맥 CT를 찍었더니 동맥경화가 심해 치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당신은 스텐트를 넣을 것입니까? 약으로 관리할 것입니까?
1. 심장내과 의사, 특히 스텐트시술(PCI, 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을 해주시는 인터벤션 선생님들은 외과적 성향이 다분하시다고 말씀드려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극심한 흉통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환자가 시술 후 금세 멀쩡해져 미소 짓는, 드라마틱한 경과는 사실 다른 내과 질환에서는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경을 헤매던 환자가 재관류에 성공해 무사히 혈압이 잡히고 정상맥으로 돌아오면 서슬 퍼런 저승사자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구해낸 희열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다른 장기도 아니고 심장에 생기는 병이니까요.
2. 더불어 우위를 가릴 문제는 아니겠지만,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실로 도착한 뒤 시술이 시작될 때까지의 타임라인은 그 어떤 환자보다 급박합니다. '얼른 수술방 잡아!'도 필요 없습니다. 다른 검사 없이 심전도만으로도 결정이 나기도 하고 언제든지 시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니까요. 방사선을 쬐며 막힌 혈관을 힘겹게 뚫고 풍선으로 내경을 늘려 튼튼한 보강재 (스텐트)를 설치하는 과정이 위험하고 복잡하고 힘이 들긴 하지만 확실히 보람 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3. 그런데 의외로 이런 스텐트삽입술에 의문과 회의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막힌 혈관을 재관류시켜 든든한 보강재로 지지해 준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하고 매혹적인 방식이 의외로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아무래도 시술 자체가 워낙 위험하다는 데에서 가장 먼저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움직이는 심장에, 그것도 혈압이 오락가락하는 위급한 상황에도 해야 하는 시술이니까요.
4. 더불어 스텐트는 철로 된 엄연한 이물질이라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작용도 우려가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초기 스텐트는 우리 몸의 면역작용 탓에 다시 막혀버리는 일이 제법 잦았습니다. 앞서 다루었지만, 워낙 출혈은 치명적인 위기라서 혈소판 작용은 일단 활성화되고 난 다음에, 필요 없으면 녹이는 방식으로 진행되거든요. 혈관을 순찰하다 마주친 낯선, 반짝반짝한 스텐트는 혈소판을 흥분시키기에 딱이었습니다.
5. 이후 내막세포가 너무 과하게 증식하는 것을 억제하는 약물이 분비되게 만든 스텐트(DES)나 몸에 흡수되는 스텐트까지 개발되었지만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스텐트를 넣으셨다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혈소판제를 필히 잘 복용해야 합니다.
6. 하지만 그렇다고 스텐트만큼 확실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술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것이 분명한 급성 심근경색 환자나 관상동맥의 경부고속도로인 좌전하행관상동맥(LAD)이 좁아진 협심증 환자 등 PCI가 필수적인 분들은 물론이고, 약을 최대로 써도 흉통이 계속되는 환자나 누가 봐도 곧 막힐 것 같은 병변을 가진 분들을 두고 시술을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거든요. (전자에 해당하는 분들은 스텐트의 효과가 증명되었으니 이번 주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오랜 기간 심장내과에서는 어떤 환자(상황)까지 스텐트를 넣어줄 것인가? 가려서 넣어준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넣을 것인가? 가 논란이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처럼 혈관 조영술이나 CCTA에서 끊어질락 말락 하는 아슬아슬한 부위를 본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8.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관상동맥질환 환자 2,287명을 대상으로 스텐트를 넣은 군과 넣지 않은 군의 치료 효과를 비교한 연구가 2007년 NEJM에 발표됩니다. (COURAGE 연구) 참여자는 안정형 협심증이나 증상이 없는 관상동맥질환 환자로 인터벤션 실에서 항상 '넣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든 바로 그 환자들이었습니다.
9.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놀랍게도(혹은 실망스럽게도) 두 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망률과 심근경색의 발생뿐 아니라 심장병으로 인한 입원 등까지도 두 군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딱 하나, 흉통의 완화에서는 PCI 군 (스텐트를 넣은 군)이 우수하게 나왔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며 그 장점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막혀 있는데 어떻게 그냥 나오니?', '아프다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니?'라는 주장을 펼치던 분들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10. 하지만 이 연구로서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연구에는 비판할만한 여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트집을 잡고 싶은 부분은 약만 쓰기로 한 군의 1/3은 결국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약으로도 충분하다고, 치료가 된다고, 스텐트는 이제 필요 없다고 주장하려면 스텐트 시술을 받은 사람은 제외하고 판단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혹은 스텐트 시술을 받은 것을 실패로 간주하던지요.
11. 둘째로, 선택 편향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COURAGE 연구는 혈관조영술을 하고 난 다음에 환자를 분류했습니다. 그러니까 환자의 혈관 상태를 보고 난 다음에 연구에 참여시킬지 말지를 결정한 것이지요. 그 탓에 고위험군 환자들은 명단에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은 혈관 상태를 가진 사람에게 연구를 위해 ‘약만 먹고 버티세요’라고 용감하게 참여시킬만한 연구진은 드물었을 테니까요.
12. 사실 그렇게 제외된 환자들은 모두들 스텐트를 넣거나 수술을 받았을 테니 스텐트의 장점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실제로 참여의사를 밝힌 환자의 1/3은 등록 전에 제외되었는데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했다고 합니다.
13. 셋째로, 초기형 스텐트를 쓰던 때에 진행된 연구라 스텐트가 문제라고 지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초기 스텐트는 이물질로 인식한 혈관의 내피세포가 혈전을 만들어내거나 증식해서 금방 혈관을 막아버리는 일이 종종 생겼습니다. 2세대 약물 배출 스텐트 (DES)라면 다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14. 실제로 이후 시행된 10,62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조기에 재관류술(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가 받지 않은 환자보다 심장 관련 사망률이 더 낮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15. 그래서 스텐트가 당연히 뛰어나야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 과학자들이 연구를 다시 설계합니다. 일단 이번에는 아예 혈관조영술을 하기 전에 환자군을 무작위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나 연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심한 환자들만 가려서 모으기로 했습니다. 스텐트가 가장 유익할 수 있는 중등도 또는 중증 허혈 환자들만 대상으로 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연구가 바로 ISCHEMIA 연구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