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담근 매실주와 매실청이 먹음직하게 익었다. 매실에 설탕과 소주만 넣으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해보니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매실을 세척하고 이쑤시개로 한알 한알 꼭지를 딴 뒤 물기를 제거하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몇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잘 익어주길 바랐는데, 얼마 뒤 표면 부분에 곰팡이가 피었다. 설탕에 담기지 않은 부분이 삭은 거라 걷어내고 설탕을 더 넣어줬다. 그 뒤로 매실주와 매실청은 별 말썽 없이 잘 익어 어느새 100일이 됐다.
함께 작업한 친구와 100일 되는 날을 기념하며 시식을 했다. 매실주가 별 거냐 싶기도 한데 직접 만든 노고 때문인지, 기다림 때문인지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그 뒤로 밤마다 한 모금씩 야금야금 매실주를 축내고 있다. 은은한 조명에 잔잔한 노래가 흐르는 작은 방, 가벼운 안주와 매실주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새벽 5시쯤 혹은 그보다 일찍 집을 나서 종일 쉴 새 없이 일하다 밤 9시쯤 집에 돌아오는 강도 높은 노동을 수십 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루틴처럼 샤워를 한 뒤 컵 하나를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각종 담금주가 담긴 커다란 들통에서 컵 가득 술을 담아 오는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몸에 좋지도 않은 술을 왜 그리 자주 마시냐며 타박하는 사람이 집에 셋이나 있다보니 눈치를 살피는 거다. TV나 핸드폰에 눈이 팔려 있다 이따금 아빠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해 한 소리하면 아빠는 머쓱하게 웃으며 원래는 머그잔이었던 술잔을 슥 가린다. 그 모습이 퍽 사랑스러웠다.
고작 1년 반 만에 혼자 사는 일엔 장점만 가득하다고 떠드는 나지만, 이따금씩 가족들과 함께 살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내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온전히 쉬는 지금이 좋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인 오래된 집에서 울리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때도 있었다. 조만간 매실주를 집에 챙겨가야겠다. 컵이 넘칠 듯 가득 담아 아빠와 나눠 마셔야지.
2024.10.24.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