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는 울지 않는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꼭 실제 무대로 보고 싶었던 뮤지컬 작품이 최근 영화로 개봉됐다. 검색해보니 평가도 좋은 것 같아 기대감을 안고 암실같은 상영관에 들어갔다.
영화는 잘 만들어졌고, 감동적이었으며, 재미있었다.
나는 그래서 슬펐다.
주요 장면들에서는 전율이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래서 아팠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선생님들은 내게 노래를 잘한다고 했다. 이후 오디션에 합격해 7년 동안 시립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몇백 번의 공연을 하고 조명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학교보다 익숙했던 무대는 여전히 가끔 꿈에서 재현된다.
난 언제나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다.
당연히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관객의 시선과 생각을 알지 못하는 어린 때부터, 열기어린 조명 아래서 사력을 다하는 것이 내 의무이자 책임이며 무엇보다 큰 성취였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된다'를 현실적으로 쓰면,
'예고에 진학하고, 성악을 전공해서 성악과 입시를 준비한다.' 가 되었다
'노래하는 사람이 된다'를 풀어서 설명하면,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고 전문 반주자를 섭외해 시험을 치르고 콩쿨에 나간다.'가 되었다.
내 꿈은 무대였다.
노래는 대학에 가면 취미로도 할 수 있는 거지만, 공부는 때가 있는 거라고 했다.
음악을 전공하면 다른 건 못하지만, 공부를 하면 선택지가 훨씬 많아진다고 했다.
공부도 취미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선택지가 많은 것보다 해답이 어디에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이후 나는 뮤지컬도, 오페라도 볼 수 없었다.
관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공연을 보며 마땅히 느껴야 할 예술의 아름다움이 아닌, 질투심과 부러움에 긴 후유를 앓았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나를 기다리는 무대는 없다.
내 노래를 듣는 사람도 없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무력해졌다.
내 잃어버린 꿈이 스크린 속에 있길래,
나는 부서졌다.
소리가 주는 울림은 귀를 진동시키면 안되는 거였다.
내 성대가 움직이고 폐가 힘있게 역동하며 그 많은 다이나믹을 만들어야 하는 거였다.
음표 없는 삶을 산다.
나무로 만든 무대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만든 도로를 걷는다.
삶이 무대라, 그런 말도 들었다.
리허설이 없었으니 이 무대는 완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나, 한다.
기억 안에 있는 무대는
여전히 잘 있다.
그 위의 나도
여전히 마땅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