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질문의 씨앗

by 이우선주


"학생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학생의 개성과 다양성을 개발하는 교육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수도 없이 외웠다.


학생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먼저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공식처럼 여겨왔다.

태림은 임용고시 1차 과정에서도, 2차 면접에서도 동기부여와 자율성 함양을 위한 교사가 되겠다고 습관처럼 되뇌었다.


시드스쿨은 초・중・고등학교의 과정을 전부 지원하는 대형 학교로, 한국 교육청의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대안학교에 속했다. 그러나 해외 유학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면, '명문 그린학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학교가 얼마나 수준 높은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시드스쿨은 서부학교대학협회(WASC)의 미국 지역 인증을 받아, 시드 스쿨 졸업장은 미국의 정식 학교 졸업장과 동등하게 인정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또한 국제 바칼로레아(IB) 인증과 미국 대학위원회(College Board)가 주관하는 AP(Advanced Placement) 과정을 제공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 기관으로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태림은 합격 후에 알았지만, 한 학기당 학비가 미국의 대학교와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도 그린시뿐만 아니라 수도권 지역까지 널리 알려지는 중이었다.


태림은 그중 초등학교로 배정되어 5학년 담임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서 시드스쿨의 학생들을 마주한 태림은 상당히 난처했다.


태림이 교탁 앞에 서서 교실을 둘러보았을 때, 아이들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경청이라기보다는 낯선 교사를 앞에 둔 호기심과 탐색으로 가득 찬 분위기였다. 몇몇 아이들은 태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다른 아이들은 공책 모서리를 접거나 펜 끝을 굴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림은 준비해 온 자기소개를 꺼내 들었다. 앞으로 이 수업에서 무엇을 할 계획인지 말을 이어가는 동안, 태림은 아이들의 눈빛이 점점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혹시 이 수업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해볼까요?”

태림은 긴장 속에서 가장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뒷줄의 한 아이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럼 선생님이 가르쳐 주실 거랑, 우리가 하고 싶은 거랑 둘 다 해야 되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물음에 태림은 잠시 말을 잃었다.


태림이 첫 질문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지만, 질문은 이어졌다. “프로젝트할 때, 우리가 주제 정해도 되나요?” “평가 기준이 뭐예요?” “이번 학기에는 팀플 말고 개인 연구 과제도 있나요?” 아이들의 물음은 태림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아이들은 태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제각기 자신의 의견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그러면 체험학습 계획도 우리가 짜볼 수 있어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다른 쪽에서는 “홈룸(Home Room) 시간에 영어만 써야 하나요, 아니면 한국어도 써요?"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태림은 질문 폭격에 완전히 혼미해진 이후, 학생들 각자가 어떻게 준비해 온 자기소개를 발표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실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수업 동안 하고 싶은 활동에 관해 물었을 때도, 태림은 자신의 질문이 어떤 답을 기대한 것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태림은 교탁 앞에서 허공을 움켜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교실이라는 배를 조종하려 했던 자신이, 사실은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하고 혼란만 남은 채 첫 시간이 끝났다. 태림은 교실을 쫓기듯이 빠져나와 교사 오피스 앞에 섰다.

태림이 교사 ID카드를 입력기에 갖다 대자, 반투명의 판막 유리가 양옆으로 열리며 교사 오피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교사 오피스는 시드스쿨 건물의 한쪽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은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외부의 정원 풍경이 그대로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실내는 세련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다.

각 교사의 책상은 긴 테이블처럼 이어져 있었지만, 파티션으로 적당히 구분되어 있었다. 책상 사이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조도가 낮은 조명들이 잔잔히 빛나고 있었다.


태림의 자리는 교사 오피스의 한쪽 끝, 큰 창문 옆에 배정되어 있었다. 태림의 자리 위에는 세련된 금속 바에 걸린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다. 깔끔한 서체로 새겨진 'Ms. Tea-lim'이라는 이름은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책상 위에는 학교에서 제공한 교사용 다이어리와 펜 몇 자루만 놓여 있었다. 마치 곧 태림만의 공간이 되는 일을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은 태림에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을 불러일으켰지만, 조금 전 교실에서의 시간을 생각하니, 태림의 목에 걸린 교사 ID카드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카드는 학교의 명성만큼이나 고급스러웠다. 두꺼운 투명 아크릴과 메탈릭 골드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상단 중앙에는 시드스쿨의 씨앗 모양 로고가 금박으로 삽입되어 있고, 배경에는 희미하게 학교의 영문명이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빛났다.


카드의 왼쪽에는 원형 프레임 안에 어색한 정장 재킷 차림의 태림의 사진이 있었다. 면접을 준비하며 찍은 프로필 사진은 당시에는 꽤 마음에 들었으나, 이제 와서 보니 표정이 한껏 경직되어 있었다. 심지어 미소를 지어보겠다고 약간 힘을 준 탓에, 눈은 약간 찌그러졌고, 팔자 주름이 접혀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에는 완전히 실패한 모습이었다.


카드 하단에는 금속 칩, QR 코드와 이메일 정보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카드 전체에 은은한 광택이 감돌아 학교의 이미지같이 어딘가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카드는 가죽 스트랩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스트랩의 금속 부분에도 시드스쿨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태림은 교사 ID카드마저 값비싼 느낌을 풍기는 이 학교에 자신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카드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 각인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눌러보았다.

멍하니 몇 분쯤 있었을까, 태림은 기대와 설렘으로 피어오르던 열정이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동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에 가까운 당혹감에 사로잡힌 태림은 틀에 박힌 자신의 교육 계획서와 안일한 지도안을 원망스럽게 한참을 쳐다보았다.

태림은 계획서의 첫 장을 펼쳤다.

1주 차: 자기소개 및 교실 규칙 정하기. 2주 차: 기초 단어 학습 및 그룹 활동.

그저 틀에 박힌 문구들로 이루어진 빈칸 채우기용 서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이걸로 진짜 수업이 가능할까?’ 태림은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태림은 고개를 숙인 채 책상 위에 놓인 다이어리를 천천히 손끝으로 밀어냈다. 종소리 같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울렸다.



‘왜 이것밖에 못 했어?’

잊히지 않은 목소리가, 잊히지 않은 표정이 있었다. 날카롭다 못해 차갑던 질문들은 태림의 일기장에 가장 먼저 새겨졌다.

그런 물음표들 속에서 자라난 태림은 언제나 무언가를 더 해야만 했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완벽하게.


태림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첫 단원평가 시험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던 날부터, ‘노력해야 산다’는 말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자랐다.


"이 정도로는 안 돼."시험지를 든 손이 아슬하게 떨렸던 기억이 아로새겨진 때부터, 태림을 가장 다그쳐온 것은 태림 자신이었다.



태림은 속으로 깊은숨을 들이켰다. 아직은 물음표도 마침표도 없는 아이들.

물음표만 가득한 자신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교사가 될 수 있을지, 태림은 답을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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