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문화적 발전과 기술 경향 1750~1939 / 1. 문화적 변형
안녕하세요, 돌문어입니다.
건설공학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다가 과제 스트레스와 주머니 사정에 말려 건설공학과 도시환경공학 전공으로 갈아타게 되었습니다만, 졸업을 앞두고 전공에 대한 흥미를 몽땅 잃어버려 장기간 휴학 상태에 돌입했다가 이제 막 복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왜 복수전공이냐고요? 제가 다니는 학교 특성상 모든 학생은 복수전공이 필수라서요. 저도 어쩌다 이런 과분한 학교에 들어오게 된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읽기" 시리즈는 잃어버린 흥미를 되살려 보기 위한 저의 첫 번째 시도입니다.
머리에 남은 거라곤 "에버니저 하워드" 7글자 밖에 없었던 한 강의의 주교재였던 이 책을 읽고, 글로 다시 한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제 막 1부 마쳤습니다. 효과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작심 일일의 대명사인 제가 과연 이 시리즈를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책 한 권 끝까지 다 읽고, 시리즈도 완결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아직 고졸입니다. 꼴에 건축학도지만 머리에 든 것도 많이 없고, 이 책 자체가 너무 어려운 옛날 번역체라 충분히 내용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그러나 저는 잘못된 정보 전달을 매우 싫어합니다. 따라서 모든 지적은 감사히 받겠으니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읽기 ① / 1부 - 문화적 발전과 기술 경향 1750~1939
1부에서는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일어난 문화적, 영토적, 기술적 변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미국 독립전쟁, 나폴레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말만 들어도 문화적 영토적 기술적으로 사건이 어마어마했던 시기이다. 그 속에서 현대 건축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까?
1. 문화적 변형: 신고전주의 건축 1750~1900
2. 영토적 변형: 도시 개발 1800~1909
3. 기술적 변형: 구조공학 1775~1939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건축
신고전주의의 배경
신고전주의 건축은 여태껏 인간과 자연이 맺어온 관계에 찾아온 급진적인 변화로 인해 등장한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자연 통제능력이 높아지고, 사회 곳곳의 변화로 인해 의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기술과 인식의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이끌게 된 것이다. 운하와 도로, 기술학교 등 각종 기반시설이 구축되면서 덩달아 생산 역량 또한 높아졌으며, 새로운 지식 분야가 생겨나고, 성찰적 역사주의로 계몽운동과 이에 따른 인문학, 사회학, 미학, 역사, 고고학 등 관련 저서가 활발하게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로 기존의 앙시앵 레짐(프랑스혁명 전의 절대 군주 정체의 구체제) 시대가 가지고 있던 여러 요소와 계몽주의 사고 간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혼돈의 시기 가운데 18세기 건축가들은 고대의 순수한 건축양식을 재 탐구하고자 했다. 이는 단순히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고대의 건축 작업이 기초로 했던 원칙을 발견하고 따르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BC 1세기경 고대 로마의 기술자이자 건축가였던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에 관하여』라는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로마 건축이 주변 문화에 기초했다"
이 말에 따라 로마 너머까지 고고학 연구가 확장되었다. 당시에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 해서 귀족의 자제들이 정치에 입문하기에 앞서 견문을 넓히는 취지로 서유럽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에 다녀오는 것이 통례였는데, 이와 함께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칠리아와 고대 그리스 현장까지 시찰이 가능해지면서, 건축가들은 비트루비우스가 했던 이 말을 직접 현장에 비추어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와 영국에) 신고전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다.
신고전주의의 등장 그 후
신고전주의의 등장 후에도 기술과 사회의 발달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설들이 등장 및 확산됨에 따라 건축가들은 새로운 유형의 건물 유형을 창조해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론적 발전을 기반으로 등장한 신고전주의와 현실 사이의 의문이 생겨나게 되었고, 결국 비트루비우스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신고전주의는 크게 구조적 고전주의와 낭만적 고전주의 두 부류로 나눠지게 되며, 후에 철물과 철근 콘크리트의 발전으로 등장한 구조 합리주의를 거쳐 요소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구조적 고전주의
건축의 구조적 성격을 강조한다. (라브루스트, 코르드모아, 로지에, 수플로)
낭만적 고전주의
건축의 형태 자체의 관상학적 성격을 강조한다. (싱켈, 르두, 불레, 길리)
구조 합리주의
이론적 측면으로는 1802년, 롱들레의『건축 예술론』으로 시작해 1899년 공학자 오귀스트 슈아지가 쓴『건축사』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슈 아지는 건축의 본질은 건설이며 모든 양식적 변형은 기술 발전의 논리적 결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는 『건축사』에서 최초로 엑소노메트릭 투영법으로 구조를 설명했다.
엑소노메트릭 투영법
-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를 포함
- 구조의 객관적 설명이 가능함
- 건축을 순수한 추상으로 환원하는 계기가 됨
- 많은 정보량을 담는 것이 가능
- 세기 전환 후 근대 운동 개척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됨
골수 구조 합리주의자였던 슈아지는 아크로폴리스에 관해 말할 때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낭만적 감성을 드러냈다.
