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반사된 풍경

by 이우선주


"식당은 이쪽입니다."


교사용 오피스 동과 학생들의 수업 건물인 학습 동 사이는 3층에 있는 구름다리와 지하통로, 두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교감은 태림을 지하통로로 안내했다.


통로는 반지하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곡선의 벽면의 윗부분에 폭이 좁은 긴 유리로 밖이 조금 보였다.

지하인데도 햇빛이 들어와 생각보다는 어둡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창문 바로 밑으로 난 틈새에 주광색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은은한 햇빛인 줄 알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의 요소였던 것이다.


통로 바닥은 광택이 흐르는 짙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낮은 반향음이 뒤를 따랐다.

대개 학교의 식사 시간은 왁자지껄하고 정신없기 마련인데, 이토록 조용한 상황이 태림은 조금 의아했다.


학생/교직원 식당이라고 한글과 영어로 병기된 팻말을 지나 30미터쯤 걸으니, 오페라홀이나 극장의 문처럼 크고 두꺼운 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식당이 나왔다.

높은 천장에 드리운 짙은 나무 프레임이 공간을 다소 어둡게 만들고 있었고, 곳곳에 샹들리에가 걸려 은은한 빛을 내었다. 벽면은 매끈한 회색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장식용 화분들이 곳곳에 놓여 공간의 차가움을 중화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식당 중앙의 넓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은 검은색 나무로 제작되어 있어 은은한 광택이 돌았고, 의자는 등받이가 낮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학생들 쪽 테이블의 가장자리에는 어렴풋이 보이는 스탠드 조명이 있어, 식탁 위에만 따뜻한 빛이 머물러 있었다.


또 테이블 중간중간에 금색 테두리도 된 아크릴 팻말에는 학년이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시드스쿨은 각 학년이 오직 한 개의 반으로만 운영되고 있었기에, 팻말의 숫자만 보고도 학생들의 학년과 인원수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반면 교직원 전용 공간은 식당 한쪽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교직원을 자연스럽게 분리하기 위해 낮은 파티션과 커다란 화분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교직원 테이블은 학생들의 것보다 조금 더 크고, 의자도 쿠션이 달려 있어 안락해 보였다.


교직원용 테이블에는 작은 금속 플래카드에 ‘STAFF ONL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테이블 중앙에는 캔들 모양의 전자 조명이 놓여 있었다.

식당 전체의 조도에 비해 이 공간은 상대적으로 어두웠고, 마치 조용히 교사들만의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공간처럼 보였다.


교직원용 테이블 옆 벽은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밖을 내다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그것은 사실 반사되는 거울이었다.

유리 뒤로는 반지하 특유의 공간감이 드러나며, 바깥의 정원 대신 희미하게 반사된 내부 풍경이 보였다.

당연히 밖이 보일 거라 생각하고 그 앞을 지나치던 태림은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비쳐 화들짝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카운터는 식당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길게 뻗은 스테인리스 조리대 위에는 차가운 조명을 받으며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수프, 샐러드, 메인 요리, 디저트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각각의 음식 위에는 이름과 알레르기 정보를 표시한 작은 팻말이 꽂혀 있었다.

카운터 뒤에는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추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감은 테이블 옆을 지나며 교사들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교사들은 교감을 보고 밥을 먹다가도 인사를 했고, 교감은 업무상 지적 사항이나 전달 사항 등을 해당 교사들에게 직접 가서 전달했다.

얼마 걸리지 않을 줄 알고 살짝 거리를 두고 교감의 뒤에 어색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태림의 손목을 살짝 두드렸다.


"태림 선생님이시죠? 5학년. 반가워요, 식사 아직 안 하신 거죠?"

"아, 네, 안녕하세요. 식사 아직입니다."


태림은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최대한 친절한 얼굴을 하기 위해 애쓰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교감을 기다리고 있음을 전하고자 애매한 몸짓으로 교감을 가리켰다.


"아, 교감 선생님은 여기서 식사 안 하세요. 대부분 전달사항 때문에 오시거나, 학생 질서 관리하러 들르세요. 저희랑 같이 식사해요."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태림에게 말을 걸어준 이 교사는 해담으로, 1학년 담당이었으며, 태림보다 한 학기 먼저 고용되어 아직은 신입이었다.

