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이호성 Apr 03. 2017

[출장] 우즈베키스탄

김태희? 아니 마티즈!

* 이 글은 필자의 (짧은 출장 기간 중) 경험과 추론에 근거해 써져, 내용의 사실/인과 관계에 다소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 


워싱턴에서 만 25시간의 여정 끝에 도착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터키 공무원 단체 방문객으로 (랜딩 비자를 받고자) 출입국 사무실 앞에서 한 시간 이상 기다린 후, 공항 주차장에서 만난 차량 기사의 차는 쉐보레였다. 지금까지 세계은행 출장지에서 탑승했던 차량들은 항상 도요타여서 (한국 제외), 조금 의외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쉐보레 발음이 익숙지 않은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쉐보레' 발음법을 광고하던 게 잠시 떠올랐다.

타슈켄트 공항 주차장 그리고 시내 도로에 쉐보레가 아닌 차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호텔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차들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에서 한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마티즈, 매그너스 같은 옛 대우 차량들의 이름이 보였고,  대우 로고만 쉐보레로 교체되었다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세계은행 현지 사무소에서 섭외해 준 현지 차량 또한 겉에는 쉐보레 로고가 차량 내부에는 대우 로고가 보였다) 국토연구원 재직 시절 중앙아시아나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유난히 ‘대우’라는 브랜드에 관해 질문을 했던 이유를 첫 중앙아시아 출장에서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본사로 복귀해 우즈벡 출신 동료를 통해, 대우가 구 소련연방 국가를 제외한 사실상 우즈벡에 진출했던 첫 해외 기업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모기업이 파산하면서 GM에 인수되어 쉐보레 마크를 달고 있지만, 우즈벡 수도 타슈켄트 거리를 접수한 쉐보레 차들의 원조는 ‘대우’였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맴돌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즈벡에서의 여러 단상들을 간략히 적어본다. 


첫째, 개도국에서 선도기업의 선점 효과. 

대우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대우는 우즈벡 진출 당시 이 구 소련 국가에 투자하는 사실상 첫 해외기업이라는 큰 리스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성장을 위해 해외 기업에게 문호를 개방한 우즈벡 입장에서도 초창기 대우의 성공을 위해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했으리라 추측된다. 세계은행 일로 산업자원부 공무원들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 중 조금 신선했던 개념 중 하나가, 기업 지배구조의 국적과 무관하게 한국의 영토를 떠난 기업은 한국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대한민국 안에서 생산활동을 하는 외국계 기업보다 적기 때문에, 산업자원부 입장에서는 해외를 진출하는 국내 기업보다 국내에서 생산활동을 할 외국계 기업 유치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재별들이 급격한 산업화 시기 분야별로 정부의 지원과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했듯이, 개도국 우즈벡에서도 대우는 한국기업이었지만, 국민차 위상을 받을 정도로 성장할 있던 게 아닐까 싶다.(대우가 우즈벡에서 차만 판 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우즈벡 세계은행 사무소에서 내려다본 타슈켄트 시내 전경

둘째, 잘못된 리더십.

대우의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은 미완의 성공이었다. 나는  2011년 국토연구원에서 베트남 출장을 갔는데, 대우호텔에서 베트남 기재부 차관과 저녁 미팅을 가진 적이 있다. 아직도 인식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하노이 사람들 사이에서 대우호텔이 최고의 호텔로 대우받던 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외환위기 시절 재계 순위 3위에 들던 대우 그룹은 찢겨져서 여기저기 인수. 합병 절차를 걸쳤다. 대외적인 경제 사정 때문에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 불법적인 행위들로 회사가 안에서도 이미 썩고 있었기 때문에 대우라는 모기업이 더 빨리 망했을지도 모른다.(어쩌면 비자금을 만들어야만 기업 유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당대 사회적 인식이 문제였을지도,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지만..) 그런데 대우가 망한 지 근 20년이 되었지만, 우즈벡 수도의 거리는 ‘대우’를 인수해 ‘GM대우’를 걸쳐 ‘쉐보레’로 바뀐 차량들 일색이다. (중간에 한국처럼 GM대우라고 실제로 섰는지는 내 추측임) 대우차 우즈벡 법인은 모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와 위법 행위와 무관하게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만한 인력과 시장 내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리더십은 잘 굴러가는 차량도 멈추게 하고 이름도 바뀌게 하는 것 같다. 

