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조화
'자연에서 찾는 미래, 시드스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드스쿨의 홈페이지는 초록색으로 물들어있었다. 마치 사이트 자체가 하나의 숲인 것처럼, 자연 친화적이지 않다면 그 어떤 존재라도 튕겨낼 것 같은 완전한 초록이었다.
교장과 교감의 인사말에는 자연의 중요성과 시드스쿨이 이를 교육에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가 긴 문단들로 엮여있었다.
그래서 태림이 처음 시드스쿨에 다다랐을 때 겪은 당혹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시드스쿨은 숲에 뿌리내린 현대화의 씨앗이었다.
서양식으로 된 정문은 높낮이가 다양한 울타리로 이루어졌으나, 테두리 말고는 반투명의 강화유리 재질로 되어 마치 하나의 연구소 같았다.
닫힌 정문 틈과 낮은 쪽의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축구장만 한 정원은 아주 정밀하게 구획이 나뉘어 각종 식물이 심겨있었고, 중앙에는 스프링클러와 분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씨앗 모양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다.
"정문으로 오셔서 성함 말씀해 주시면 바로 안내해 드릴 거예요."
자가용은커녕 운전면허도 없는 태림은 지도 앱에 찍힌 시드스쿨에 무작정 걸어왔다.
캐리어를 끌고 숲길을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학교까지의 숲길은 잘 손질되어 웬만한 골목길보다도 나았다. 2차선 도로만큼의 폭을 잔디 블록으로 덮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학생들 등하교도 해야 하고, 차가 다닐 일이 많기는 하겠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상상, 예상과 추론, 여러 감정의 교차를 느끼며 한참 걸으니 시드스쿨이라고 적힌 화강암 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판이 설치된 대문은 한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높았다. 문의 오른쪽 끝에 초인종으로 보이는 버튼이 있었다.
정문에 있는 초인종 모양의 벨을 누르자, 낮은 신호음이 몇 초 간격으로 울렸다. 얼굴 인식 카메라로 보이는 곳에 본인의 모습이 잘 보이도록 서 있었지만, 왠지 렌즈가 외부인인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는 것 같아 멋쩍은 기분이 들어 시선을 피했다.
'안에 사람이 없나?'
당일 면접을 보고, 당일 합격 통보와 함께 기숙사에 최대한 빨리 입소해 주면 좋겠다던 학교 측의 요청이 무색하게 이후 초인종을 몇 번을 더 눌러도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태림은 내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지원 결과도 합격이었고, 학교에 대한 안내도 받았건만, 왠지 그 모든 게 자신이 불합격의 충격을 못 이기고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랫입술을 깨물기 시작했을 때, 긴 은색 세단이 학교 쪽으로 다가왔다. 운전석 창문이 매끄럽게 내려가며 한 여성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그랗고 진한 눈에 대비되는 뾰족한 코와 턱은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드라진 광대 선을 따라 이어지는 귀의 끝 선에는 선글라스가 걸려있었고, 여성은 선글라스를 이마에 걸쳐둔 채 목을 길게 빼서 태림에게 말을 걸었다.
"태림 선생님이세요?"
목소리를 들으니 그 여성이 화상 면접을 진행했던 교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면접 진행 과정에서 태림만 화면을 켜 얼굴을 비추고, 상대는 카메라를 끈 채로 질문했기에 태림이 교감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순간적으로 학교에 무단침입하려던 것처럼 보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자신이 시드스쿨의 교사가 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교감의 말에 갑작스레 찾아온 안도감이 뒤섞여 태림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어색한 표정으로 애써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토해내듯이 "정문으로 오면 안내해 주신다고 하셔서요..."하고 말끝을 흐렸다.
교감은 고개를 가만히 둔 채 눈알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더니 태림에게 다시 말했다.
"여기 뒷문이에요. 쭉 돌아가야 정문 나와요."
