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 먹고 사는 기예술>전. 퍼블릭아트 2017년 2월호 기고
전시 이름인즉 <수작, 먹고 사는 기예술>이다. 여기에서 수작은 손으로 만든다는 ‘手作’ 을 의미한다. 이 얌전한 이름 뒤에 사실은 ‘수작 부리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사소한 집회 같이 보이기도 했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엿듣고 싶은 재간의 장이기도 했다. 전시의 주역은 수원역 뒤편, 구 서울대 농대 건물에 들어선 청년 예술인들이다. 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한동안 비어 침울했던 동네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 둥지에는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고, 자유분방한 움직임으로 차올랐다. 그 울렁임을 감지했는지 전시 오프닝에는 이번 겨울 최하 온도라는 기록적 한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전시에 참여한 42개 팀은 예술이 우리 삶에 같이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총 5파트로 나뉘어 있었는데 만들기를 실천하는 시민과 작업자를 위한 ‘창생 공간’, 메이커 문화를 소개하는 ‘제작 문화’ 파트, 재야 출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독립출판’, 반려동물을 위한 제작 파트인 ‘동물을 위한 삶의 기술’그리고 ‘아트 마켓’이다. 이미 화
이트 큐브의 고상함이 예술 전체를 대변하지 못함을 공공연히 인정하는 바지만, 이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아예 뭉개버렸다. 우리 집 강아지의 집을 지어주는 것은 예술인가, 잼과 젤리를 만드는 것은 예술인가, 모형 비행기를 만들고 보트를 만드는 것은 과연 예술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진짜로 예술인가 하는 의문을 천진난만하게 제시했다. 이게 예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즐기고 있다며, 여기 와서 한번 구경 좀 해보라고.
그런데 이 움직임이 단순한 생활의 연장이라고 정의하기에 이 ‘예술가’들의 고민과 고행은 가히 예술적이다. 한선경은 자신의 얼굴을 붕어빵 틀처럼 만들어 전시장 한켠에 마차를 설치하고 <예술가표 선경이빵>을 구워 팔았다. 그에게 ‘선경이 빵’은 단순한 군것질거리가 아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세 상인의 생계 수단을 드러내기도 하며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회의를 담는다. 빵이 되어버린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나를 먹어 달라, 당신의 똥이 되어도 좋다고 예술의 유효함을 이야기한다. 한편, 또 다른 참여 팀 ‘생활적정랩빼꼼’의 주제는 발효다. 시간과 노동이 들어야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주제 선택의 이유다. 그는 발효 음식의 제작과정에 집중하고자 했다. 일대 지역의 상권이 무너지면서 과일 가게에서 팔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을 구입해 잼과 젤리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소통하는 과정을 거쳤고 자연스레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수집한 리서치 기반의 책을 내기도 했다.
전시의 특이점 중 하나는 작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이었는데, 진열된 대부분이 구매가 가능한 것이었으며 복제품이었고, 전시의 이름처럼 ‘당연하게도’ 손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는 제작 문화 운동을 산업으로 확장하도록 실험하며, 삶 안에서의 기술과 제작 문화를 고민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제작 문화 활동이 자본과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위험성을 견지하고,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할지를 상상하게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예술 혹은 기술, 그러한 태도가 삶에 스며들려는 의도를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술가’로 불리기를 원할까? 거기에서 만난 면면에는 원본의 아우라, 예술가의 수행, 숭고함 같은 것들을 표방하는 ‘예술’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작가들 역시도 그런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예술의 최전선이란 삶에 녹아드는 기교적인 행위라고 명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시가 열린 경기청년문화창작소 상상 공작실은 목공, 디자인, 출판, 도색, 사진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자전거·양조 공방, 라이브클럽 등 팹랩(fab lab) 공간을 갖추고 오는 3월에 정식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곳에서 앞
으로 펼쳐질 다양한 행위의 시도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