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비무빙 Jun 23. 2021

꽃 속에 담긴 의미

마음을 전달하는 꽃은 때때로 마음이 아닌 형식만이 전달된다. 미안한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닌 그저 사과했다는 형식이 담긴 꽃으로, 사랑이 담긴 것이 아닌 그저 사랑을 표현했다는 형식만이 담긴 그저 형식으로서 꽃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나, 애써 형식이 아닌 마음을 보려고 한다. 결국, 마음이 담기지 않은 꽃을 보며 애써 웃음 지어본다. 웃으며 당장의 문제는 없던 일이 될 거라는 환상. 우린 그 환상 속에서 살아갔다.


“나는 오늘 꽃을 받았다”는 영우가 자영에게 꽃을 주고, 그 꽃을 벽에 걸어두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꽃을 주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으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영우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다시는 안 그럴게”라는 말은 결코 지킬 수 없는 말이라는 사실을 익히 직감한 관객은 이 남성의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영우의 말을 듣고 꽃의 마음을 보려고 했던 자영의 웃음으로 첫 장면이 페이드 아웃된다.  

 

학원 선생님으로 보이는 자영의 앞에 한 남자 아이가 와서 예린이 자신을 때린다고 말한다. 그 말에 예린은 찬호가 자신을 먼저 건드렸다고 말하자, 자영은 원래 남자들은 여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예린은 그런 게 어딨냐고 화를 내지만, 그 말에 대한 답변 없이 자영은 남자친구의 부재중 전화 한 통에 급하게 학원을 나온다.

영우와 자영은 만나고 영우는 계속해서 자영을 추궁한다. 자영은 계속해서 사과를 하고, 영우는 계속해서 자영을 의심하며 자신이 화가 난 이유는 자영이 전화를 받지 않고, 자영이 치마를 입고, 딴 남자가 생긴 것 같다며 자신의 화를 정당화한다. 이 때, 카메라는 자영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면서 영우의 시선으로 자영을 쳐다봄과 동시에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자영이 죄인인가, 과연 자영이 이 파국의 원인인가. 결국 자영은 영우의 손에 의해서 쓰러지고, 그런 선생님을 본 예린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현장을 떠난다.

예린은 선생님에게 질문한다. 좋아하면 잘해줘야 하는게 아닌가요? 답을 하지 못한 자영은 바람 소리 사운드가 극적으로 들린다. 그 바람 소리는 드디어 자신의 처지를 마주하게 된 자영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사랑 앞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 상대의 감정이 아닌 자신의 감정이다. 상대의 간섭은 통제인지 확인해야 한다. 사랑 앞에 그대가 있는 것이 아닌 사랑 앞에 우리가 존재해야 함을 알게 된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꽃을 받았기에 행복하다고 자신을 평가했었다. 하지만 자영이 몰랐던 것은 꽃 안에 담긴 것이 사과, 미안함이 아닌 그저 사과를 했다는 그저 형식 그 자체였을 뿐이다.

 

자영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자각했지만, 영우와의 인연을 바로 끊어내지 못한다. 영우는 다시 꽃을 들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미안하다 사과했고, 그 꽃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 지 혼란스러워 했다. 결국 자영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다. 상처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상처를 인지하는 순간에 아픔을 느끼게 된다. 결국 무릎에 난 상처로 자신 마음의 상처를 보게 된 자영은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마음이 아프다. 이 아픔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에 오는 아픔과는 다른 것이다.  

 

다음 날에 또 다시 예린과 찬호가 싸우는 것을 보고, 예린이 그 다툼 중에 다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이는 상처를 입었고, 마음의 상처도 입었다. 어젯밤에 영우와의 관계를 정리하느라 혼란스러워 스스로의 상처를 돌이켜 볼 수 없던 것을 예린의 상처를 보고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랑이란 단어가 주는  때문에, 사랑 안에서 이뤄지는 폭력에 대해선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으로 우린 관계 속의 상처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관계 속의 상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에,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기에  아프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잔인함을 타인의 말과 모습을 통해서  스스로 인지하고 아픈 관계를 깬다. 오늘날의 사회는 사랑 속에 폭력은 존재해선 안되다는 사실을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폭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정의는 모두 다르다.  영화는 폭력은 물리적 폭력이 아닌 정서적 폭력도 존재함을 알려준다. 어떠한 형식의 폭력도 사랑을 전제로 행해져서는 안된다. 이는 사랑을 전제했지만, 사랑이 아닌 그저 폭력인 것이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1806698&memberNo=16396899



작가의 이전글 너의 입장이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