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은 아니야
월요일 출근길은 언제나 힘드니까. 오늘 아침의 마음 상태 정도라면 양호하다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아직까지는 일어나자마자 마음을 살피고 있다.
그래도 분명 손가락 까딱하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몸을 끌어 출근한 기억이 있기에,
오늘 정도라면 사실은 보통의 나날들 정도였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출근하였고,
매 순간 나의 자아가 올라오려 할 때마다 알아차리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팀장님께서 커피를 사주셨고, 감사하게 받아마셨다.
오트 우유가 싱거워 부지런히 지하 1층 카페로 내려가 우유를 더 받는 성실함까지 보였다.
커피 한잔이라도 더 맛있게 먹으려는 내 모습은,
우울한 상태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힘들지 않게 부서회의도 진행했고,
미루던 BI업체에 인터뷰지 발송도 마무리했다.
점심에는 금식기도를 핑계로, 아니 금식기도 덕분에 밥을 먹는 대신 우체국에 가기로 했다.
버스를 10분이나 기다리기도 했고, 환승을 하며 멍- 때리기도 했다.
유독 커다란 나무가 많은 이 동네를 유심히 살피기도 했고,
큰 나무의 꼭대기를 바라보며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느끼기도 했다.
좋았다. 숨 쉬는 것 같았다.
그대로 버스를 타고 우체국으로 가는 길,
3개의 패딩 위로 고개를 의지해 창밖을 바라보는데,
마음에 외로움은 일렁였지만, 편안했다.
낯선 동네에 있는 우체국에 방문해 엄마아빠의 겨울을 위해 택배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배가 너무 고파 쓰러질 것 같아서 좋아하는 완두콩빵을 사먹어 버렸다.
은행나무길을 걸었다.
낭만이 사라진 이유는 은행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씩씩하게 오후도 맞이했다.
BI 관련 소통을 하고, 먼데이닷컴에 입력하고 나니 금방 4시가 되고 회의시간이었다.
회의 초반까지만 해도 아주 안정된 상태로 웃으며 그 공간에 있었는데,
‘직원 보호’와 관련된 건으로 이전 이야기가 다시 들춰져서 그런 건지(최근에 사실 트라우마틱한 사건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그 일에 대해 언급된 것도 아닌데,
그냥 이 이야기의 초반부터 몸이 이상했다.
얼굴이 경직되고 떨리고, 손도 떨리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불안한 사람처럼 공책에 계속 낙서를 하는 나를 마주했다.
계속 울어대서 화장실로 피신했고, 완전 오열했다.
소리 내어 마구 울었다.
이상했다. 영문을 모르겠었다.
9월 중순 사원모임 때도 비슷했다.
그때도 이 이야기가 나올 때쯤 갑자기 표정이 굳고 눈물이 계속 흘러서 화장실에 갔었다.
정확히 일치했다.
아, 트라우마가 생겼나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온 몸이 불안상태가 된다는 것이 조금 무서웠다.
그래도 좋은 직원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상태를 알아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니 다행히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야근을 하기로 했는데, 직장동료가 와서 저녁 먹을 건지 두 번이나 묻는다.
솔직히 귀찮기도 했고, 밥이 들어갈까 싶었는데,
무슨 일인지, 진짜 맛있게 먹었다.
직장동료와 이야기하면서 먹으니 그냥 소소한 일상 같아져서 조금 더 괜찮아졌던 것 같다.
퇴근길에 엄마와 통화했다.
그 불안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꼈다기보다 신체화가 있었던 것이다 보니,
조금 객관적이었던 건지, 내 상태를 엄마에게 잘 설명할 수 있었다.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엄마가 나를 판단하는 것 같지 않았고, 인정해주는 듯했다.
내 상태와 감정을 인정받으니 너무 안심이 되어 눈물이 마구마구 흘렀다.
지하철에서 엄마와 통화하며 엄청 울었는데, 그래서 속이 시원했다.
나는 참 잘 울던 사람이었다.
감정에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사회생활하면서 그 눈물을 참 많이도 참았던 것 같다.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도 했다.
“엄마, 내가 서울 와서 혼자 독립하며 살면서 그만큼 독립적여진 것도 있겠지만, 마음이 잘 쉬지를 못했나봐.”
나 꽤나 달려왔던 것 같다.
쉬고 싶다. 마음이. 조금만.
달려갈 힘을 충전하고 싶다.
“예진아, 그래도 너가 부산에 오면, 엄마가 퇴근하면 된장찌개라도 끓여줄 거 아니야. 당연히 같이 살면서 부딪히는 날들이 있겠지. 그건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부산 내려오는 거 같이 기도해보자.”
“응 엄마, 기도해보자.”
처음으로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고 했다.
그게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제 그만. 이젠 그만.
오늘 불안을 신체적으로 경험한 날이었지만,
마무리를 하는 지금, 그저 ‘보통의 날’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너무나도 괜찮은 상태에서 신체화가 일어난 것을 보고,
이제는 이것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