KDB in Uzbekistan? 세계은행에 파견 나와계신 부장님께 여쭤보니 이것 또한 대우가 망하면서 산은이 떠않게 된 것이라고 전해 들음. 

셋째, 재벌 1세대와  3세대, 해외시장 진출 VS 골목상권 진출. 

내가 정량적인 분석 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들을 바탕으로 성급하게 단정 짓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뜩 드는 생각은 개도국 및 미개척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과 비교해 이미 포화 상태에 있는 동네 시장에서 자영업자들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재벌 3세 기업인들의 행보에 한숨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이른 나이에 회사에서 온갖 대담한 경영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미 포화된 국내 시장을 과포화 시장으로 무한경쟁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모습들은 안타깝다. 파이를 키울 줄은 모르고, 있는 파이를 어떻게든 부스러기 내서 땅따먹기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재벌 3세대가 그렇지는 않을 테고, 개도국 리스크가 존재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뭔가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는 건 나만 그런 건가?

우리가 묶었던 타슈켄트 시내에 위치한 롯데시티호텔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 멀지 않아 이곳도 도로 폭을 줄이고, 지하보도 대신 횡단보도가 생기는 날이 올 것 같다. 

넷째, 글로벌 한국은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에서.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애플이 신상품을 출시할 때, 한국을 첫 번째 발매 국가에서 뺄 때마다 홀대를 받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애플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대한민국은 인구 5천만 밖에 안 되는 작은 시장에 불과하다. 특히 인접한 인구 1억이 흘쩍 넘는 일본과 13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비교해 본다면, 애플이 이 두나라를 1차 발매국으로 정하는 게 어쩌면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통일 한반도 단일 시장을 이룬다 해도 (단순 합산 7천~8천만임)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고는 높아진 기대 수준 및 삶의 질을 누리고 살기 힘들 것 같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외국에서 출장 차 한국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대한민국의 유능한 청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고, 일종의 탈출의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런 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면 변화가 미미한 선진국 일변도에서 인구가 아직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경제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개도국으로 눈길을 돌려 보는 건 어떻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이런 이야기를 또래 친구들에게 할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안전만 추구하고 도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꼰대 같은 발언이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다 보니 이렇게 적게 됨)

왼쪽은 미팅에서 두 번이나 만났던 KAIST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는 Nurbek (우즈벡 정부 근무 중), 오른쪽은 도시분야 전문가로 초청받아 출장에 동행한 국토연구원 왕광익 박사

마지막으로, 출장 중 자주 들었던 다른 생각은 평양을 가면 왠지 타슈켄트와 비슷한 느낌이 들 것 같다는 것이었다. 평양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타슈켄트의 지하철은 모스크바에서 설계를 해서 구소련 국가 어디를 가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한다. 티비를 통해 봤던 평양 지하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체재의 사회 시스템이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을 걷게 될 경우 우즈벡을 비롯한 많은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 후 모습을 따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레닌의 의해 연해주 지역에 살던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되어 우즈벡에 지금 약 50만의 고려인들이 살아가고 있어,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크게 인연이 없던 중앙아시아의 나라 우즈벡과 한국이 가까워질 수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우즈벡 출장을 간다 할 때 “김태희가 밭을 매고 있는 곳”으로 가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사람들이 “한국과의 교류로 거리에는 마티즈가 다니고, 타슈켄트 공항이 중앙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탈바꿈된 곳”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날이 멀지 않은 미래에 실현되기를 상상해 본다. 


성이호성

2016년 11월 / 2017년 4월

(뉴욕발 디씨행 기차에서 초안, 탄자니아에서 마무리 & 포스팅)

미화 60불어치 식사를 현지화 슘으로 계산하는 모습을 비교한 사진.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이 2배 정도 차이가 나서 환전도 공식 은행이 아닌 환전상을 통해서 하는 게 관행이 된 듯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은행 견문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