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다공증 (4) - 에스트로겐 (1)

by 예재호

1. 골다공증은 폐경 이후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골흡수를 억제하는데 폐경이 되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의사들은 에스트로겐을 보충하지 않고 비스포스포네이트 같은 독한 약을 쓰는 걸까요?




2.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만병 통치약처럼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 의료계에서는 ‘폐경은 치료할 수 있으며, 마땅히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 간주했습니다. 호르몬 보충요법을 하지 않는 여성은 건강관리에 소홀한, 몰지각한 사람처럼 몰아가는 광고가 버젓이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반발이 있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폐경 후 호르몬 대체요법은 실로 거의 완벽한 치료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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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시 에스트로겐을 이용한 호르몬 대체요법(HRT)은 안면 홍조나 질 건조 증상 완화처럼 삶의 질을 향상하는 비 필수적인 효과를 노리고 처방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며 뇌세포의 사멸을 막아 치매를 막는 효과를 기대하고 권했습니다. 여성성의 회복은 에스트로겐의 추가적인 이득 중 하나로 간주될 뿐이었습니다.


4. 골다공증 치료에 있어서도 에스트로겐의 지위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다소 축소된 현재 쓰임새와 달리 당시 에스트로겐은 골다공증 치료에 있어 1순위 치료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젊은 폐경기 여성에게 한정되어 쓰이는 게 아니라, 연령을 가리지 않고 쓰였습니다. 왜냐면 PEPI 연구 (Postmenopausal Estrogen/Progestin Interventions) 등에서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복합요법을 받은 환자들은 받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골밀도의 현격한 상승을 보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심혈관계 이득도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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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앞서 다루었지만 에스트로겐은 OPG(Osteoprotegerin) 단백질을 만들게 명령함으로써 RANKL 신호를 견제합니다. 철거 요청 신호 RANKL 이 OPG에 의해 가로막히니 철거업자, 파골세포는 다핵화되지 못합니다. 비유하자면 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안전 진단처럼 '정말 철거가 필요한지'를 검증하는 과정이 바로 OPG 라 할 수 있습니다. 폐경이 되어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 검증과정은 축소되고 연락을 받은 철거업자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부숴 버리기 시작합니다. 조골세포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결국 골다공증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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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름 아닌 프롤리아가 바로 이 RANKL 신호를 1:1로 마크해 불활성화하는 약이었습니다. 어쩌면 프롤리아는 에스트로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더 이상합니다. 왜 지금은 에스트로겐을 쓰지 않고 프롤리아를 쓰는 걸까요?




7. 2015년 백수오 파동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백수오는 (제 기준) 건강기능식품계의 최대 흥행작으로 꼽습니다. 당시 백수오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최근 회자되는 '먹는 알부민' 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으로, 말 그대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9시 뉴스에 언급되었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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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효능 여부를 떠나, 당시 백수오의 어마어마한 성공에는 시기적으로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만병 통치약으로 불리던 에스트로겐이 갑작스럽게, 한 순간에 추락한 이후 갱년기 치료 분야에 마땅히 대체제가 나타나지 않고 상당히 오랜 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합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식품'이니 '안전하며' 효과는 '에스트로겐과 거의 동등'하다는 백수오의 광고 이미지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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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물론 가짜 백수오가 판매되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렇게나 시끌벅적했던 백수오는 이제 찾으시는 분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에스트로겐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고, 적절한 대상을 가려내고 적절한 시점에 복용하면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알려진 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다른 걸 넣을 것이 아니라 호르몬을 넣어주는 게 가장 논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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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스트로겐에 대한 평가가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 것은 충격적인 연구 결과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16,680명을 대상으로 폐경 후 여성의 호르몬 투여의 이점을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호르몬을 투약한 군과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 간에 관상동맥질환 발생을 비교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당시 에스트로겐은 콜레스테롤을 개선시키고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는 주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차 결과 요인으로는 뇌졸중, 폐색전증(PE) 자궁내막암, 대장암, 고관절 골절 등을 평가했습니다. (WHI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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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연구를 기획한 연구자들은 호르몬 요법 효과가 다방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라 기대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전까지 연구 결과가 그랬었거든요. 에스트로겐은 LDL을 낮추고 HDL은 높였으며, 일부 소규모 연구에서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줄인 것도 보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협심증과 같은 심근경색 질환에 호르몬 병합 요법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던 때였습니다. 아마 연구진들은 과연 호르몬 대체 요법이 몇 배나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2. 하지만 연구자들과의 기대와 달리 이 연구는 기획한 년수를 채 채우지도 못하고 조기에 중단되어 버리는 충격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이 심장병을 예방하기는커녕 유방암, 심장마비, 뇌졸중, 혈전 위험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대조군에 비해 열등하다는 중간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심근경색(29% 증가), 뇌졸중(41% 증가), 유방암(26% 증가) 모두 치료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발생률이 높았고 폐색전증은 무려 2배 이상 위험도가 높였습니다.


