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점화

by 이우선주


필드트립은 정신없이 마무리되었다. 다친 아이를 진정시키고, 나머지 아이들을 관리하며 무사히 학교로 돌아오는 길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태림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었다.

태림은 교감과 다친 아이의 학부모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심장이 두 배로 뛰는 것을 느꼈다.


학교 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태림은 학부모와 교감이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학부모는 버스가 정차하기도 전에 창가로 얼굴을 내민 아이들 중 자신의 아이를 찾느라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교감은 팔을 뒤로 모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태림과 로빈을 바라보았다.


버스가 멈추고, 무거운 분위기를 느낀 학생들은 조용히 차례로 하차했다. 다친 아이는 오히려 본인이 더욱 주눅 들어있었고, 장난을 쳐 젓가락을 실수로 날린 아이는 교감을 보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태림은 교감이 억지로 관자놀이와 이마에서부터 온 얼굴 근육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태림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어줄 때 뒤에서 한껏 끌어올려 잡아당길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교감은 로빈보다 먼저 내린 태림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짐을 가지고 하차하는 로빈에게 다가가 말했다.


“로빈 씨,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쉬세요.”


로빈은 머뭇거리며 태림을 바라봤지만, 태림은 시선을 피했다. 로빈이 발걸음을 돌려 학교로 들어가자, 교감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


“태림 선생님.” 교감의 목소리는 낮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시 제 방으로 오시죠.”


교감의 방은 조용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교감이 두 손을 깍지 끼고 책상 위에 올린 채 태림을 응시했다. 태림은 한쪽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 이미 한 차례 자리를 잡은 다친 아이와 그 부모, 그리고 다치게 한 아이와 그 부모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태림 선생님,” 교감의 목소리는 차갑게 울렸다. “오늘 사고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태림은 침을 삼켰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압박감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변명하기 시작하면, 더 큰 비난이 돌아올 것 같았다.


“제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태림은 입을 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과도하게 흥분하는 것을 제때 제지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이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친 아이의 부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선생님, 아이들을 책임지고 관리하시는 게 본분 아닌가요?”


그 말에 태림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교감이 중재하듯 손을 들었다.


“부모님,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명확히 하는 겁니다. 태림 선생님,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까?”


태림은 한숨을 내쉬며 사고 경위를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치게 한 아이가 젓가락을 튕겨내며 다친 아이의 얼굴에 상처를 낸 순간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가 끼어들었다.


“우리 아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요. 장난치다가 실수로 그런 건데, 이걸로 아이에게 큰 책임을 지우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다친 아이의 부모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장난으로 다친 우리 아이는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이건 단순히 실수로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양쪽 부모 사이의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교감이 다시 개입했다.

“부모님, 이 자리에서는 감정적인 논쟁보다 사실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시선은 다시 태림에게로 향했다. 교감은 형식적으로 학교를 대표해서 이런 사고가 생긴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아주 간단히 말했고, 부모들은 교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교감은 상석에 앉아 심판관처럼 손을 들고 내리며, 학교와 교사 태림을 분리하고 태림을 계속해서 질책했다.


교감이 연이어 물었다.

“선생님,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즉각적으로 대처하셨나요? 아니면 더 큰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방치하신 건 아닌가요?”


태림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당시에 자신이 느꼈던 혼란과 책임감, 그리고 로빈이 그 순간 개입했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로빈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교감은 태림의 침묵을 곧바로 지적했다.

“태림 선생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대처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을 통제하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은 선생님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태림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뭉쳐 올라오는 듯했다. ‘책임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고 로빈에게 쏘아붙이던 자신의 목소리가 태림의 안에서 점점 선명해졌다.


그 순간, 다치게 한 아이가 작게 말했다. “제가… 죄송합니다. 진짜로 실수였어요.”


그러나 그 목소리는 부모들의 논쟁 속에서 묻혔다.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는 계속해서 아이를 감싸며 태림의 관리 부실을 지적했고, 다친 아이의 부모는 사고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태림에게 더 큰 책임을 물었다.


