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1)

운명처럼 만난 개딸 소원이

by 돌문어

- 야 소원아 나 너 얘기로 글 써도 돼? 내가 진짜 너 얘기 이렇게 허구한 날 매번 들어주다 보면 진짜, 네가 사고 치는 것들에다가 내 생각도 요로콤 잘 정리해 가지고 글로 좀 써가지고 세상사람들 보라고 좀 나누고 싶어. 내가 쓸까 말까 쓸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너한테 허락은 맡아야 하지 않나 싶어 가지고. 사실 나 브런치 작가거든- 내가 쓴 글도 보여줄게. 진짜루. 어떻게 생각해.


글이요? 흠... 대신 이름은 다른 걸로 바꿔줘야 해요


- 아 당연하지 뭘로 할래? 네가 한 번 정해줘 봐.


음... 소원이요


- 소원이? 야, 진짜 괜찮다. 사실 나도 고민해 봤는데 진짜 별로였는데, 소원이 괜찮은데?


대신 저 집도착 하려면 1시간 남았는데 그때까지 통화해 줘요


- 진짜 그건 좀 너무 심하지 않냐... 내 생각도 좀 해줘...


알겠어요 그럼 30분만-


오케이



소원이를 만나다


나는 작년 9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교회에 등록해 지금까지 벌써 8개월 가까이, 예배를 위해 이것저것 도우며 교회를 다니고 있다. 처음 교회를 방문했을 때, 담임목사님께서 교회음향-을 비롯한 방송과 피피티-를 맡아줄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 일을 맡아서 했던 내가 이 척박한 광야 같은 교회에 짜잔- 하고 등장했다는, 그런 뻔한 배경이다.


교회도 참 평범하지 않은 교회였다. 담임목사님께서 오랫동안 위기청소년, 미혼모, 자립준비청년 등을 대상으로 사단법인까지 세워가며 사역하고 계신 곳이라 그런지, 이곳의 예배는 다른 어느 곳과는 다르게 참 진실되게 느껴졌다. 관성에 기대어 편안하고 안락한, 어떻게 보면 자기들끼리만 행복하고 마는 그런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아주 낮고 낮은 자리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개딸 소원이도 이곳의 몇몇 친구들과는 다르지 않게, 소년원에서 임시퇴원한 후, 따로 지낼 곳이 없어 보호관찰을 위해 교회의 자립관에 들어와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복잡한 내부사정과 더불어 각종 트라우마로 혼자 지내지 못하는 소원이를, 목사님의 부탁으로 내가 지내는 방에 데려와 약 2주가량 함께 지내게 됐다. 때마침 나는 학원 일을 마무리하고 새 직장에 입사를 하기까지 한 달가량의 시간이 있었고, 방도 널찍했던 덕이다.


그녀는 많은 사건사고들을 지나 지금은 보호관찰 아래에서 혼자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사건사고들을... 일으키며 잊을만하면 전화를 거는 개딸 소원이가 되겠다. 그래도 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진 않음에 감사하다.



나는 왜


분명 건축 관련 글을 쓰겠다고 시작한 브런치였는데, 이 무슨 휴머니티 잔뜩 버무려진 글들 뿐인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이런 길을 걸어가고 있나 신기할 때가 많다. 그렇게 되짚고 되짚어가다 보면, 이건 신의 큰 그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이없게 정교한 부분이 잔뜩이다.


중학교 때 만났던 아이들을 통해 받았던 충격과 상처들,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것들을 소화하느라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소화가 어느 정도 끝났다 싶으니 다시 이런 친구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재회하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 같은 동네에서 지냈던아이 하나를 이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으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낯설지가 않았는데, 몇 달이 지나서야 서로를 알아봤다. 그때도 시설에서 다른 애들이랑 살았던 앤 데, 어느 순간 노숙자가 되어 지내다 목사님을 알게 되어 교회에 와있었다. 남자친구라는 애는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징역을 살고 있고, 얘는 연계받은 미혼모시설에서 예쁜 아기를 낳았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나는 두 세계가 존재함을 느꼈다. 별 탈없이 자라나 별 탈없이 공부를 하고 별 탈없이 필요한 고민과 필요한 방황을 거쳐 자신의 앞길을 잘 개척해서 나가는 사람들의 세계와, 이런 세계는 자신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인 마냥, 잘못된 선택 속에서, 선택의 여지 또한 없는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다. 이 두 세계는 마치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는 늘 이 두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 느꼈다. 못 본 척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잘 안 됐다. 늘 눈에 밟혔다.


이런 세상을 이해하느라- 나를 이해하느라- 긴 터널을 지나는 중에, 좋은 어른들을 만나 여기까지 자라올 수 있었다고,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말하곤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기에 나의 꿈은 언제나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이 홀로 걸어갈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걸어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어른, 끝까지 응원해 주는 그런 어른이 되는 것 말이다.


그러다 소원이를 만났고, 소원이를 보면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받은 것을 소원이에게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쉽지가 않네

이 개딸.



소원이에게_0321


소원아. 맨날 네가 하는 행동들에 대해 웃기만 해서 미안해. 왜 사과를 먼저 하게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난 아직 너를 잘 모르기 때문에, 너를 관찰하고 거기에 대한 나의 생각과 판단을 글로 정리하는 게 옳은 짓인지 잘 모르겠는데, 음 이게 나중에 너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맘이기도 하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너를 보면서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가 봐.


엄마의 학대로부터, 아버지의 방임으로부터 도망쳐 집을 나와 시설생활을 전전하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통고 신청으로 인해 소년원까지 들어간 너는, 분명 내가 봐도 아무 잘못이 없어. 남에게 피해를 받았다면 받았지, 네가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더라고.


21년을 줄곧 억울하게 살아왔으니 너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을지 나는 감히 짐작도 안 된다. 네가 죽고 싶다고,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면 나도 정말, 포기하지 말라고, 생각을 바꾸면 되는 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 그래서 그냥 하나님한테 가서 따지라고 하는 거야. 너의 그 마음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래도 있잖아, 네가 그 억울한 마음에서 조금만 벗어난다면, 세상에 네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풍경이 정말 많다는 걸, 계속해서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어. 네가 발 붙이고 살아갈 이 세상이 좋은 곳이 되도록, 언젠가는 네가 받은 상처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좋을 때가 올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할게.


적어도 내가 받은 만큼이라도 너에게 줄 수 있음 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