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성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처방되는 이 약은 최근 당뇨 합병증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 페노피브레이트는 중성지방(TG)이 높게 나온 분들에게 일차적으로 처방되는 약입니다. 이 약은 중성지방을 절반 가까이 (25~50%가량) 떨어뜨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오메가-3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페노피브레이트는 HDL 콜레스테롤도 5~20% 정도 늘립니다. 한데 이런 효과를 보여주는데도 페노피브레이트는 심혈관 질환 예방효과가 일부에서만 증명되는데 그쳤습니다.
3. 페노피브레이트는 오메가-3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주로 중성지방을 낮추는 데 관여한다는 점, 이때 PPAR-α라는 단백질에 작용하여 효과를 낸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PPAR-α 단백질은 세포핵 안에 존재하는 전사 단백질로써 활성화될 경우 DNA 수준에서 작용해 다양한 효과를 나타내게 됩니다. 유전자에 작용한다니 지용성 호르몬인 코티솔의 전신적인 효과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페노피브레이트도 지용성 약제니 만큼 의외의 부분에서 효과를 나타냅니다. (참고로 리피딜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꼭 기름기 있는 음식과 함께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수프라는 개선한 약으로 그럴 필요 없음)
4. PPAR-α 가 지질 대사 측면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지금부터 에너지원으로 중성지방부터 쓰라'는 명령을 내린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PPAR-α가 활성화된 간과 근육세포는 저장된 지방을 먼저 태워 에너지로 쓰고, 말초세포에서는 LPL(숟가락)의 수가 늘어나 배달 중인 중성지방을 더 많이 덜어먹게 되므로 혈중 중성지방이 크게 감소합니다.
5. 페노피브레이트는 가끔 근육통을 일으키는데 그 이유가 중성지방 위주로 에너지 대사를 바꾼 탓일 수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가 편히 태울 수 있는 피루브산(포도당)에서 태우기 까다로운 지방산을 재료로 쓰려다 보니 산화적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겁니다. 게다가 페노피브레이트는 스타틴과 함께 처방되는 경우가 많은데 (복합제로도 발매됨, 프라바페닉스 등) 몇몇 분들은 부작용을 제법 겪기도 합니다. 스타틴과 페노피브레이트의 근육통 유발 기전은 달라서 중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페노피브레이트는 이른바 좋은 콜레스테롤, HDL 도 소폭 늘릴 수 있습니다. PPAR-α가 HDL의 뼈대가 되는 ApoA1 단백질의 합성을 늘리기 때문입니다. 숫자만 늘렸지 효과는 없었던 CETP 억제제 이후 HDL을 높이는 약은 페노피브레이트가 그나마 쓸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데 기전이 비슷한 오메가-3는 이런 효과 (근육통, HDL 콜레스테롤 증가)가 없는데, 그 이유는 페노피브레이트가 오메가-3보다 PPAR-α에 훨씬 더 강하게 결합하기 때문입니다.
7. 앞서 다뤘듯이 높은 중성지방(식후)은 렘넌트를 많이 만들어내고 이 렘넌트가 동맥경화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이 밝혀졌으므로 HDL마저 높여주는 페노피브레이트라면 당연히 동맥경화에도 효과가 뛰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성지방이 높고 HDL이 낮은 경향을 보이는 당뇨환자에게 페노피브레이트가 딱이었습니다.
8. 하지만 기대와 달리 페노피브레이트는 모든 당뇨환자에서 동맥경화에 일관된 효과를 보여 주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50~75세의 제2형 당뇨병(T2DM) 환자 9,795명을 대상으로 한 FIELD 연구에서 페노피브레이트 200 mg/day를 투여한 환자군은 대조군에 비해 관상동맥으로 인한 사망 및 심근경색의 발생 감소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후속 연구(ACCORD 등)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PA 4g으로 심혈관 질환 보호효과를 증명한 오메가-3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 (REDUCE-IT)
9. 아무래도 페노피브레이트는 LDL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데 썩 일관적이고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데 아마도 이것이 원인이 되었을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사실 페노피브레이트는 되려 LDL 콜레스테롤을 높이기도 합니다. 중성지방을 내어먹는 LPL(숟가락)이 늘어나다 보니 간에서 출하된 VLDL가 평소보다 빨리 LDL로 전환되며 혈중 LDL콜레스테롤이 소폭 늘어날 수 있습니다.
10. 다만, 그렇다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것은 또 아닙니다. LDL 콜레스테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아니고 LDL의 부피가 뚱뚱해진 것이니까요. 이는 오메가-3 가문의 DHA가 LDL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이유와 이어집니다. 실제로 페노피브레이트 복약 이후 LDL과 1:1로 매칭되는 ApoB는 비슷하거나 낮아진다고 밝혀졌습니다.
