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그냥 우도로 갔는데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여름, 나는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주변에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분노, 내 주변에 대한 분노, 분노, 분노.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내게 진짜 '집'은 없어서 학기 중에도 방학중에도 늘 대학교에 머물러 살아왔는데, 그마저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쉼이 필요했다. 다시 병원을 가볼까? 생각하다 약이 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았고,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그냥 넘겨버린다. 이제 선택지는 두 개다.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서 쉬느냐, 집이 아닌 곳에서 쉬느냐. 답은 뻔하다. 집에서는 못 쉰다. 그럼 어디로 가지? 부모님 손을 안 벌리고 생활을 하려면, 기숙사가 필요하다. 숙소제공이 되는 곳을 찾자. 아 근데 기왕이면 예쁜 곳에서 하면 좋겠는데, 제주도를 보자. 딱 두 군데가 있었다. 한 곳은 제주 본섬에 위치한 빵집, 다른 한 곳은 제주도에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는 우도의 카페.
당시의 나는 빵을 싫어했다. 답은 나왔다. 우도로 간다. 이력서를 작성하고 알바지원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한에 맞춰서 우도로 올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와, 면접을 보려면 비행기를 타고 우도까지 가야 한다. 여비도 마땅찮고 어쩐다... 생각하다가 눈 딱 감고 용기를 내서, 부모님한테 연락해 지원을 요청해 보자 결심했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조금은 이해하시는 거 같으니까. 하는 생각에였다. 역시나, 결과는 파국이었다.
"나 너무 쉬고 싶은데 집에서는 안 되겠어... 그래서 제주도로 가서 일을 잠깐 해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건 틀린 길인 것 같다"
"그럼 아빠가 생각하는 정답은 뭔데?"
"집에 올라와서 시내에 있는 휴대폰 대리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지내면 되잖아"
"아니... 나 집에서는 쉴 수가 없다고... 말했잖아요... 나 집에서는 못 지내. 그리고 집 주변에는 산 밖에 없잖아."
"그래도 그건 아니야. 안 돼."
나는 또 대놓고 부모님께 엄마아빠 때문에 집에서는 쉴 수가 없다는 불효막심한 소리를 해야 하는 딸이 되어 엄마아빠 가슴에도 대못을 박고, 내 가슴에도 대못을 박았다. 그날의 통화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몇 번째 거절이었을까? 그날, 작고 작은 거절의 경험들이 쌓여 분노로 폭발했다.
고등학생 때는 "나 그때 애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했다.
"걔네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돌아왔다.
처음 약을 받아와서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때 일들이 계속 쌓여서 지금도 힘드네, 엄마도 나한테 이렇게 저렇게 말했었잖아"라고 말했다.
"(...) 왜 그렇게 걔네들한테 맞춰주면서 살았어 (...) 밥 잘 챙겨 먹고 (...)"라고 돌아왔다.
"나 집에는 못 있겠어.", "예배도 아빠 설교 듣는 거 아직 힘들어서 못 드리겠어." 수도 없이 말했는데, 아직도 당신들이 내 슬픔 중 하나임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저렇게 얘기하는구나.
슬픔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까지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미안하다는 말은 언제쯤 들을 수 있는 건지, 결국 이게 내 탓인지, 나는 부모탓을 할 수 없는 건지, 그 어떤 것도 탓할 수 없는 건가? 화가 난다. 화가 너무 난다. 그렇게 앉은 그 자리에서 자살을 시도했었다.
그전에는 슬픔만 있어서 시도만 했지, 결국 무서워서 포기했는데 분노가 가득하니 무섭지도 않았다. 정말 끝낼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었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따라올 결과들도 더 이상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뭐 어쩔 건데- 하는데, 노트북에 카카오톡 알림이 한 개, 분노로 가득한 내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연락이구나, 직감했다. 내가 연락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통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될 수준의 연락이었다. 분노가 사그라들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내려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가 짊어진 책임을 다하러 내려갔다. 그러곤 연락을 마무리 지은 뒤 어떻게든 -상상에 맡긴다- 자금을 만들어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떠나는 날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장소들에서 벗어나 섬 속의 섬 우도로, 일하게 될 곳이 숙소를 제공하는 카페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작은 캐리어와 함께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