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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선 Oct 18. 2024

29살, 희망퇴직

이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세상 살다 보면 나와는 아주 멀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갑작스레 병에 걸린다던가, 사고를 당한다던가, 주변 사람이 큰 일을 겪는다거나 하는 뉴스에서 보는 그런 일들 말이다. 분명 나라는 사람이 섞여있는 사회의 소식인데 쳇바퀴 같은 일상이 굴러가면 그저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TV에 나오는 일이라고 치부하게만 된다.


TV 속 주인공이 된 시점은 29살을 맞이하고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 것과는 달리 29살의 시간들은 빠르고 지루했다. 어느덧 첫 직장에서의 나의 근속연수는 3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3·6·9년 차 기점으로 찾아온다는 첫 퇴사병을 시름시름 앓고 있기도 했다.


3년 정도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고루해진 일에 발전이 느껴지지 않아 두려웠지만, 정든 첫 직장과 손때 묻은 일을 떠나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비례해서 증가하기도 했다. 주렁주렁 고민을 달며 출근하는 어느 날 뉴스에서는 여타 대기업, 금융권에서 경기 불황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희망퇴직?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응답하라 1988이었다. 내게 희망퇴직은 응팔에 나온 것처럼 우리네 아버지들이 몇십 년 동안 다닌 직장을 뒤로한 채 박스 하나를 들고 나오는 가슴이 짠하고 뭉클한 장면이었다. 사회의 냉정함을 영상화한 그런 간접적인 모습 말이다. 하지만 출근길에 접한 뉴스는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제안하는 연령층을 낮춰 청년층에게도 희망퇴직을 권고한다는 내용이었다. 뉴스를 보고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와 경기가 많이 어렵긴 한가 보네'

라는 한 줄짜리 사회적 소감과


'대기업이랑 금융권이면... 억 단위는 챙겨주려나'

정도의 호기심


두 줄 정도로 생각을 마치자 흥미가 떨어진 나는 좋아하는 밴드 음악으로 관심을 틀어버렸다. 내 미래 고민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남의 일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앞으로 불어올 찬 바람과는 달리 창 밖으로 살랑살랑 부는 초여름 바람이 기분을 달래주고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와 같이 사무실에 올라가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가방을 두고 커피를 타러 갔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핸드폰으로 메일과 사내 메신저인 슬랙을 확인한다.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그동안 오늘 업무 사항을 정리하는 게 익숙한 근무 전 루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슬랙 가장 최신 메시지가 부장님이다. 팀원들과 소통 창구로 쓰는 슬랙에 부장님이 등장하는 일은 많지 않다. 메시지엔 인사 관련 중요 전달 사항이 있으니 시간 맞춰 팀원 모두 화상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과 함께 화상 회의 링크가 걸려있었다. 사람의 불길한 촉은 수년간 쌓아온 데이터라고 하지 않나. 아침에 본 뉴스와 최근 회사 상황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맞물려 돌아갔다.


전 세계적으로 큰 혼란을 준 코로나 직전,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업으로 '콘텐츠'를 다루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새로운 부서가 생겨나고 팀원들이 채워지면서 사업을 꾸려가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강제적 집콕이 사회 전체로 퍼지면서 회사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코로나 시절 취준을 하던 나는 그렇게 회사의 호황기에 합류하게 된다. 회사의 가장 큰 매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호황기를 누리며 나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셈이었다.


끝날 거 같지 않았던 코로나가 잦아들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바깥의 오락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코로다 덕을 본 매출 그래프는 둔화되기 시작했고, 최근엔 경기 불황과 겹쳐지며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열심히'하면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거란 믿음과 달리 그래프는 쉽게 우상향을 보이지 않았고, 상황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한 각 부서에서는 비용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익이 잘 나오지 않는 일들부터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이 줄어드니, 저절로 사원은 많은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회사 수익에 가장 큰 축을 담당했던 회사와의 계약이 어긋나면서 앞으로의 더 큰 매출 감소가 예견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팀원들과의 점심 식사에서는 주로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주제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인 '정규직'이라는 근로 형태를 믿고 있었던 거 같다. 대화들은 '설마 잘리겠어'라는 반강제성을 띈 희망의 말들로 매듭지어졌지만,


회사의 매출 감소가 예견됨에 따라 우리 회사에서도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했어요. 대상자는 인사팀과 대화를 나눈 후 어떤 결정을 하게 됐는지 기한 내로 말해 주세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조상님의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지 24년의 반절기가 지난 시점, 아주 더운 날씨와는 달리 결국 우리 회사에서도 희망퇴직이라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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