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깃털을 잃은 나무

by 이우선주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니트 카디건을 입고 외출했던 태림은 뚝 떨어진 기온에 놀라 롱패딩을 꺼내 입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풍성했던 가로수는 하룻밤 사이 앙상하게 변했다. 깃털을 잃은 타조처럼 비현실적으로 서 있는 나무들. 길 위엔 나뭇잎이 소용돌이를 이루며 먼지를 흩날렸다.


이른 아침부터 태림의 집은 바쁘고 어수선했다. 오늘은 합격자 발표 날이었다.


물론, 원래 태림의 집은 다른 가정에 비해 아침이 빠른 편이었다. 부지런함이 곧 삶의 해답이라는 신념 아래, 태림의 부모는 매일 아침 6시 ‘가족회의’를 열었다. 태림에게 그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전쟁과도 같았다. 졸음을 참으려 애쓰는 와중에, 아버지의 커지는 목소리가 태림을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게 했다.


만약 성실함을 신봉하는 종교가 있다면 태림의 아버지는 교주로 적격이었으리라. 그는 재작년 초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34년간의 긴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태림의 어머니는 중환자실의 간호사로 재직하다 10년 전, 서울의 모 대학 병원의 교육 간호사가 되어 지난해 말까지 매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부부는 서울에 익숙했지만, 수십 년간 출퇴근의 배경이자 매일 찾아오는 크고 작은 역경과의 전장(戰場)에서 조금은 떨어지고자 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바로 이곳, '그린시'였다. 그린시는 5차 신도시 개발에 선정되어 새로 생겨난 행정구역으로,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교통도 비교적 편리한 지역이었다. 녹색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어진 아파트들, 인위적인 직선 구획으로 나뉜 주택 단지는 전국을 아우르는 관심을 받으며 조성되었다. 적어도 한두 세대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모여야 할 주택의 가격에도, 그린시에는 입주 행렬이 이어졌다.


태림의 부모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린시에서 맞이하는 노년은 일종의 '훈장'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한평생을 열심히 산 대가로 주어지는 상이라고, 그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초라함'을 안겨주는 의외의 존재가 있었다. 이는 바로 그들의 유일한 자녀, 태림이었다.


태림은 어릴 적부터 의젓하고, 함부로 말을 내뱉으며 부모를 산만하게 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랐다. 태림의 어머니는 '우리 애는 사춘기가 없었음'을 자랑했고, 내심 그것이 자신의 뛰어난 육아 역량 덕분이라 우쭐해했다. 태림의 아버지는 태림이 당연히 자신과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를 의심한 적이 없었고, 태림의 조숙한 태도는 그에게 늘 확신을 더해주었다. 태림의 아버지에게는, 자신과 같이 고등 교육을 우수하게 마친 인재들이,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하는 데에 헌신하고 봉사하여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었고 정의였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그의 퇴임식에서 받은 공로상에 적힌 '사회에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태림이 자라며 태림의 부모도, 또 그렇기에 태림이 거친 어떠한 교사나 강사도, 태림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태림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발언권을 준 적이 없었으니, 태림에게 내면의 목소리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조차 모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네 실패는 부모의 실패다'라는 협박인지 응원인지 모를 말들은 태림을 착실히 키워냈고, 서울 소재의 교육대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당연하게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서너 개의 계절을 보내고 나면, 오늘 같은 날이 찾아오는 것이다.



"합격자 명단에 귀하의 이름이 없습니다."



4년째 태림이, 아니 태림의 부모가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두렵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문구가 지난해와 한 자의 차이도 없이 화면에 떴다. 작년보다는 조금 더 폰트가 가늘어졌나,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진 태림에게 뜨겁고 동시에 차가운 통증이 내리 꽂혔다. 곧바로 벌겋게 부어오른 뺨에는 공기가 지나가는 느낌도 들 만큼 욱신한 기운이 감돌았다. 혀를 씹었는지 비릿한 피 맛이 감돌자 태림은 재빨리 입 안에 공간을 만들어 혀를 잇몸에 닿지 않게 했다.


"너 하나 바라보고 평생을 바친 부모의 삶이 우습니?"


태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 우습게 느껴지기는 했다. 물론 태림은 부모가 삶을 어딘가에 완전히 바치면서 살아온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었다는 것은 몰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부모 둘 중 하나라도 자신을 '바라본' 적이 있기는 한지. 태림은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숨을 쉬었다. 문득 태림은 부모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발끝에 둔 시선을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으로 해가 들어왔다. 정오가 지나도록 태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것이다.


태림은 모니터를 꺼버렸다. 눈앞에 있던 문구가 갑자기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 글자들은 여전히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위에 올려둔 손은 언제부터 차가워졌는지 모를 정도로 감각이 없었다. 손끝에 조금씩 저릿한 느낌이 번졌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차가운 바람이 손끝에 닿았지만, 그 차가움은 태림의 손가락에서 방울진 채 맺히기만을 반복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직 뺨이 부어있는지 날카로운 고통에 순간 태림은 얼굴을 찌푸렸다. 태림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멀리 보이는 그린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층 아파트들이 수평으로 이어져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경계선이 지나치게 명확해 보였다.


태림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숨이 공기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끼며 창문을 닫았다. 그제야 태림은 깨달았다. 대학 시절 내내, 아니 어쩌면, 태림의 어린 삶이 느껴온 끝없는 무료함과, 순식간에 지나쳐 간 찰나의 번뜩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태림이 회상하는 대학 강의실은 늘 어수선했다. 어딘가 좁고 공기조차 가득 찬 듯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태림에게는 넓고도 비어 보였다.

책상 위의 노트를 뒤적이며 여러 번 넘겼지만, 사실 거의 모든 페이지는 공백인 채였다. 교수의 목소리는 단조롭게 공기 중을 떠돌았다. 강의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회색 하늘이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태림은 그 하늘에 집중하며 교수의 말을 흘려보내곤 했다.


부모의 기대와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진 목표는 태림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했다. 처음으로 태림은, 그것이 옳은 길인지 묻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 속에서, 의문 없이 걸어온 자신의 길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태림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고, 태림은 이날을 그렇게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태림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확신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시작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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