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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Aug 24. 2019

짧은 고백

어제 저녁엔 벼르던 가라아게를 만들었다. 배고프다는 남편이 부엌을 두어 번 들락거릴 즈음 두 번 튀겨낸 겨우 한 접시의 요리가 끝났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와인 한 모금씩을 곁들이며 미국 땅에서 맛보는 일본식 닭튀김을 맛있게 먹었다. 술을 자주 안 해서인지 금방 취기가 오른 나는 할까 말까 고민하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다. 남편이 손톱 깎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즈음. 


"남편 내가 전에 최종 합격까지 했었던 편집숍 생각나? 거기가 남산 언저리에 건물을 지어서 어쩌구 저쩌구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어쩌구......근데 내가 전에 공부하겠단 남편을 지지했던 나를 원망한다고 했었잖아? 그게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그 일을 포기해야 했었던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더라구.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걸 하지 못한 경험이었어. 타이밍이 좋지 않았지. 내가 이 곳에 와서 3개월을 지내면서 찾은 한 가지 답이야."


오늘 어땠어? 하며 묻는 미국인들의 의미 없는 인사처럼 가벼운 대화였다. 아마 난 그 가벼움으로 내 마음속 무거웠던 짐을 몰래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면서 아주 조금 눈물이 날 뻔했고, 괜시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내일 만들 크로와상 반죽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부러 부산을 더 떨었다. 그 이후로 남편의 손톱 깎는 소리가 들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한동안 조용했다. 그리고는 특유의 아무렇지 않음으로 설거지 뒷정리를 도운답시고 싱크대 옆에 와서 조용히 행주를 들었다. 


4년 전 즈음, 나는 그때도 여전히 회사를 지겹고 힘겨워하고 있었고, 남편은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선언한 후 퇴사를 했었다. 그 시기에 나는 그간 눈여겨봐 뒀던 아주 작은 편집숍 직원 채용에 원서를 냈고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을 받아 들고 있었다. 가고 싶은데.... 너무 해보고 싶은 일인데.... 연봉 계약 때문에 급여를 물어보니 이건 둘이 먹고 죽을래도 불가능한 금액인 거다. 게다가 이후 남편 미국 석사과정 등 이미 내게 주어진 가장이라는 무게감의 실체가 이건 안 되는 일이라고 이미 말하고 있었다. 너무 선명한 현실 앞에서 포기는 쉬웠다. 너무 명확했으므로. 그래서 그땐 몰랐다 내가 이 일을 포기하고 느끼게 될 미련과 안타까움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이후 몇 년 간의 시간은 이미 남편에게도 말했듯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난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을, 뭣 몰랐으므로 부딪혔던 나를 고스란히 내가 보듬고 내가 등 떠밀고 자책하며 보냈던 수년의 시간들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많이 지쳤고, 나에게는 유일하게 싫은 점이 하나도 없었던 내 남편은 이제 내게 무겁고 부담스러운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그는 꿈을 향해 정진 중이다. 박사과정 2년 차 마지막 학기를 지나고 있는 그를 보며 '꿈을 향해 매일 조금씩 나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체감한다. 그만큼 성실하고 꾸준하다. 그도 스스로의 선택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자 부단히 노력 중일 거라 미루어 짐작은 하지만, 내 짐이 크고 무거워서 사실 남의 그것까지 헤아려 느껴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명확하지 않았다. 이를 조금 바꾸어 말하면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많다. 헌데 재능을 조금 부족하게 타고난 탓에 세상에 없던걸 새로이 만들어 내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이용해서 그다음으로 가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내가 편집숍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이유에서다. 직접 디자인하고 물건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재주는 조금 부족하나마, 어디 선가 어떤 물건을 보면 아 이건 저기 어디에 가져다가 저렇게 쓰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게 재미있었고 그걸 일로써 마주하면 더 배울게 많을 것 같았다. 깔끔하게 포기했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만큼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이후 오래도록 잊었다. 잊을 수밖에 없을 만큼 모진 시간이 내게 주어졌고, 그것을 통과해 내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이던 시절에는 이런 미련 조차 사치였으니.


작년 추석 즈음으로 기억한다. 내가 지원했었던 그 매장이 확장 이전했다는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새롭고 기대되면서도 한켠으로 내가 가진 미련이 너무 선명해지면 어쩌나 하는 갖가지 생각을 부여잡고 도착했다. 그리고 떨렸다 면접을 보던 그날처럼. 규모가 꽤나 커진 그곳을 다 둘러보고 언니와 커피도 한잔 마신 후 이것저것 살 것들을 둘러보다가 그곳의 시그니쳐 색깔로 된 에코백을 집었다. 계단을 오르는 벽에 발라진 페인트 색과도 같은 짙은 녹색. 어쩜 그것 조차 그렇게 여전히 마음에 드는지. 좋았고 아쉬웠다. 그리고 미련이 크다는 것을 그날 돌아오는 버스에서 또 한 번 생각했었다. 


어제 그 저녁의 짧은 고백이 오늘 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주었다. 아마도 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모든 힘듦이 당신 때문이라고 뭉뚱그려 원망하던 내가 사실은 알고 보면 그 이유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설명하고 싶었고 그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욕심도 더불어 있었다. 세상 원하는 것 다 하고 사는 이 어디 있으랴~하는 통속적인 말로 나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나 원하는 것이 나처럼 선명하거나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단 하나의 위로도 되지 못한다. 앞으로도 내게 남은 미련을 잘 돌보며 살아야 하는 건 또 나 스스로이기에 누군가의 글에서 받았던 위로의 이야기로 글을 닫는다.


"모든 삶에는 빠진 구석이 있고, 또 그 덕에 채워진 구석이 있다. 모든 삶에는 부러운 점이 있지만 나름의 어려운 점도 있다. 다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붙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버리거나 견뎌야 한다. 내가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다 해도, 크게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모두가 그렇듯, 이런 식으로 생겨 먹어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선택들에 그토록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에 조금쯤 애잔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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