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해 주는 힘을 알게 되는 시간
아무도 모르게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났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기독교 색채가 강해 더 깊은 우물같이 느껴지던 학교도. 의지할 곳이 없어 늘 매달렸던 신으로부터도 거리를 두었다. 모두로부터 단절된 우도에서는 새로운 환경과 백지상태의 나만 남았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도착한 우도에서 처음 마주한 공기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해수욕장을 따라서 난 야자수들, 선착장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던 전동차들. 음- 이국적이야, 새로워, 이곳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모르겠지- 하며, 두려움과 해방감을 안고 마을버스를 타고 면접을 보러 갔다.
월화수목금토일, 주 7일을 일하고, 한 달에 네 번의 휴무를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6명의 언니들과 함께 숙소에서 지내며 우도로 들어오고 나가는 배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연령대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모든 게 늦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 보니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5개월 동안 우도생활을 하며 그녀들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 일을 하다 코로나로 잠시 쉬게 되면서 우도로 오게 된 언니들도 있었고, 취준을 하다가 지쳐 제주도로 흘러들어온 언니, 창업을 하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러 온 언니, 일을 하다가 지쳐서 제주도를 찾은 언니. 학교에서, 내 주변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삶의 모양들을 그들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익숙한 가치관, 익숙한 진로, 익숙한 비전, 익숙한 사고방식.
비슷한 가치관, 비슷한 진로, 비슷한 비전, 비슷한 사고방식.
이 모든 것들을 벗어난 삶의 모양들을 마주하며, 익숙하고 편했던 것들이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었음을 그때서야 실감했다. 여태껏 나는 그것들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빙빙 돌기만 했던 것이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니 마음에 평안함이 생겼다. 매일 마주하는 관광객들을 보며, 삶을 즐기고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느꼈다. 이따금씩 이전의 일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숙소 밖으로 나가 바닷가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멍을 때렸다. 수평선 너머 오징어배의 불빛만이 빛나고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들으면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그러고는 아침이 되면 다시 출근을 한다. 계속해서 흔들리지만 매일 주어진 일이 있으니 안정감이 생겼다. 매일 일을 하고 내 삶을 내가 책임지는 일상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됨을 알게 되었다.
풍랑주의보가 뜨는 날에는 강제휴무날이 되었다. 우리는 풍랑주의보가 뜰만한 날이 온다 싶으면 소소한 파티를 벌이곤 했다. 어느 날에는 한 언니가 술을 너무 마시는 바람에 본인의 이불에 토를 한 적이 있는데, 함께 방을 쓰던 다른 언니와 새벽바람부터 그 뒤처리를 한다고 밖에서 이불빨래를 했다. 그러다가 동이 트기 시작하는데, 하늘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변했다.
시큼한 토냄새를 날려버리기 위해 부은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와 동트기 직전의 하늘, 그리고 하늘색에 따라 오색찬란한 빛으로 바뀐 잠잠한 바다. 이 날의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 아직 이런 풍경들이 앞으로의 삶에 남아있는 거라면 더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만의 틀에 나를 가둬서 미처 상상해보지도 못하고, 만나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얼마나 많을까, 처음 떠올려보게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일찍 죽는게 꿈이라며,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다며, 각종 우울한 소리를 늘어놓는 내게 세상에 재밌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냐던 룸메언니, 남들보다 뒤처지고 항상 느리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렇지 않다고 얘기해 준 언니들. 정말이지, 어찌 보면 잠깐보고 말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늘 진심을 다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휴무일에도 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별 기대도 없이 그저 침대 위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차츰차츰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러 본섬으로도 나갔다.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알리지 않다가, 한 달쯤 뒤에 소식을 차차 전했다. 사실 지금 우도에서 살고 있다고, 행복하다고. 정직하게 살자라는 가훈을 잘 못 져버리는 탓에, 부모님께도 몇 주 만에 실토했다. 처음엔 우도 해수욕장의 파도와 바람소리를 학교 주변 바다라고 둘러댔는데, 정직을 못 버리기도 하겠고- 결국 아빠가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말했다.
"사실 나 지금 우도에 와있고 일한 지 꽤 됐어. 지난번에 포항 바다라고 말한 거 거짓말이었어. 나 행복해 아빠 나 틀리지 않았어-"
우도에서의 5개월. 그간의 고통을 안고 괴로워하면서도, 파도소리에, 아름다운 풍경에, 진심을 다해준 사람들에 큰 위로를 받아 다시 주변의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힘들을 잔뜩 만나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