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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두 Oct 24. 2024

담금주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6월에 담근 매실주와 매실청이 먹음직하게 익었다. 매실에 설탕과 소주만 넣으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해보니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매실을 세척하고 이쑤시개로 한알 한알 꼭지를 딴 뒤 물기를 제거하는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몇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잘 익어주길 바랐는데, 얼마 뒤 표면 부분에 곰팡이가 피었다. 설탕에 담기지 않은 부분이 삭은 거라 걷어내고 설탕을 더 넣어줬다. 그 뒤로 매실주와 매실청은 별 말썽 없이 잘 익어 어느새 100일이 됐다.


함께 작업한 친구와 100일 되는 날을 기념하며 시식을 했다. 매실주가 별 거냐 싶기도 한데 직접 만든 노고 때문인지, 기다림 때문인지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그 뒤로 밤마다 한 모금씩 야금야금 매실주를 축내고 있다. 은은한 조명에 잔잔한 노래가 흐르는 작은 방, 가벼운 안주와 매실주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행복이란 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럴 때면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새벽 5시쯤 혹은 그보다 일찍 집을 나서 종일 쉴 새 없이 일하다 밤 9시쯤 집에 돌아오는 강도 높은 노동을 수십 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루틴처럼 샤워를 한 뒤 컵 하나를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각종 담금주가 담긴 커다란 들통에서 컵 가득 술을 담아 오는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몸에 좋지도 않은 술을 왜 그리 자주 마시냐며 타박하는 사람이 집에 셋이나 있다보니 눈치를 살피는 거다. TV나 핸드폰에 눈이 팔려 있다 이따금 아빠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해 한 소리하면 아빠는 머쓱하게 웃으며 원래는 머그잔이었던 술잔을 슥 가린다. 그 모습이 퍽 사랑스러웠다.


고작 1년 반 만에 혼자 사는 일엔 장점만 가득하다고 떠드는 나지만, 이따금씩 가족들과 함께 살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내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온전히 쉬는 지금이 좋다. 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인 오래된 집에서 울리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때도 있었다. 조만간 매실주를 집에 챙겨가야겠다. 컵이 넘칠 듯 가득 담아 아빠와 나눠 마셔야지.


2024.10.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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