"그리스인은 건물을 올릴 부지와 주변의 다른 건물 없이는 절대 건물을 그려보지 않는다. ··· 각각의 건축 모티프는 그 자체로 대칭적이지만, 각 그룹은 하나의 풍경으로 취급되고 서로 균형을 이룬다."
픽처레스크 (Picturesque)
부분적인 대칭적 균형에 대한 개념.
픽처레스크라는 개념에 깊은 인상을 받은 쥘리앵 가데는 1902년 의『건축 요소와 이론』에서 최신 기술을 적용하면서도 전통적인 축 구성을 따라 배치된 요소를 통해 구조에 접근하는 규범을 정립하려고 했다.
후에 가데의 영향을 받은 가데의 제자인 오귀스트 페레와 토니 가르니를 통해 고전주의적 '요소주의'(Elementarist) 구성 원칙이 20세기의 선구적 건축가들에 전수되었다.
관련 건축가들
1. 코르드모아
코르드 모아는 1706년 저서『신건축 개론』에서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의 3대 원칙을 대체하는 언어를 제시했다.
비트루비우스
① 유용함 utilitas
② 견고함 firmitas
③ 아름다움 venustas
코르드모아
① 질서 ordonnance
② 배열 distribution
③ 어울림 bienséance
코르드모아가 제시한 언어 중 질서는 고전 기둥 양식들의 올바른 비율과 알맞은 배치를 나타내며, 배열과 어울림은 고전적 요소가 실용적·상업적 구조에 부적절하게 적용되는 것에 대한 주의를 나타낸다.
코르드모아는 고전 요소의 기하학적 순수성에 집중하며, 아돌프로스가 『장식과 범죄』를 쓰기 200년 전에 벌써 "건축물 대다수는 어떤 장식도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 로지에
『건축에 관한 에세이』(1753)에서 코르드모아를 새롭게 해석하며, '원시오두막'을 보편적인 자연적 건축으로 주장한다.
로지에는 통나무 경사 지붕을 받치는 네 개의 나무기둥으로 구성된 원시오두막을 기본적 형태로 제시하며, 아치와 벽기둥, 받침대 등 다른 어떤 종류의 형식적 분절 구조도 없고, 기둥들 사이의 틈 마저 가능한 한 유리로 된 형태, 즉 '반투명한 구조'를 고전화된 고딕 구조를 위한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반투명한 구조'는 1755년, 자크-제르맹 수플로가 설계한 파리 생트 주느비에브 성당에서 실현되었다.
3. 블롱델
1743년 아르프 가에 건축학교를 세운 블롱델은 코르드모아의 이론과 수플로의 걸작을 프랑스의 아카데미 전통에 통합시켰다. 에티엔-루이 불레, 자크 공두엥, 피에르 파트, 마리-조제프 페이르, 장-밥티스트 롱들레, 클로드-니콜라를 포함한 '공상적인 (visionary) 건축가 세대'의 스승이다.
『건축 강의』
① 구성 composition
② 유형 type
③ 성격 character
블롱델은『건축 강의』에서 위 세 가지와 관련된 주요 규칙을 설명했으며, 제2권에서는 이상적인 교회 설계안을 실어 무한한 조망(infinite vista)을 가진 공간체계를 통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4. 불레
불레는 건축의 사회적 성격을 표현하고, 구성의 웅장함을 통해 공포와 정적의 숭고한 감정을 일으켰다.
르 카뮈 드 메지에르의 『건축의 진수 또는 건축 예술과 감각과의 유사성』(1780)의 영향을 받은 그의 건축은 광대한 조망과 웅장한 형태를 가지며 꾸밈없는 기하학적 순수성이 드러난다.
불레는 신의 현존을 환기하는 빛의 힘에 사로잡혔으며, 1785년 아이작 뉴턴을 위한 기념비에서도 이러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작 뉴턴을 위한 기념비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08083
5. 르두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 요소를 표현하며, 상징을 끌어다 썼다. '건축적 관상학'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켜 관습적 상징 혹은 이질 동형의 아이디어를 통해 의미를 확립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그의 건축물은, 남근 모양으로 계획한 성교육 시설인 오이케마(Oikema)다. 이 오이케마는 방탕함, 즉 성적 충만을 통해 덕목을 끌어내는 흥미로운 사회적 목적(번역 그대로 옮겼다.)에 이바지했다고.... 한다.
오이케마(Oikema)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48617
6. 앙리 라브루스트
"구조의 우월성과 장식을 건축으로부터 이끌어내야 한다."라고 말한 라브루스트의 건축물에서는 "구조합리주의"적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
-벽을 따라 늘어선 책장
-둥근 천장을 쪼갠 지붕 형태를 도서관 공간 가운데 일렬로 세워진 강철 기둥이 받춤.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4961970
commons.wikimedia.org
파리 국립도서관 (주 열람실 및 서가)
-16개의 주철 기둥
-여러층으로 쌓인 연철 및 주철 서가
-철과 유리로 만든 지붕
-지붕에서 바닥까지 강철 층계참을 통해 내려오는 빛
-마치 새장처럼 디자인한 채광창 구조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9533017
쓰면서 들은 음악 ♬
House Party, Vol.4 (1943-1952)
Sidney Bechet(시드니 베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