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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선 Jan 12. 2023

엄마가 싫어하는 딸의 운동

둘째 딸은 힘쎈캐

딸만 셋인 딸 부잣집. 엄마까지 포함해 여자가 넷인 집은 서로의 나체가 자연스럽다. 또, 서로의 나체를 보면서 살이 쪘네 안 쪘네, 엉덩이가 있네 없네, 가슴이 크네 작네 하는 이야기도 자연스럽다. 탈의가 필요한 이 이야기는 주로 화장실 앞에서 이루어진다. 각자 샤워하기 위해 옷을 벗고 있으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난 반 진담 반의 맹공격이 오간다.


그날은 컨디션이 좋았다. 평소 들던 무게보다 더 많은 무게를 쇄골에 얹어도 가뿐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걸 잘 먹었다고 표현하던데 그 표현을 응용해서 말한다면 거의 뭐 만찬이었다. 이렇게 운동이 잘 먹은 날은 제대로운동한 거 같아 집으로 가는 길이 더없이 상쾌하다. 집에 가면 곧장 샤워를 해야지, 근육통이 있을 테니 뜨뜻한 물에 오래 지져야지, 하는 계획 아닌 계획도 세우게 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계획대로 땀에 젖은 운동복을 훌렁훌렁 벗었다. 탈의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찰나 이제야 왔냐며 인사하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 야, 너는 여자애 몸이 그게 다 뭐야

- 아 뭐가


평소와 다른 지적에 퉁명스레 대답하고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왔다. 부모와 함께한 27년. 밥도 눈칫밥도 잘 챙겨 먹은 둘째는 엄마가 눈빛에 숨긴 의도를 읽고 싶지 않아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부모 본인들은 물론, 나머지 자식들 중에서도 운동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없는데 운동에 미쳐 여기저기 상처 입어오는 저 둘째 놈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마음을 읽어버리고 만다. 내 딸이 여성스러웠으면 좋겠고, 과격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힘이 너무 세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런 고정관념에 빗댄 마음과 함께 말이다.


엄마도 보면 참 옛날 사람이야, 혼자 구시렁대었지만 늘어나는 혼잣말과 다르게 팔랑귀 귀에 들어온 엄마의 한 마디가 괜히 찝찝했다. 화장실 거울로 전신을 마주 본다. 목 바로 아래 튀어나온 양쪽 쇄골 끝이 빨갛고 푸르다. 허벅지 위쪽을 장식한 멍과 양 쪽 정강이 뼈를 탄 옅은 착색 무늬는 보랏빛과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여자 몸에... 좀 보기 그런가?


온기 없는 화장실에서 오래 몸을 감상하다 보니 한기가 돌았다. 얼른 뜨거운 물을 틀었다. 따뜻한 수증기가 화장실에 가득 차 거울이 뿌옇다. 거울에 선명했던 전신은 가려졌다. 엄마의 말이 찝찝한 효녀는 눈을 감고 물을 맞으며 상처 없이 운동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어쩌다 몸에 이렇게 멍이 들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사랑하는 운동 역도는 모든 동작에서 바벨과 몸이 가깝게 붙어야 한다. 바벨과 몸이 멀어질수록 몸이 체감하는 바벨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무거운 무게를 느낀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다. 역도는 힘이 중요한 운동이지만, 역설적으로 무게가 무거울수록 몸에 힘을 빼야 좋은 자세로 무게를 끌 수 있다. 그래서 동작을 시작하는 데드리프트 자세에서부터 바벨을 정강이에 붙이고 시작한다. 그렇게 바벨을 몸에 붙이고 올라오면 정강이 위로 피부가 긁히는 걸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요령 없는 초보자들은 예쁜 자세로 무게를 잘 들고 싶은 마음에 정강이를 더 박박 긁으면서 올라온다.


바벨을 무릎 위로 끌고 올라오면 몸은 바벨을 들고 선 자세가 된다. 바로 그 순간 점프하면서 허벅지에 닿은 바벨을 튕겨내야 한다. 튕겨진 바벨은 공중으로 약간 띄워지는데, 그걸 명치까지 빠르게 올려 프런트 스쾃으로 받으면 클린 자세가 되고, 머리 위로 바로 올려 무게를 받으면 스내치 자세가 된다. 우리가 사랑한 역도 영웅, 장미란을 통해서 봤던 그 자세들이다.


역도인 들은 이 두 동작을 정확히 수행하기 위해 같은 동작을 몇 십 번씩 반복한다. 자신의 자세에서 잘못된 디테일을 잡아가면서 동작의 완성도를 높이기 때문에 말귀를 잘 알아듣고,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이 역도에서 타율이 높다. 평소에도 말귀가 어둡고 타고난 뚝딱이인 나는 역도를 마주한 지 몇 개월인데도 매번 같은 지적에, 잘못된 자세만 수행하고 앉아있으니 스스로도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재능이 없는 경우는 언제 겪어도 참 지긋지긋한 일이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찾고 있는 그 '느낌'을 찾기 전까지 나는 아마 계속 정강이를 박박 긁으며 바벨을 잡겠지. 오늘 같은 날은 무게 욕심에 쇄골에 더 많은 무게를 얹을 것이고, 또 어느 날은 갑자기 감을 잡아 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섣불리 허벅지를 치면서 더 깊고 진한 상처를 남기겠지.


잔뜩 뿌예진 거울을 물로 대충 닦아낸다. 거울은 물기 어린 상태로 선명해졌다. 쇄골부터 허벅지, 정강이의 흉터들을 다시 바라본다. 이 알록달록한 상처들은 어쩔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걸 잘하려면 이렇게까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상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부정적일 수 없다. 밉지만 기특한 상처들. 엄마가 던진 '여자애' 상태에서 '역도 체육관 역린이 1'상태로 전환된다.


물기를 털어내며 처음 질문을 다시 상기시켜 본다. 상처 없이 역도할 수 있을까? 없다. 효도 좀 하려 했더니, 이미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예정이다. 몰래 읽어낸 엄마의 바람까지도 이루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또 새삼 깨닫는다. 물기를 얼추 다 털어내고 옷을 입기 위해 옷장 앞에 섰다. 그래도 오늘 당장은 엄마의 속상함을 달래야 하니까 긴 옷을 주워 입는 것으로 효도를 타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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