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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Nov 25. 2021

고양이를 두고 여행을 떠날때

예진6)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문재 농담



나의 첫번째 해외여행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가 아닌 처음 가본 해외가 남아공이라 두려운 마음이 더 큰 여행이었지만 공짜라서 일단 떠났다. 2010년이었으니 이제는 십년도 더 지난 과거가 되었고 정신 없었던 공항과 길었던 비행시간만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 정작 남아공에서의 기억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 도착해서 처음 축구 경기를 직관으로 보게 되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남아공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나왔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앞으로 가난해도 일년에 한번은 나를 위한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꿈꾸게 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뒤 고양이와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여행이 아닌 1박의 외박이라도 고양이를 위해 챙겨야 할 것이 늘었다. 밥과 물이 충분히 있는지, 화장실은 청결한지 먼저 점검한다. 가정용 CCTV가 잘 작동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들어가야 할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해주고 나의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해야 비로소 현관문을 나설 수 있다.



사실 외출 전 고양이 용품을 챙기는 것은 큰 어려움도 아니다. 문제는 고양이 털의 부드러운 감촉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분명히 털이 지긋지긋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다리 사이를 가볍게 스치면서 지나갈 때의 부드러운 느낌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온기가 그립다. 특히 치즈는 나와 붙어서 자기 때문에 잠결에 무심코 고양이를 찾게 된다. 



길가의 고양이들만 봐도 애틋해지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치즈와 쇼키 생각에 핸드폰 사진을 계속 찾아보게 된다. 잘 정리된 호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치즈야 쇼키야 보고싶어'를 외치는 집사의 혼잣말. 이럴거면 여행은 왜 온건지 이따금 나조차도 의문이었다.



나의 고양이가 나이 들면서 점점 더 긴 시간 집을 비우는 일이 어려워졌다. 그치만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여행을 포기하겠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포기가 더 많은 것들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미 지나간 어떤 날>

- 반려동물 에세이, 매주 목요일 만나요

* 캘리그라피작가 언니 예진 @iyj1120 

* 수의테크니션 동생 수진 @__am.0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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