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하고 담백했던 날의 결심

조용한 풍경 속에서 피어난 삶의 방향(feat. 속초)

by 예 진리




속초는 날이 참 좋았다.

태풍이 와도 오히려 좋다 생각했었는데,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더욱 선명해진 산과 뭉게뭉게 예쁜 구름들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선물 같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칼국수 집으로 가는 길,

산새가 절경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모양이 정말 선명했다.

홀린 듯 걸어갔다. 예쁘다. 황홀했다.

걷는 내내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이 어찌나 예쁜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달까.






칼국수도 맛있었다.

입맛 없는 나도 밥까지 주문해 먹을 만큼.

든든했고, 감사했다.






찬양을 들으며 카페로 걸어가는 길,

순간순간 내가 걷고 있는 이 배경이 너무 아름다워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드라마 같았다.

비현실적인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게스트하우스의 추천 카페에서

다섯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나 자신과 가까이 소통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한 켠에 자리 잡은 욕심이 내 마음을 쿡쿡 찌르며 아프게 했다.





점점 쉽지 않다고 느껴지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생각하며,

너무 심각하게 지금 상황을 바라보다 좋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거라면 어쩌나,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올라오다 보니

조금 불안해지기도 했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숙소로 가는 길에는

조금 돌더라도 속초아이를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바다 쪽으로 좀 더 걸었다.

더웠다.


그래도 찬양을 들으며 박수치며 걷는 길이 참 좋았다.

‘행복하다’라고까지 느끼기도 했다.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생각임을 안다.

그래서 현재, 이 순간 내 삶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누리고 느껴야 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연습.

그것이 참 단순하고 담백한 행복일 테니까.





숙소로 들어와서는 엄마와 전화하며

다시 조금씩 불안해졌다.

침대에 무릎을 꿇었다. 기도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떤 좋은 때에는

이러한 조급함과 불안함을 느끼지 않겠구나.

분명 평안함 가운데 인도하실 거라는 믿음.

인내를 연습하는 시간이니까, 믿음은 곧 인내일 테니까.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8시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재즈 공연이 있을 예정이었다.

일층으로 내려갔다.


직원분이 작은 테이블에 나를 합석시켜주셨다.

위로였다. 인연이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먼저 다가와주는 따뜻한 사람들과의 시간이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을 느끼고 챙겨주는 이들이 있었다.

신기했다. 그 통함을 나도 느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받는 사랑이 익숙하면서도, 그 사랑이 나를 입증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존재는 나 자체로 그렇게 있는 것.


“제가 최근에 본 사람 중에 가장 무해한 사람이에요.”

“그 친구가 말한 것처럼 누나는 진짜 무해한 사람인 것 같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밤바다를 보러 갔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시원했다.

파도소리가 시원했고,

돗자리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이 참 예뻤다.

감사했다.


이번 여행에서 이미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나와 함께 해준 재욱이와 유리는 위로였다.

나를 참 있는 그대로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즐거웠다. 내일이 무섭지 않았다.








일어났다. 조금 슬프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촌남매와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얼른 일층으로 내려갔다.


마냥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순대국밥은 다행히 맛있었다.

대화도 편안했다.


“누나는 진짜 한 3-4년 알고 지낸 사람 같아.”

“누난 정말 은은한 사람인 것 같아.”

“너무 귀여워.”

“보는 맛이 있는 사람이네.”

“예진누나 같은 사람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지.”


함께 있으면서 억지로 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가장 담백한 나로서 함께한 시간에

나의 좋은 부분들을 알아봐준 사람들이었다.





카페에서 재욱이가 물었다.


“누나는 인연이나 운명을 믿어?”


“흠, 모르겠어. 나는 진실 됨은 빠를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진실 됨은 빠를 수 없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

진실 됨은 기다림과 인내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카페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쉬고 싶다.





퇴사를 하고 하루 종일 책 읽고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한으로 집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텐데.


그래, 나 지금 인생에서 진짜 제일 어린데!

퇴사하고 싶다.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이어야 할 것 같다.


퇴사하고 매일 도서관에 박혀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미친 짓일까?


이 분야 안에 있다 보니 더 매몰되는 것 같다.

하하, 다른 일을 하며 이 시각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표현하며 살아보기.


퇴사 이후 당연히 무기력하고 불안한 시간들이 올 수 있으나

그 시간을 버텨낸다면,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차오를테니까.


괜찮아.

무해하게.

너의 느린 속도를, 너의 담백한 하루를,


속초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

사람들과의 담백한 관계,

그리고 나답게 살아보려는 결심.

그 결심은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퇴사라는 선택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언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