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닥터 Sep 19. 2023

슬기로운 감빵의사생활

Episode 5. 방광암 4기입니다

"소변보는 게 불편해요."

간헐적으로 소변을 볼 때 불편감을 호소하던 환자가 있었다. 40대 초반의 여성. 여성의 요도는 남성보다 짧고 해부학적인 이유로 방광염에 자주 걸린다. 중년 여성에게 간헐적인 소변 불편감은 꽤나 흔한 일이다.

그래도 소변에 염증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변 검사를 한다. 그런데 소변에서 피가 많이 나온다. 모든 방광염에서 혈뇨가 있지는 않지만, 있을 수는 있다. 일단 항생제를 써보고 괜찮아지는지 봐보자. 일주일 정도 항생제를 사용하니 소변의 염증은 사라졌다. 그런데 아직도 피가 비치며 증상도 계속된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비뇨기과 진료를 봐야겠네요."

외부 비뇨기과 진료를 의뢰해 진료를 다녀왔다.

방광암. 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선생님 그런데 폐에 전이가 있어서, 방광암 4기래요."

방광암 4기 중 폐 등의 다른 기관의 전이가 있으면 4B라고 부른다. 5년을 살 확률이 5%가 채 안된다. 그녀는 한순간에 시한부가 됐다. 그녀의 삶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발견되자마자 4기라뇨. 안타깝게 됐네요."

동정과 연민의 감정으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교도관의 대답은 냉소적이다.


"피해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아직도 피눈물 흘리고 있겠죠."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계획적으로 피해자 가족에게 7억 상당의 사기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왔다. 그 피해자들은 그녀의 삶을 거세게 질책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형 집행정지를 받을 것이다. '형 집행정지'란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보이는 사유가 있을 때, 검사의 지휘로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병이 치료될 때까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치료를 마치면 교도소로 돌아와 다시 형벌을 받게 된다. 주로 교도소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거나 수술 등이 필요할 때 '형 집행정지'를 시행한다.


검사가 의료과에 다녀갔고 그녀의 수감생활이 지속 가능한 정도인지, 통증은 조절이 되는지, 식사는 가능한지 등 일거수일투족을 물어간다.

그녀의 형은 일시 정지되었지만, 다시 재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시 내 환자로 돌아올 일도 없다는 얘기다. 죄를 저질렀지만 그 형을 다 하지 않고 병원에서 삶을 마무리할 것이다. 한 가정의 인생을 파탄 냈지만 그녀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저 환자로서 그녀를 대할 뿐이다. 그녀의 삶을 연민할 수도 질책할 수도 없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감빵의사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