11. 한데, 동맥경화에서는 큰 재미를 못 본 페노피브레이트가 의외의 부분에서 특출 난 효과를 보였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FIELD 연구의 하위 연구에서 1,01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당뇨병성 망막병증에 대한 영향을 평가했는데 질병 예방 효과를 나타낸 것입니다.
12. 당뇨병성 망막병증 환자에서 페노피브레이트 투여군에서 위약 투여군보다 레이저 치료를 받을 확률이 31%나 낮았습니다 (페노피브레이트 투여군 164 명[3.4%] vs. 위약 투여군 238 명 [4.9%]; 위험비[HR] 0.69, 95% CI 0.56–0.84; p = 0.0002; 절대 위험 감소 1.5% [0.7–2.3]). 후속 연구인 ACCORD-EYE 연구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동일했습니다. 페노피브레이트는 당뇨병성 망막병증(DR)의 진행을 5년 동안 5.0%(p = 0.022, FIELD) 및 4년 동안 3.7%( p = 0.006, ACCORD-EYE) 감소시켰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기존에 망막병이 있는 환자에서 더 크게 나왔습니다.
13.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페노피브레이트의 당뇨망막병증에 대한 치료 효과는 뚜렷하게 입증됩니다. 당뇨환자 1,150명을 대상으로 한 LENS 연구에서는 당뇨병성 망막병증 또는 황반병증의 진행 빈도가 페노피브레이트 복약 군에서 185명 대 231 명으로 발생률을 26% 정도 떨어뜨렸습니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이러한 효과는 지질 강하효과와는 별개라는 점입니다.
14. 페노피브레이트는 PPAR-α 을 활성화시켜 당뇨환자의 망막세포에서 VEGF의 발현과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이러한 치료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혈액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선택적으로 투과시 키키 위해 특수하게 발달된 망막 모세혈관 구조가 고혈당이 지속된 탓에 망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BRB(blood retinal barrier)를 이루던 성상세포와 주위세포는 인슐린과 상관없이 농도차에 따라 포도당을 무한정 흡수하고, 과도하게 흡수한 포도당은 세포내부에서 폴리올 경로로 통해 비 효소적 해당과정을 밟게 되고 이로서 세포의 구조가 손상되고 혈관막 또한 망가집니다.
15. 밖으로 누출된 지점 너머의 영역에서는 새어 나가 버린 혈액 때문에 허혈(산소부족)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협심증의 발생기전과 비슷합니다. 차이라면 협심증이 막혀서 피가 안 넘어가는 것이라면 망막병증은 새는 바람에 피가 덜 공급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문제가 발생한 장소 너머, 산소와 영양분이 감소한 모세혈관에서는 VEGF(혈관내피성장인자)를 분비하고, 이 VEGF로 인해 부랴부랴 만들어진 신생혈관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탓에 출혈과 폐쇄를 반복하며 망막병증이 악화되는 경과를 밟았습니다.
16. 그래서 망막병증에 있어 항-혈관내피성장인자 (anti-VEGF) 주사를 쓰고 있습니다. 아플리버셉트(아일리아), 라니비주맙(루센티스), 베바시주맙(아바스틴) 등은 과다하게 나온 VEGF를 1:1로 결합해 작용을 막는 단일 클론 항체입니다. PPAR-α는 이 VEGF이 과도하게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므로 망막병증의 진행을 막습니다.
17. 실제로 당뇨인의 망막세포에 이 PPAR-α가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PPAR-α가 제거된 쥐는 망막 혈관의 누출, 백혈구 정체, 주위세포(pericyte) 소실, 모세혈관 변성 및 염증 인자 과발현 등 더욱 심각한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반대로 당뇨병 쥐의 망막에서 PPAR-α를 늘려주면 당뇨병으로 유발된 망막 혈관 누출과 망막 염증이 현저히 완화되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18. 더불어 모든 환자에게서 심혈관 질환 예방효과를 입증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중성지방이 높고 HDL이 낮은 환자(고 TG(≥204) + 저 HDL(≤34))에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페노피브레이트는 당뇨환자에게 여러모로 좋은 치료 옵션인 것은 분명합니다.
19. 사족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의아한 것은 PPAR-α 작용제, 페노피브레이트가 지방간에 효과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아예 주목도 못 받았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같은 PPAR계열인, PPAR-γ 작용제 TZD가 지방간염 개선 효과를 보였음에도 말이지요. 간에서 지방을 태우는 역할을 한다니 당연히 효과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페노피브레이트는 조직학적 개선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확실히 유전자 수준에서 작용하는 약들의 효과는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