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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무빙 Jun 09. 2021

너의 입장이 되어

피아노 소리와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저 어제와 비슷할 것 같은 오늘. 평범하고도 평범한 오늘. 그 평범함 속 커튼을 흔들어서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바람처럼, 우리의 성장통은 예기치 못한 순간, 그저 평범한 순간에 우리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 성장통은 흔들리는 커튼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고통은 성장의 원천이라 불린다. 성장하고 나서야 고통은 견딜 만 했다면서, 고통받았던 순간의 아픔을 잊고 성장이란 결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우린 고통을 받아야만 과연 성장할 수 있는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이들은 성장하지 않은 것인가. <성장통>이란 영화는 평범 속의 바람에 쓰릴 듯 아픈 고통의 성장 속에 있는 아이를 마주한다. 



 영화의 초반 주인공 ‘민아’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정류장 앞에 자신의 친구가 있는지 확인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빠르게 뛰어간다. 친구를 만나서 대화하는 두 아이를 카메라는 바스트 샷으로 카메라 안에 담아낸다. 나영이 민아와 함께 먹기 위해 도시락을 가져오자, 민아도 내일은 같이 나눠 먹을 도시락을 싸 오겠다고 약속한다. 서로의 약속 끝에, 풀샷으로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두 아이를 보여준다. 이렇듯 이 시절 속 학생들은 친구와 소통하면서 그리고 자그마한 약속을 만들어 가면서 오늘을 살아 간다.  



 그저 두 학생의 아름다운 우정에 대해서 다룰 것만 같았던 영화는 학교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전복된다. 진정한 의미의 ‘성장통’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한다. 나영은 부모님의 이혼과 곧 있을 이사로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민아는 그저 그 대화를 듣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민아의 좌석에서 바라보는 나영을 보여준다. 카메라 속의 공백은 현재 나영이 느끼고 있는 공백과 상실감 그리고 그 아이가 견뎌야 하는 하루의 무게감이다.  


 나영의 상실, 고통을 마주한 민아는 그 고통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바라본다. 자신의 가족은 마치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들의 가족과 우리의 가족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결국 그 선을 그어 버리는 행동은 버스를 같이 타지 않는 것으로 연결된다. 함께 하지 않음으로, 자신은 같은 반 친구들의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 자신의 가족은 완벽하다는 그 다짐을 결국 해버리고 만다. 그 다짐의 결과는 그저 수업에 늦어, 선생님께 사과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영이 그런 민아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민아는 그저 도시락을 건네주면서 처음의 약속을 깨버리고 만다. 두 사람의 우정은 그렇게 깨져버렸다. 그 순간 나영의 앵글은 외롭다. 그저 한 앵글 속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다가갔으나 결국 혼자가 되어버렸다.  

 민아는 집에 들어가며, 누군가 자신의 집에 편지를 넣는 것을 보게 된다. 그 편지를 챙겨 들어가 직접 읽게 된 민아는 순간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평범할 거라고 생각한, 나영의 집과는 다르다며 굳게 다짐한 그 순간이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결국 민아는 그 사실의 무게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간 민아를 잡는 카메라 앵글은 누군가와의 관계성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그건 그동안 민아는 누군가와 관계를 통해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비밀을 알아버린 민아는 나의 관계로 오늘의 고통을 헤쳐나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만, 결국 혼자 고민해야 하는 민아의 앵글은 그 이전의 나영의 앵글처럼 고독하게 그저 혼자서 존재한다. 진실과 마주하고, 나영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 민아는 창문 밖의 정류장을 바라보면서, 나영을 찾는다. 하지만 때는 늦었고, 결국 나영이 혼자 있던 시간을 민아도 경험하게 된다.  


 영화 속 한 아이의 성장통은 의도하지 않은 순간 찾아왔다. 완벽한 가족이라 생각했던 순간, 우리 가족 구성원이 개별의 사림임을 알게 된다. 비밀을 알게 된 엄마를 바라보면서, 그저 가족 속의 엄마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아빠를 향해서도 언니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성장은 그렇게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함에 있다. 아빠의 외도를 아이가 막을 수는 없다. 영화 속의 성장통은 우리 가족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혼자서 이겨 나아가는 것, 그것이다.  


 

고통은 한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을 담보로 고통을 감내한다는 건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민아의 성장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시락을 손에 쥐고서 창밖을 바라보는 민아는 고통을 이해하는 와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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