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뼈가 너무 단단해져서 웬만해서는 부러지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골다공증 치료제는 이런 (현실판) 울버린의 비밀을 토대로 개발되었습니다.
2. 희귀한 유전질환, 반 부쳄 병(또는 경화골증)에 대해 들어보신 분이 계십니까?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뼈를 부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는 탓에 뼈가 엄청나게 딱딱해지고 두꺼워집니다. 일반인과 비교해 골 무게가 무려 4배나 더 나갈 정도입니다. 환자들은 그전까지는 모르고 지내다가 차가 박살 날 정도의 큰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부러진 데 없이 멀쩡한 것이 이상하여 그제야 각종 검사를 통해 진단되기도 합니다.
3.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이 질환은 네덜란드의 작은 섬마을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외부와 동떨어져 고립된 그 섬마을에서는 근친혼이 성행했습니다. 그 결과 뼈 형성에 관여하는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단백질이 바로 스클레로스틴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린다면 스클레로스틴은 뼈가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뼈가 흡수되는 것은 촉진합니다. (Wnt 경로 차단 → OPG↓ → 상대적 RANKL 우세) 더 쉽게 말씀드린다면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단백질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4. 예상하셨듯이 반 부쳄 병(경화골증) 환자들은 이 스클레로스틴을 만드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스클레로스틴 생산에 문제가 생깁니다. 스클레로스틴에 방해받지 않으니 뼈를 만드는 건축업자, 조골세포(Osteoblast)는 끊임없이 콜라겐을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콜라겐 1형은 단단한 철골구조가 되어 뼈를 지탱합니다. 더불어 Wnt 경로가 활성화된 결과로 OPG가 RANKL을 상회하여 파골세포(Osteoclast)가 오래된 뼈를 철거하는 것도 억제됩니다. 그 결과 반 부쳄병 환자들은 현실판 울버린처럼 뼈가 놀랄 만큼 단단해집니다.
5. 과학자들은 반 부쳄 병 환자들의 뼈가 부러지지 않는 비밀이 바로 스클레로스틴이 없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응용하면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마침내 스클레로스틴에 1:1로 결합해 무력화시키는 단일 항체 로모소주맙, 이베니티가 개발되었습니다. (로모소주맙은 PCSK9와 결합하는 레파타, 자유 IgE와 결합하는 졸레어, PD-1에 결합하는 키트루다 등과 원리가 같습니다.)
6. 우리 몸에서 뼈조직이 새로 만들어지려면, 일단은 "무조건 먼저 부서져야" 합니다. 노후화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문제와 비슷합니다. 땅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기존의 골조직을 무너뜨려 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새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반 부쳄 병(혹은 경화골증) 환자들도 지을 땅이 부족하니 턱이 커지고, 두개골이 두꺼워져서 뇌를 압박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7. 먼저 골의 대사 과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최초의 사건은 골세포(Osteocyte)가 ‘수리가 필요함’이라는 신호를 외부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압력을 받거나 미세 손상등으로 노후화된다면 골세포가 RANKL을 분비합니다. 이 RANKL 신호를 받은 파골세포(Osteoclast)가 ‘철거’를 시작합니다. 파골세포는 대식세포 계열인데, 신기하게도 여러 대식세포가 하나로 합체 (fusion) 해서 거대 다핵 세포(Giant Multinucleated Cell)가 된 상태입니다.
8. ‘철거’가 완료되면 그제야 ‘재건축’을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이 재건축 팀을 모집하는 역할도 다름 아닌 철거팀에서 합니다. 철거팀은 (무려) 줄기세포에서 조골세포(osteoblast)가 분화되도록 TGF-β와 BMP(골형성단백질)을 내어놓습니다. 조골세포에서 콜라겐을 만들어내는 경로는 다름 아닌 mTOR입니다.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골조직에서는 조골세포가 이득이지만 골 밖으로 나오면 '자멸 및 흉터 경로'가 됩니다. 실제로 조골세포가 만들어내는 콜라겐과 형질변환된 평활근세포나, 간경화에서 HSC가 만들어내는 콜라겐은 같은 콜라겐입니다.
