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내 삶을 저격당해 본 적 있나요
언젠가 삶의 심연을, 세상의 심연을 마주하고선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 후로 어떻게든 사랑만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밑바닥까지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책이다.
라고 알라딘 한줄평 머시기에 남겨놓고 이제서야 서평을 써보려 한다. 작가님이 서평을 쓰면 티셔츠를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보상은 늘 나를 움직인다.
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정말이지, 서평을 쓸 엄두가 안 났다. 저렇게 한줄평을 쓴 것도 한참을 고민해서 나온 말이다. 이유인즉슨, 그냥 이 책 한 권에 내 삶을 저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책을,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땐 보통 내가 상상도 못 한, 경험해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만나서 벅차지, 책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우는 잘 없지 않나 보통? 아니, 이게 성경책도 아니고. 근데 진짜 성경 읽다가 은혜받는 수준과 비슷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목사시다,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과,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버지를 따라 교회를 옮기며 살았던 시간이 나의 신앙과 삶을 지속함에 있어 제일 큰 걸림돌이었음을 고백하며, 지금은 허구한 날 주님 없인 못 살아, 안 살아를 외치며, 장로교 통합 측 교단의 아주 건강하고 낮은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교회를 열심히 다닐 뿐만 아니라 담임목사님과 꾸준한 소통과 교제를 하며 사는 건강하지만 약간 양아치스러운 신앙인임을 밝힙니다. 필요하면 주님께서 알아서 제때 내려주시는 성령 감화 감동받고 회개하겠습니다.
더러는 이 책이 사랑에 대해 말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사랑보다도 삶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고 본다. 700여 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인 만큼 정말 다양한 삶의 모양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삶들이 결코 개별적인 것으로 부유하지 않고 서로 얽히는 모양새가 너무 현실적이라 더러는 불쾌감마저 느낄 수준이다. 누구에게는 그 모양이 굉장히 낯설고 당황스러운 내용이라 불쾌하겠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본인이 경험했거나 곁에서 직접 본 것이기에 불쾌할 수 있다. 장편소설을 펼치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보려 했던 사람을 갑자기 현실 저 밑바닥에다가 내리꽂아주는 느낌. 근데 이제 나의 경우에는 정말 지금 살고 있는, 제 일상에다가 갖다 놓아버린. 1부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이름과 얼굴과 이야기들이 수없이 교차하며 지나갔으며,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들이 촘촘히 올라오는 바람에, 그 감정이 마무리가 될 때까지 책장을 계속해서 넘길 수밖에 없었다.
2부는 그야말로 초월의 과정에 집중해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SF적 장치로 작중 인물이 죽음을 잃어버려 끝도 없이 삶을 반복해 가고, 삶에 던져져 자의를 상실하고, 저 밑바닥 끝까지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는 과정과 그 이후를 그리며, 2부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리는 장면에서 살아감에 대해, 사랑함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시종일관 진지한 텐션을 유지하지 않고, 가볍게 풀어주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어서,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어이없어 실소를 터트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금새 마지막장에 다다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지나왔던 날들이 스쳐갔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험했어야 했던 것들, 내가 마주 봐야 했던 것들. 나를 상처 줬던 사람들,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들. 그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들. 삶이란 그 안에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도리들을 애써 이해해야만 살아지거나, 철저히 무시해야만 살아지는 것이었다. 후자는 성정에 맞지 않았다. 어떻게든 정면돌파해서 뚫고 지나가야 하는 쪽이었다. 그러다 전의를 상실하고 온몸에 근육이 다 빠지고, 등이 아파 소리를 지를 때까지 누워서 울던 시간들. 그렇게 울면서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내가 해볼 수 있었던, 가볼 수 있었던 수많은 길들을 머릿속으로 그렸었더랬다. 과거를 비우고,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도, 남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도 다 비우고 한 발짝 새로운 걸음을 내딛고 난 후 새롭게 힘을 얻어 지금까지 오게 된 여정들이, 시궁창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를 사랑이란 마음으로 돕고자, 꺼내주고자 했던 기억이, (그러다 사기를 당했던 기억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그 시간들을 초월하고 여기에 다다른 것일까?
앞으로 무언가를 또 초월하게 되진 않을까?
* 책을 읽는 내내 가수 이오늘님의 사랑이라는 EP앨범을 들었습니다.
신곡이 나왔던 참에 겸사겸사 들었던 앨범인데 읽는 내내 너무 찰떡이라 느껴서 추천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