자신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과, 어른들의 몰아치는 싸움에 말문이 막혀 입술을 꾹 닫는 아이의 모습을 목격한 태림은 머리가 텅 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성을 마구 높이는 어머니 앞에 서서 울먹이던 기억. 무심한 듯 태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한숨을 내쉬며 '자식이 하난데 저 모양이라니'하며 신문을 마저 넘기던 아버지. 세상의 모든 비난이 자신을 향해 폭포처럼 쏟아지던 그때를 태림의 머리보다 몸이 더욱 강렬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 안의 분위기보다 차가워진 손끝과,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얼얼함, 어지러움, 마르는 입술과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까지. 태림은 여전히 세 명이 살기에는 과도하게 넓은 거실과 주방의 경계에 애매하게 서서 몰려오는 파도를 맞는 채였다.


“태림 선생님,” 교감의 단호한 말이 태림을 날카롭게 찔러 현실로 데려왔다.


“이 일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사고 경위서와 함께 대책 방안을 내일까지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를 깊이 숙인 태림은 나지막이 웅얼거리듯 죄송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 모든 비난의 말들이 태림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나는 역시 교사가 되기에는 모자란 사람이구나.'


방을 나서며 태림은 다리의 힘이 풀려 잠시 휘청였다. 복도에 잠시 서서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이름 모를 수백 가지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아우성치는 듯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태림은 한참을 숨을 골랐다. 방금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교감의 비난, 학부모의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로빈의 아무렇지 않던 태도까지.


태림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보고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글자를 치기 시작했다.


‘필드트립 사고 경위서’


태림은 오늘의 사건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그리고 결론에 닿았다.


‘이 모든 문제는 로빈 때문이다.’


‘로빈은 후원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모든 걸 망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들의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규율과 질서를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태림의 손은 멈추지 않았지만, 마음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문장 속에서 로빈의 모습이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웃으며 아이들 틈에 섞여 있던 로빈, 그 밝은 웃음소리, 그리고 자신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며 보이던 태도.

그 모든 장면이 태림의 머릿속을 메우며 점점 커다란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지?’

태림은 손을 멈추었다.

로빈은 과연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는 있을까? 다친 아이와 그 부모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기라도 할까? 태림은 자신이 견뎌낸 모든 비난이 사실 로빈을 향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억울하네.” 태림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분노는 점점 더 커져갔다. 문장을 다시 쓰려고 손을 키보드에 올렸지만, 마음속의 감정이 더 강하게 태림을 휘감았다.

오늘 로빈이 보였던 모습들이 겹쳐졌다. 아이들과 장난치던 모습, 다친 아이를 다독이며 보였던 태도, 그리고 자신을 오히려 가르치려던 오만방자한 태도까지. 기억 속 로빈은 점점 더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다 좋은 척, 다 이해하는 척, 그런데 결국은 나를 비웃고 있었겠지.’


태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로빈이 '억지'라는 단어를 내뱉던 순간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억지… 억지라니,” 태림은 눈을 감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새삼 재수 없네."


태림은 손을 꽉 쥐고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실수해도 모든 게 용서되고, 누군가가 대신 책임져주는 삶을 살아왔겠지.’ 이 생각은 점점 태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책상 위에 놓인 필드트립 보고서와 사고 경위서가 눈에 들어왔다. 보고서에 적힌 단어들이 태림의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책임’, ‘관리’, ‘대처’. 결국 이 모든 것은 태림만의 몫이었다.


‘아이들의 행복?’

태림은 책상 위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들었다. ‘웃기고 있네. 규율도 없이 아이들을 풀어놓는 건 결국 어른으로서 무책임한 거지. 관리하기 귀찮으니까.'


문장들은 지워졌다 빠르게 완성되기를 반복했다. 태림은 보고서에 로빈을 언급해도 되는지 망설였다. 감정대로, 그리고 사실대로라면 그에게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이미 몇 장을 쓰고도 남았겠지만, 현실적으로 로빈에게 책임이 돌아갈 리 만무했다.


태림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로빈이 아이들에게 보여준 모든 행동이 문제로 연결되고 있었다. 아이들과의 과도한 장난, 태림을 무시하던 태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본인과는 상관없는 양 귀한 대접을 받으며 홀랑 건물로 들어가 버리던 뒷모습까지.


보고서의 마지막에 이르자, 태림은 손을 멈췄다. 문장이 끝난 보고서를 바라보며 태림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마음속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로빈 같은 사람은 이런 일의 무게를 모를 거야. 모든 걸 쉽게 얻고, 쉽게 잊겠지.’


태림은 보고서의 끝을 맺고 저장 버튼을 누른 뒤, 화면이 채 꺼지기도 전에 노트북을 닫았다.


태림의 할 일은 끝났지만, 심장은 여전히 쿵쾅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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