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꺼내먹을 아이디어
2017년 7월, 장마기간이라 습하고 더운 인도로 왜 휴가를 가냐는 지인들의 의문에 개의치 않고 도착한 인도의 경제 문화 중심지, 뭄바이. 나는 영화 슬럼독 밀리언에어의 주인공이 이용했을 이곳의 통근열차(뭄바이의 주요 대중교통수단)에서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뭄바이 사람들에겐 무덤덤한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달리는 기차의 출구 밖으로 고개와 몸을 내밀어 움직이는 도시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 경험의 자유에는 ‘Freedom at Your Own Risk’라는 조항이 달리겠지만...
프리덤 멜로디
인도는 2012년 석사 때 수업의 일환으로 첫 발을 디딘 이례 2015년부터는 매해 출장으로 가는 곳이다. 하지만 뭄바이는 개인적인 휴가로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뉴델리가 인도의 위싱턴이라면, 뭄바이는 인도의 뉴욕과 같은 금융의 중심지이자, ‘발리우드’로 대변되는 서남아시아의 LA로도 볼 수 있는 도시다. 휴가 2달 전 한국에서 인도 뭄바이 MVRC (철도회사)의 계획 부문 수장 Sanjay를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이른 시기에 그의 도시를 답방하게 될지 몰랐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일로 만난 사이지만 한국에서 같이 고생하면서 많은 곳을 다니면서 친해져서, 내가 뭄바이를 방문했다 하니 Sanjay는 그의 대학생 아들과 함께 먼길을 찾아와 저녁을 같이했다.
저녁 이후 다음날 내가 뭄바이의 Metro (시에서 운영)와 통근열차 (국가 운영)를 모두 경험하고 Sanjay의 사무실이 있는 Church Key역 (western line의 종착역)에 도착해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니 Sanjay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우리는 뭄바이의 철도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이내 또 그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 를 한참 했다. 대화 중 통근열차를 타고 온 내 소감을 묻자 나는 “freedom”을 느꼈다고 답했다. MVRC의 임원인 Sanjay는 웃으면서 내가 현실을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들려준 이야기는 모든 게 정돈된 곳의 대중교통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던 나의 생각 180도 바뀌 놓았다.
Sanjay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통근열차 이용객 중 하루에도 최소 10여 명이 아주 심각한 부상 (사망 포함)을 당한다 했다. 예전에는 기차 위에도 사람들이 탔는데, 이것은 근절했지만 아직도 기차 문이 열린 상태로 달리다 보니 이로 인한 인명피해가 매일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자유로움’을 운운했던 나의 생각이 어리게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출퇴근 혼잡시간 때를 피해 기차를 이용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출퇴근 시 열차를 이용하면서 생과 사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대다수 뭄바이 시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귓가에 맴도는 이태원 프리덤, 그리고 뭄바이 프리덤
Sanjay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 후, 뭄바이를 혼자 돌아다니면서 내 머릿속은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다소 비약이 있긴 하지만, 내가 들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뭄바이를 배경으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접속해서 볼만한 콘텐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왕이면 뭄바이 통근열차 안에서 떠오른 이태원 프리덤 멜로디를 그대로 살려서 가사만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이왕이면 원곡자인 UV와 박진영을 뭄바이로 데리고 와서 이태원 프리덤, 뭄바이 버전은 만드는 건 어떨까? 아 그렇다면 인도의 Bollywood 배우/가수들과 협업을 해서 한글과 힌디가 혼합된 노래는 어떨까? 이거 잘만 만들면 재밌겠는데? 흥행몰이도 가능하겠는데?
근데 뭄바이 프리덤엔 무엇을 담을 것인가? 통근열차에서 자유로움 속에서 위험이 공존한다는 것을 희화하는 재미도 있지만, 기차 이용과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전환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가칭) 뭄바이 프리덤이 강남 스타일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다면 그 많은 유튜브 클릭수로 발생된 돈은 내가 Sanjay로부터 들었던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seed 자금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상상은 뭄바이를 떠나서도 서울, 디씨 그리고 뉴욕에서 지인들과 나누면서 계속 이어나갔다.
어릴 적에는 찻잔 속의 태풍인 양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다 사라졌거나, 머릿속 어디 깊숙이 남아있을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아이디어는 워낙 특출 난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와 이것을 나누면 다른 사람이 이용해 버릴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지금껏 너무 많은 아이디어들을 사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은 틈틈이 노트도 하지만 그보다 나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생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조금씩 그 아이디어에 현실화할 살들이 붙음을 느낀다.
작년 가을, 만 35세 이하 세계은행 직원들만 지원할 수 있는 Youth Innovation Fund (YIF)에 뭄바이에서 상상하기 시작한 ‘뭄바이프리덤 프로젝트’를 지원하면 뭔가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 마감 막판에 종석형과 뭄바이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시계(일본인 사업담당자 동료)에게 간략한 설명을 한 후 그들의 이름을 넣어 YIF에 지원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은 논리의 점프가 있는 사고가 안되는지 (안 하는 건지)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뭄바이 프리덤 잘돼가?
작년 가을 YIF 지원 전 민해와 동현이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지난주 다시 올만에 만나 뭄바이 프리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질문에 요르단에 다녀오면서 새로운 걸 구상하고 있다는 대답을 하면서도 뭔가 찜찜함이 나 자신에게 느껴졌다. 이러다 난 정말 생각만 많이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어제저녁 다소 엉뚱한 면모가 있는 IFC의 가람이에게 요르단에서 시작한 아이디어 보따리를 푼 후 뭄바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니, 이런 건 “어디 블로그에 올리고 마는 수준의 아이디어”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근 1년 만에 다시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다. (가람의 동기부여에 감사)
오늘은 퇴근 전 시계 사무실에 들려 뭄바이 프리덤에 대한 구상과 이걸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가져가겠다 하니 교통과 안전도 좋지만, Gender에 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접근해 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듣기도 했다.
12량의 통근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한 번에 3000-4000명 되는 인원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뭄바이에도 언젠가는 북적거려도 질서가 있고 모든 게 매끄럽게 흘러가는 대중교통 (교통카드를 포함)의 경험을 뭄바이에서도 할 수 있길 상상하면서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안전하고 편리한),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듯이 틈틈이 머릿속에서 #뭄바이프리덤 아이디어를 꺼내서 계속 다듬고, 조금씩 행동으로 옮겨봐야겠다.
2018년 3월 9일 뉴욕행 Amtrak 기차에서
이건 덤) 2017년 7월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인도 뭄바이를 간다 하니 많은 회사 동료들이 그 더운 곳을 한 여름에 무엇하러 가냐고 반문했다.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혼자 자전거를 타고 피츠버그나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대학 이전 모든 학창 시절을 보낸 종석형이 뭄바이에 사는 자기 친구들을 만나러 17년 만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잘하는 다른 사람의 여행 계획에 나 자신을 self-invite 했다. 종석형도 처음에는 조금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 나의 강한 push에 못내, 본인이 신세를 지기로 한 친구들에게 본인 이외에 한 명을 더 달고 가도 괜찮겠냐는 승낙을 받고 바로 비행기표 구매하면서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 종석형의 발리우드 친구들을 만나고, 뭄바이라는 도시를 경험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