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목민의 공간 탐험
나의 공간 이동 역사는 20살부터 시작된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어릴 적 이사를 제외하곤 줄곧 똑같은 집에 살아왔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한 번도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땐, 다양한 이유로 엄마를 졸라대곤 했다. 친구랑 같은 동네에 살고 싶어서, 독립된 내 방을 갖고 싶어서, 다른 집이 좋아 보여서... 하지만 이사는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첫 이사는 다른 지역으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비로소 성사되었다. 첫 번째 이사였지만 공간 이동, 새로운 공간에 대한 생각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인 지역 이동이 더 크게 와닿기도 했고, 이름마저 찬란한 20살 아닌가.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에 관심이 더 쏠렸었다. 어쩌면 이동한 공간이 집이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내가 이사한 공간은 3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지낸 기숙사였기에.
두 번째 공간 이동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기숙사 자리 덕분에 2학년이 되자마자 많은 인원이 퇴실해야 했고, 나 또한 그 명단에 속했다. 오랜 염원이었던 자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학교 길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오래된 가정집이었는데 2층은 주인아주머니가 사셨고, 3층에는 개미집을 이루듯 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낡고 좁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분리된 주방도 있고, 큰 창 너머로 햇빛도 쏟아져 들어왔다. 사실 주방이 분리되지 않아도, 창문이 작았더라도 문제 되지 않았을 거다. 공간이 어떤 형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에.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챙겨 들어와 나는 그곳에 필사적으로 정을 붙여가며 살았다. 처음 가져 본 나만의 공간이었고, 나의 집이었기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변화는 정서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쳤다.
자취한 지 몇 년째 되던 쯤, 여느 때처럼 고향 집에 내려가 쉬고 있던 때였다.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쯤 다시 올라갈 거냐는 물음에 "글쎄 금요일쯤? 슬슬 우리 집 가봐야지"라고 답했고, 엄마와 나는 동시에 당황했다. 엄마와 나에게 '우리 집'이라는 단어는 동의어로 가족이 함께 사는 고향 집을 지칭하는 거였는데, 어느새 엄마와 내가 지칭하는 '우리 집'이 다른 공간이 된 것이다. 사전적 정의처럼 영원할 것만 같던 '우리 집'의 정의도 변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물며 그 집은 내가 영원히 살 집도 아니고, 진짜 내 집도 아닌 타인의 집을 잠시 빌려 사는 것뿐인데 말이다. 새로운 공간 속에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고향 집보다 친밀도와 편안함 지수가 높아지면서 '우리 집'이라는 단어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이동한 모양이다.
그 후로 나는 몇 년에 한 번꼴로 짐을 싸고 푸는 행위를 반복했고, '우리 집'이라는 이름을 동쪽에 붙였다 남쪽에 붙였다 했다. 낯선 곳에 적응했다 싶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신유목민처럼 새로운 동네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집 없는 자의 설움이 이런 거겠지) 어릴 땐 이사를 하는 게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것 같아 재밌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사를 몇 번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자가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이사는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일이기도 하니. 같은 동네에 사는 경우도 많지만,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도 제법 흔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같은 동네에 살아본 적이 없다. 집값 상승으로, 같은 동네에 찾는 매물이 없어서, 회사가 멀어서, 결혼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덕분에 이사할 시기가 오면, 여러 동네를 탐험하곤 했다. 한 번도 발 디뎌보지 못한 동네를 거닐며 동네 분위기를 살펴보고 만약 내가 이곳에 산다면 어떠한 일상이 펼쳐질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곤 했다. 공간 이동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동네 성격에 따라 경험하는 폭도, 마주하는 일상도 달라지기 때문에. 공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라이프 스타일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고심하여 고르는 거겠지.
여러 곳을 살펴보다 보면 감이 온다. '여기 살면 꽤 재밌겠네. 좋아'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살 게 될 확률은 50:50. 예산과도 맞아야 하지만,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며칠 고민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일이 허다하고, 가계약 날짜까지 잡아두고 약속을 파기하는 경우도 몇 번 경험했다. 결국 수 없는 동네와 공간을 마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살 게 될 집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새로운 곳에 '우리 집'이라는 푯말을 붙여주고, 정도 붙여간다.
그렇게 지도에는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이 늘어간다. 가끔은 그 시간과 경험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던 낯선 동네를 어느새 가장 친숙한 나의 동네로 만들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던 타인의 공간을 세상에서 가장 편한 내 쉼터로 만들어 가는 그런 경험 말이다. 신유목민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도에 '우리 집'이라는 점을 찍었다 지웠다 반복하면서, 낯선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또다시 리셋해 가는 과정을 연마하며 살아가는 일.
앞으로 지도에 '우리 집'이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점을 찍으며 살아갈까?
또 그곳에서 어떠한 시간을 채우게 될까?
다음 집과 그곳에서 펼쳐질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