빈 그릇에 음식을 채우는 동안 해담이 학교의 식사시간에 관련해 여러 정보를 알려주고, 태림의 식사를 함께 챙겨 자리로 안내하는 능숙함 덕분에 태림은 해담이 본인보다 사실 한 살 어리다는 것도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다.


교직원 테이블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소속에 따라 나누어 앉았다. 해담은 태림을 초등 교사 테이블로 안내했고, 태림은 이미 식사 중인 두 교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둘 중 하나는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바람막이를 입은 것으로 보아 체육 교사인 것 같았다. 본인을 션이라 소개하며, 식사를 끝내고 막 일어나던 참이었기에,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태림도 구태여 말을 더 얹지 않고 몸을 살짝 돌려 션이 지나가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른 교사들도 거의 식사를 마무리한 상태였다. 태림이 계획서 준비를 하느라 식사에 늦은 탓이었다.

태림이 교직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해담은 태림의 식사를 도와주듯 조용히 메뉴를 추천하며 안내해 주었다.

“여기 음식 괜찮아요. 한식, 양식,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나와요. 특히 디저트가 맛있으니까 꼭 챙기세요.”


태림은 해담이 말하는 동안 학생들의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마다 학생들이 가지런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학교의 식사 시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활기찬 모습은 없었다.

누구도 떠드는 소리가 없었고, 포크와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만 희미하게 울릴 뿐이었다.


“여긴 항상 이렇게 조용한가요?” 태림이 작게 물었다.


해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교감 선생님이 식사 예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거든요. 학생들이 식사 시간에 대화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고 해서요. 이 학교가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이유 중 하나죠.”


옆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던 엘더가 말을 보탰다.

“아이들이 너무 자유롭게 굴다 보면 질서가 흐트러지기 쉽죠. 특히 식사 시간에는 사고도 날 수 있고요. 교감 선생님은 이런 부분에서 항상 강하게 강조하시는 분이에요.”

이어 엘더는 자신이 3학년 담임이며, 수학 과목을 맡고 있다고 짤막하게 소개했다.


엘더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았다. 태림은 엘더가 이런 식으로 자신이 믿는 원칙을 확고히 유지하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림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끄러운 환경을 꺼리는 태림은 오히려 자신의 성격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해담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아 참, 교장 선생님은 만나 보셨나요? 훨씬 관용적이고, 큰 그림을 보시는 분이죠.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하세요. 맞죠, 엘더 선생님?”

엘더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죠.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오실 땐 학생들 분위기가 살짝 달라져요. 아이들이 그분을 좋아해서요. 교장 선생님은 늘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하시고, 격려의 말씀을 자주 하시거든요.”


마침 식당 문이 열리고, 교장이 등장했다. 알려진 경력이나, 교감과 부부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교장은 매우 젊어 보였다. 특히 번쩍이는 이마와 짙은 검정의 머리카락이 활기를 더하는 느낌이었다.

단단한 인상의 교장은 온화한 미소를 띤 채 학생들 쪽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식당에 작게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이 교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고, 다른 학생들은 작게 속삭이며 옆 사람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교감이 교장에게 다가가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두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학생들 쪽으로 다시 다가갔다. 그는 가장 가까운 테이블의 학생들에게 다정히 인사하며 “점심은 맛있니?” 하고 물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대답하며 엄지를 치켜들기도 했다.


그 모습에 태림은 미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규율과 규칙으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도 따뜻함과 인간적인 면모가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장이 자리를 떠나자, 해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 선생님은 정말 존경받는 분이에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에게도요. 다만 교감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학교가 지금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거예요. 두 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아가시는 것 같아요.”

엘더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1학년 테이블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는 교장을 응시했다.


태림은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균형’. 이 학교를 이루는 중요한 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담이 추천한 디저트는 시간이 부족해 먹지 못했다. 하지만 태림은 음식보다도 정보를 과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묘하게 불편한 속을 커피로 달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지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식당의 조명이 어두웠던 탓일까, 태림은 기분까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깥공기를 양 쪽 폐에 가득 넣고 빼기를 몇 번 반복하니, 속이 좀 나아졌다.


태림은 교사 오피스로 돌아오는 길에 교감의 칭찬을 떠올렸다. 자신이 이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다는 느낌에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교사 오피스 문을 열었을 때, 태림의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 주까지 필드트립 계획 제출. –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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