면접 때는 평가의 자리라 그런 줄 알았지만, 교감의 원래 말투 자체가 높낮이 없이 단조롭다는 것을 태림은 깨달았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며 태림은 교감의 시선을 따라갔다.
교감은 말을 멈췄다가 약간 건조한 어조로 덧붙였다.
"타시죠, 그리고 다음부터는 안내에 따라 주시면 좋겠어요.”
태림은 “네,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캐리어를 끌 여유도 없이 번쩍 들어 교감의 차를 빙 둘러 조수석에 몸을 욱여넣었다. 다리 사이에 캐리어를 끼고 앉아 모양새가 우스웠지만, 교감이 곧바로 출발하는 바람에 자세를 바꿀 틈은 없었다.
교감을 따라 뒷문을 벗어나 진짜 정문으로 들어서자, 태림은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짜 정문은 마치 대형 박물관이나 왕궁의 입구처럼 웅장했다.
높이 솟은 철제 문 위에는 커다랗게 새겨진 ‘SEED SCHOOL’ 글자가 빛을 받으며 번쩍이고 있었다.
대칭적으로 자리 잡은 돌기둥은 대리석과 금속 재질로 만들어져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문 너머로 이어지는 넓은 진입로는 마치 하나의 축을 형성하는 듯했고, 그 양옆으로는 가지런히 정돈된 꽃과 나무가 보였다.
문을 통과하며 태림은 점점 더 눈앞에 펼쳐지는 학교의 전경에 압도당했다.
정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고 정돈된 주차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급 세단과 SUV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서 있었고, 교직원 전용이라는 팻말이 몇 군데 붙어 있었다.
주차장 뒤쪽으로는 식재된 나무와 장식용 돌길이 이어져, 단순한 주차 공간도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멀지 않은 곳에는 학교 건물들이 보였다.
가장 중앙에 위치한 본관은 대형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 구조로, 햇빛을 반사하며 은빛 광채를 띠고 있었다.
건물 전면에는 넓은 계단이 이어져 있었고, 계단의 양쪽 끝에는 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본관의 양쪽으로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건물과 교직원용 사무실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태림은 한참 동안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가지런히 정돈된 화단과 중앙의 거대한 연못, 그리고 연못 주변에 심어진 꽃들과 식물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겨울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푸르고 화사했다.
태림은 연못 가까이 다가가, 얼어붙지 않은 물결이 잔잔히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단에 심어진 꽃들 하나하나가 어찌나 선명한지, 자연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한 송이 한 송이가 마치 작품처럼 느껴졌다.
태림은 꽃잎에 손을 대보려다 말고, 조심스레 손을 내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생함이었다.
교감은 태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일부는 계절과 관계없이 자랄 수 있도록 온실에서 키운 후 이식한 것들이에요.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계절과 상관없이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감의 설명은 충분히 납득이 갔다. 태림은 다시 한번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며 이 공간에 담긴 노력과 세심함을 감탄스럽게 생각했다.
이 학교가 단순히 자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현대를 완벽하게 결합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게 소박할 줄 알았는데, 자연 속 궁궐같네. 일종의 귀족학교 같은 건가?’
태림의 마음속에 여러 궁금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교감이 태림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문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다들 놀라십니다. 우리 학교의 규모와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죠. 기숙사는 저쪽입니다. 먼저 가 계세요.”
태림은 교감이 가리킨 교직원 건물 뒤의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건물 중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숙사 건물은 단순한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기품이 느껴졌다. 마치 외부의 세계와 차단된 또 다른 공간 같았다.
그제야 태림은 캐리어를 꼭 잡고 있던 손에 조금 힘을 풀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겉보기에도 고급스럽고 멋들어진 이 학교는 단순히 첫 직장이 아니라, 이미 태림의 삶에 깊이 스며들 준비를 마친 느낌이었다.
태림의 인생이 마치 바짝 마른 겨울 가지였다면, 시드스쿨은 그 가지를 지탱하며 생기를 불어넣을 첫 뿌리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