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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Aug 27. 2019

이름

브런치를 비롯하여 글쓰기 플랫폼들을 사용하다 보면 '필명'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그야말로 글 쓰는 이로써의 이름. 수개월 전 글쓰기를 시작하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 필명을 한참 고민했었다. 워낙에 이런 것 짓는 재주는 없어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옛날 만화 캐릭터 이름을 썼었더랬다. 어떤 필명을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나를 숨길 수 있는, 이 글을 읽어도 사람들이 나를 모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으므로. 지금 순번을 따박따박 매겨가며 습관처럼 다시 써보겠다고 시작하면서 내 필명을 내 이름으로 바꾸었다.


예나.


아주 어렸을 때는 너무 여자여자한 내 이름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나는 내 이름이 좋다. 발음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나 묘한 무거움이 없고, 아주 촌스럽지도 그렇다고 엄청 흔하지도 않은 내 이름이 나는 참 좋다. 미국에 와서도 영어 이름을 만들까 잠시 궁리하다가 그냥 내 이름을 쓴다. 결국 내가 불려질 때 듣고 싶은 이름은 예나다. 십여 년의 사회생활에서 꾸준하게 들었던 이야기가 이름이 참 좋다거나 나와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인사 또는 칭찬이었다. 처음엔 뭐 그냥 인사치레겠지... 생각하면서도 듣고서 묘하게 기분이 좋아져 나중에는 내 이름을 직접 지어준 아빠에게까지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는.


글을 쓰면서 이름,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나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글이라는 것을 쓸 때, 사회적이거나 가족 속에서의 나보다는 한결 솔직한 진짜 나를 내가 만날 수 있어서였다. 글에서는 과감하게 솔직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그렇게 써야 나중에 읽어서도 민망함이나 부끄러움이 덜했다. 신기하게도 꾸밀수록 무언가 계속 덧붙이고 과장할수록 글은 재미없고 불편하고 다시 읽고 싶지 않아 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이 시간과 공간에서 나는 예나 그대로 있을 수 있어서 편안했고 아마 그래서 글이란 것을 쓰고 싶어 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힘든 순간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줬던 많은 글들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글쓰기가 더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고부터는 소설이나 수필, 드라마 등의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보거나 곱씹는다. 마치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처음 통성명을 하고 이름을 나누듯. 이름이 주는 묘한 울림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사는 나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또 나다. 삼십몇 년을 지나 이제서야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지만, 그래서 지난 시간에 대한 애잔함도 있고 안타까움도 남지만, 이제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가서 한번 꽉 안아주고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조금은 넉넉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필명 예나를 보고 나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두렵거나 숨고 싶지 않다. 어째도 나를 전부 다 아는 사람은 없으므로.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은 나 말고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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