13. 이런 WHI 연구 결과가 알려지며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습니다. 만병통치약에서 한 순간에 피해야 할 '독약'처럼 인식된 에스트로겐 처방률은 곤두박질쳤습니다. 한번 생겨 버린 찝찝함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고 해소되지 못한 수요는 결국 백수오와 같은 곳으로 터지게 되었습니다.


14.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알고 보니 WHI 연구 참여자들의 평균 연령이 63세로 이미 혈관 노화가 진행된 상태에서 호르몬을 투여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젊은 연령에서는 에스트로겐은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이전 연구와의 괴리가 생긴 이유도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시점에 투여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15. WHI 연구 결과로 에스트로겐은 골다공증 치료에 있어서도 마침 막 개발되었던 비 스테로이드성 치료제, 비스포스포네이트에게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고 맙니다. 하지만 골다공증 만큼은 사실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WHI 연구에서도 골다공증 치료 효과나 대장암의 예방 효과는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호르몬 요법을 받은 군이 대조군에 비해 고관절 골절이 34% 줄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였습니다. 고관절 골절은 다른 부위의 골절보다 예후가 나빠 골다공증 치료제로 선호되려면 고관절 골절을 예방하는 효과를 증명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16. 고관절에 골절이 생기면, 환자는 거동이 순식간에 제약되고, 폐렴 등 합병증으로 이어져 사망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비스포스포네이트와 프롤리아, 데노수맙이 일차 약제로서 당당히 인정받는 이유도 다름 아닌 고관절 골절을 방지하는 효과가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반드로네이트는 고관절 골절을 줄인다는 데이터가 부족한 점이 가장 큰 단점이 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에스트로겐은 효과는 증명했습니다만 부작용이 우려되는 탓에 한동안 쓰이지 못했습니다.




17. 사견입니다만, 초기 에스트로겐 치료의 무조건적인 맹신과 느닷없이 모두에게 외면받는 과정은 코티솔, 스테로이드 치료와 매우 닮은 것 같습니다. 평생을 휠체어에서만 생활했던 류머티즘 환자가 최초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은 뒤 벌떡 일어나 곧장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는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난 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의사들은 모두 모든 환자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해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효과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진정한 만병통치제로서의 지위는 사실 따지고 보면 코티코스테로이드가 훨씬 원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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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지만 결국 스테로이드의 양면성이 부각되며 현재 스테로이드는 여전히 오해를 벗지 못한 처지이고, 처방을 위해서 의사들이 옹호해 주는 수고를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질성분이라 핵에 자유자재로 작용해 효과를 나타내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특성상 워낙 광범위한 영역에 다양하고 때로는 양면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되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19. 다행히 에스트로겐은 글루코코티코이트, 스테로이드에 비해 형편이 낫습니다. 다름 아닌 SERM, 선택적 에스트로겐 작용제가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최초로 인간이 제어하게 된 약, 타목시펜과 라록시펜은 역시 골다공증에서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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