9.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결론적으로 조골세포와 파골세포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듯 흑백 논리처럼, 혹은 인슐린과 글루카곤처럼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순차적인 또는 주종적인 관계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새 아파트만 떡 하고 생겨나서 들어갈 곳이 많아지길 바라지만 그전에 철거가 필히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10. 그래서 기존의 비스포스포네이트, 프롤리아 등은 ‘철거’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골형성 촉진제, 부갑상선 호르몬 (PTH) 테리파라타이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전의 골다공증 약들이 '감소되는 것을 막자'의 소극적인 목표였다면 테리파라타이드는 조골세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골밀도를 (무려)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생리적으로는 파골세포에도 작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PTH를 쓰면 CTX(골흡수 지표)가 상승함)
11.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그 마법을 이베니티, 로모소주맙이 해냅니다. 파골세포의 도움 없이 조골세포만 증진시키는 데 성공했을뿐더러 파골세포는 되려 억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베니티는 다른 약들이 수년에 걸쳐 올릴 수 있었던 골밀도를 복약을 시작한 몇 달 만에 단숨에 올려버리는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이걸 비교하자면 한마디로 재건축 아파트를 철거도 하지 않은 채 증축을 해낸 것에 가깝습니다.
12. 대표적인 FRAME 연구에서 로모소주맙 투여군은 대조군에 비해 요추 골밀도가 12개월 만에 약 13.1% 증가했고, 그 결과 척추 골절 발생 위험이 73% 낮아졌습니다. 골밀도의 증가는 테리파라타이드(PTH)에 비해 서도 유의하게 상승폭이 높습니다. (p < 0.001) 로모소주맙은 P1NP(골형성 지표)은 급증했다가 2~3개월 뒤부터 떨어지고 CTX(골흡수 지표)는 낮게 유지되는 패턴이 나타나 깎는 건 막으면서 만드는 것만 극대화(Anabolic Window)하는 데 성공합니다.
13. 한데 이렇게 이상적인 이베니티, 로모소주맙도 한계가 있습니다. 골다공증에 대한 치료는 이제 이베니티로 끝! 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베니티는 단 1년만 쓸 수 있으며 그 후에는 증축된 골이 철거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존 철거 억제제, 프롤리아 등을 연속해 써야 합니다.
14. 단 1년만 쓸 수 있는 이유는 스클레로스틴을 방해하더라도 곧 다른 방식을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철거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스클레로스틴에 의해 활성화된 Wnt경로는 DKK1 등 자체 억제 피드백이 작동되어 불활성 되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줄기세포에서 무한정 조골세포(osteoblast)로 분화되기도 어렵습니다. 풀(pool)이 한정되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파골과 조골이 분리되었던 (uncoupling) 상태가 다시 재균형(recoupling)을 이루게 됩니다.
15. 이런 재균형은 골다공증 환자의 입장에서는 서글프고 아쉬운 일이지만, 골의 건강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왜냐면 골은 단순히 우리 몸을 지지하는 지지대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필요한 무기질을 보관하는 은행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지지대역할로만 한정해도 파골과 조골이 반복되지 않으면 일어나는 무서운 합병증 또한 재균형의 필요성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16. FRAME 연구에서 이베니티를 쓴 환자에서도 심각한 골괴사(ONJ, Osteonecrosis of the Jaw) 및 비전형 대퇴골 골절(AFF, Atypical Femoral Fracture)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골괴사와 비전형 대퇴골 골절은 진즉에 철거가 이뤄져야 할, 녹물이 나오는 손만 대면 스러질 것 같은 낡은 아파트를 철거를 미룬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미세 균열을 수리하지 않은 채 방치하다 보니 뚝하고 부러지거나 입에 있는 세균들이 침범해 염증을 유발하고 괴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례 수가 적긴 하지만, ‘영원히 철거를 막는 것’은 골 건강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17. 더불어 8번에서 나온 내용에서 짐작하셨을지 몰라도 스클레로스틴은 골에서는 조골을 억제해 우리로서는 미운털이 박히지만 정작 동맥경화에서는 석회화를 막아내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스클레로스틴이 억제된 탓에 중막의 평활근세포(VSMC)가 골아세포처럼 분화되어 혈관벽에 칼슘을 침착시키는 것이죠. 실제로 이베니티를 쓴 환자들은 동맥 석회화가 진행되었고, 그 탓에 1년 이내의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앓은 환자에게는 이베니티가 금기입니다. (ARCH 연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