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서있다

꽤 고요하고 웅장한 성장의 기록

by 이우선주


새로운 모임에 나갈 일이 생겼다. 나는 '낯 가리는 나'에 익숙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새로움이 만들어내는 관계들과 변화는 불편하다. 어쩔 수 없이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부러 큰 리액션을 하고, 긴장감에 쫓기듯 더 많은 말을 던지던 애쓰는 나. 상대방에게 나를 조금이라도 빨리 익숙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던 조급했던 내 모습과 그때의 감정들이 불어온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직접적인 말로 드러내지만 않은 타인의 기대를 나는 가끔 읽어내곤 했다. 그리고 그 반복의 과정에서 나는 나설 필요가 없을 때에조차 애써서 광대가 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지쳐 주저앉아 약간의 눈물을 흘렸다.


나의 '낯설어함'이 상대에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색해하는 모습은 막 털을 깎고 다리를 떠는 양처럼 애처로울 것 같았다. 나동그라진 나를 주변 사람들이 일으키고 끌어주려는 시도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나를 숨겼고,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큰 무대를 앞둔 사람처럼 긴장했다.


결국 마음의 힘이 다 빠져버린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나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내가 '낯 가리는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내가 제일 먼저 나 자신을 포용하기로 했다.


새 모임의 사람들은 다행히 조용하고 친절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써 타인과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나에게 질문을 물어올 때면, 알려주고 싶은 정도만 말하고, 어색하고 어정쩡한 표정도 나오는 대로 지어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나의 어색함을 지적하지 않았고, 내가 말을 아낀다고 해서 분위기가 어긋나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받아들였고, 나는 그저 그들 사이에 존재했다. 낯선 공기 속에서 나는 내 호흡을 따라갔다. 나의 침묵은 더 이상 불편함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작은 위안을 얻었다. 편안함과 심지어는 조그마한 즐거움도 느꼈다.


이런 모습의 나는 고꾸라진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그동안 간신히 서서 버틴다고 생각해 왔다. 파들파들 떨리는 온몸의 근육들을 사력을 다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세워온 시간이었다.


하지만 제일 무력하게 보였을 오늘의 나는, 나는 잘 서있다.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 가벼운 발걸음이 낯설었다. 나는 자주 무거웠다. 지나친 말들, 애쓴 웃음들, 필요 이상으로 감당하려 했던 관계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내게 맞는 만큼, 내게 허락된 만큼만 받아들이고 흘려보냈다.


잘 서있다는 건, 결국 내 자리에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꾸미지도 감추지도 않은 채로. 그건 의외로 단단하고도 고요한 일이었다.


나는, 유연한 중심을 잡고,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요란하지 않게,

가만히 잘 섰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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