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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Mar 09. 2021

세상에 원래 그런게 어딨어

사람 혹은 사건을 찬찬히 바라볼 심적 여유가 없던 시절에 나는 무엇이든 이쪽 아니면 저쪽(혹은 옳고 그름)이 있을 것이라 쉽게 재단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나름의 정답이랍시고 저건 이쪽이다 아니면 저쪽이다를 별 고민 없이 단정 지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과 감정적인 사람으로 구분되며, 내가 아는 누구는 무척 이성적인 사람, 또 다른 어떤 이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라고 나만의 정답지를 차곡차곡 채워놨달까. 하지만 그렇게 똑 부러지는 정답 혹은 사실은 실상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감정적이기도 하고 이성적이기도 하며, 그래서 내가 목격한 단순한 상황만을 배경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무엇이든 어설프게 아는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 시절 나는 단호하고 명료한 어조로 오답인 줄도 모르고 꽤나 힘주어 말하고 살았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에 이토록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워질 줄도 모른 채.


그리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감정과 이성을 수도 없이 오가며 균형을 맞춰보겠다고 애쓰는 것이 삶의 한 구석임을 이렇게나 절절히 느끼며 살 줄이야 그때 짐작이나 했으랴.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나서부터는 어떤 순간에도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사람이다 하고 지켜보고 들어 본다. 보다 보면 듣다 보면 이제는 저 사람이 어떻다 라기보다는, 아 저 사람과 나는 맞겠다 잘 맞지 않겠다가 가려진다. 이건 사실 무척이나 본능적으로 알아차려지는 과정이라 글이나 말로 과정을 나열하기가 참 어렵다. 


이렇게 상황 혹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내 안에 자리 잡고 보니, 은근히 나를 이미 규정지어 놓고 대화하려는 상황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어졌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어떤 대화에서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나는 좀 단호했으면 한다 라고 말을 얹는 순간 그(혹은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처럼 마음이 단단하면 그럴 수 있지만 나한테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라든가 "나도 너처럼 그럴 수 있으면 참 좋겠다."식의 대답들. 읭? 내 말은 지금 그게 아닌데, 내가 혹시 말을 잘 못했나 하며 나는 지나온 대화 속 내 말들을 서둘러 다시 곱씹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알아차린다. 그(혹은 그녀)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행하지 않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일종의 방어기제 혹은 자기 합리화 같은 것이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기질이 나쁘다고 단언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 지켜내려는 본능에 가깝다고 이해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나는 또 굳이 이 한마디를 보태고 싶어 진다. 세상에 꼭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분명하게 나뉘는 건 아니라고. 그저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행동하는 거고, 스스로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지 그것이 성정의 강약에 따른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일종의 사고방식의 차이일 뿐, 그 결정이 그 사람 자체가 강하거나 약해서 행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저 말을 끝끝내 하지 못한다. 이유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도 내가 이렇게 얹는 말 한마디 조차 도를 지나친 조언 따위에 지나지 않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혼자 끄적이는 이곳에 담아낼 뿐,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어른이 됐다. 원래 그런 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원래 그런 거야 라고 생각하면 최소한 스스로 납득하기 쉽고 편하니까 만들어 낸 이유일 뿐, 세상에 당연한 것은 시간이 흐르는 이치 말고는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내가 나로서 자연스럽게 존재하기란 이토록 쉽지 않다. 상대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시키거나 납득시키는 것은 그래서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곡차곡 살아낸 시간만큼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여력이 조금이나마 커질 거라 지레 믿었는데, 실상 살아보니 품어낼 수 없는 것을 선명하게 구분해 내는 능력이 조금 더 늘었을 뿐, 나는 거의 제자리다. 어쩔 수 없음을 끊임없이 알아채는 과정, 그것이 현재를 사는 내가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거의 전부다. 그리고 참 묘하게도 나는 이 어쩔 수 없음을 알아채고서부터 무척이나 가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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