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다공증 (4) - 에스트로겐 (2)

by 예재호

1. 한 알에 182원밖에 안 하는 이 약이 얼마나 많은 유방암 환자를 구했는지 아십니까? 한데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약이 처음에는 사후피임약으로 개발되었고, 막상 써보니 되려 임신을 더 유발하는 황당한 결과가 나타나는 바람에 폐기될 뻔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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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HO에서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된 유방암 치료제, 타목시펜은 사실 실패한 피임약이었습니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방해하도록 설계되어 임신을 막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배란을 유발하는 결함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수용체에 결합하면 일정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다른 호르몬과 달리 에스트로겐은 지질 호르몬이므로 작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라, 의도대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에 실망한 제약사는 결국 이 약을 폐기하기로 결정합니다.


3. 한데,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아서 월폴이 회사를 설득합니다. 피임약으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유방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이죠. 당시 에스트로겐이 유방암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진 터라 환자들은 치료적 난소 절제술을 받고 있었습니다. 암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타목시펜이 유방암에 효과가 보일지 모른다고 기대했습니다.


ARHTUR.png 가장 왼쪽이 아서 월폴


4. 한데 그때의 타목시펜은 지금만큼 뛰어난 항암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럴 만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도 타목시펜은 호르몬 수용체가 없는 유방암 환자에게는 투여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당시 항암화학요법이 신기술로 각광받던 시절이라 암세포를 죽이는 게 아닌 호르몬에 작용하는 엉뚱한 기전의 타목시펜은 그리 주목받지도 못했습니다.




5. 크레이그 조던은 아서 월풀의 팀에서 일하던 약리학자였는데, 위기에 처한 타목시펜의 가능성을 믿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조던은 실험을 통해 타목시펜이 다른 항암제와 달리 반복적으로 투여될수록 효과가 누적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되도록 빠른 시기에 가능한 한 긴 기간 동안 타목시펜을 투여해 보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약물내성을 우려했던 사람들은 아서 월풀과 조던의 의견을 무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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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행히 항암제로서의 타목시펜의 가능성을 본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위스콘신 암센터의 폴 카본 교수는 조던의 이론에 동의했고 마침내 환자에게 타목시펜을 투여하는 임상연구가 시작됩니다. 조던의 짐작대로 장기간 투여한 타목시펜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타목시펜을 1년간 투여했을 때는 그리 효과가 없었지만, 5년간 투여했을 때는 재발률이 무려 50%, 사망률이 30%나 감소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였습니다. (최근에는 1~3기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여성 환자에게 10년간 보조 타목시펜 치료를 권장합니다.)


7. 첫 임상시험과 이후 시험의 결과가 차이 난 것에는 드디어 에스트로겐 수용체의 존재가 확인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975년 조던의 연구실은 같은 유방암 환자라도 에스트로겐 수용체의 유무에 따라 타목시펜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8. 타목시펜은 종양학 분야에 생물학적 지표, 즉 유방 조직의 에스트로겐 수용체 발현에 따라 치료를 개인화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이른바 표적 항암 치료가 시작된 것입니다. 타목시펜은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가지고 있고 성장에 에스트로겐이 필요한 유방암의 약 60~70%에서 효과가 있습니다.




9. 타목시펜은 블록버스터급 약물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여성이 아서 월폴과 크레이그 조던의 끈기와 집념으로 다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더욱이 타목시펜은 다른 화학요법보다 부작용이 적었습니다. 조던과 아서 월풀의 노력을 비웃었던 의사들은 사과했고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논리가 맞다는 게 증명되었고 성공에 취해 으쓱할 법도 한데, 조던은 타목시펜의 부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0. 조던 연구팀은 타목시펜을 주입받은 쥐의 자궁내막이 두꺼워지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임상연구에서는 지적되지 않았던 점이었기 때문에 장기 연구를 도와줬던 의사들은 그럴 리 없다고, 그의 우려를 노파심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더구나 자궁내막 역시도 에스트로겐 자극을 받아 커지는 조직이므로 타목시펜이 자궁내막암을 치료하면 치료했지 키울 리는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한데 쥐에게 유방암 세포주와 자궁내막암 세포주를 모두 이식하고, 타목시펜을 넣어봤더니 유방암은 완전히 억제했지만 자궁내막암은 발생했습니다.


11. 다시 임상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조던의 걱정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폐경 전 여성에게는 관련이 없었는데, 폐경 후 여성에게 타목시펜은 자궁내막 질환 위험을 높였습니다. 결국 조던은 자신이 개발한 타목시펜이 쓰이는 환자군을 축소하는 데 일조합니다. 조던의 발견으로 폐경 후 여성에서 더 이상 타목시펜은 일차 약제로 쓰이지 않습니다. 조던은 이 발견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이 한 일 중 가장 훌륭한 일 중 하나라고 자평합니다.




12. 타목시펜이 에스트로겐이 붙을 수용체를 차지해 버리니, 에스트로겐을 방해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결과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타목시펜은 에스트로겐에 의해 증식하는 유방암은 에스트로겐에 길항해 치료효과를 내지만 똑같이 에스트로겐에 의해 증식하는 자궁내막암은 유발합니다. 에스트로겐을 막으니 골다공증이 나빠질 것 같지만 반대로 타목시펜은 골다공증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같은 수용체에 붙는데 왜 조직마다 반응이 다를까요? 도대체 타목시펜은 에스트로겐과 친구인가요 적인가요?


13. 이 이질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조던은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SERM)라는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타목시펜과 같은 SERM은 조직에 따라 에스트로겐처럼 작동하기도 하고, 에스트로겐과 반대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SERM은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결합하되, 어느 조직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한, 조직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진 분자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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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던은 타목시펜 외의 SERM이 개발되는 데에도 일조합니다. 라록시펜이라는 SERM은 역시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결합하는데 다행히 자궁내막암은 줄여주지만, 대신 유방암에는 타목시펜에 비해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이 라록시펜의 판권을 가진 일라이 릴리가 항암제로 쓰이기 힘들거라고 실망하자 조던은 '라록시펜은 골다공증 약으로 판매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이렇게 개발된 골다공증 약이 바로 에비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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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참고 1. 오리지널 타목시펜, 놀바덱스의 가격은 420원으로 조금 더 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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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2. 폐경 후 유방암 환자에게는 타목시펜을 쓰지 않고 페마라나 아리미덱스와 같은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씁니다. 폐경 후에는 더 이상 난소에서 에스트로겐을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폐경 후 에스트로겐은 지방 조직, 근육 조직 등에서 만들어지는데 폐경 후 유방암 환자가 페마라 등을 투여받으면 몸에서 아예 에스트로겐이 말라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므로 뼈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페마라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골밀도와 골절 위험에 따라 비스포스포네이트나 데노수맙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참고 3. 폐경 전 유방암 환자에게는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페마라를 써서 에스트로겐 수치를 떨어뜨리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페마라를 써서 에스트로겐 농도가 감소하면 뇌에서 부족한 에스트로겐을 만들어내도록 난소를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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