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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Aug 28. 2019

중간 혹은 어중간

글을 쓰면서 국어사전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전에 일할 때에도 없던 일을 기획하거나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도무지 모르겠으면 국어사전을 열어 내게 주어진 일감을 검색해보곤 했다. 그러면 아주 미세하게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곤 했었다. 오늘 소제목 '중간'도 검색을 해 보니 '두 사물의 사이'를 이르는 말이다. 헌데 좀 더 솔직히 '어중간'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했었다. 어자 하나 더 붙었을 뿐인데 뭔가 어감만으로도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그런 느낌을 주는 저 단어, 나는 나를 표현하는 한 가지 중 저 단어를 선택했다. 중간 또는 어중간.(사전적 의미로 어중간은 거의 중간쯤 되는 곳, 그런 상태를 이름)


순전히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중간은 뭔가 정말 딱 가운데, 이것과 저것의 한가운데를 자로 잰 듯 나눈 그 지점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중간은 조금 오차가 있긴 한데 이쪽이라고 또는 저쪽이라고 말하기보단 중간에 가까운 그런 상태를 일컫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어중간하다. 일례로 공부를 봐도 너무 잘하지도 그렇다고 못한다고 하기엔 애매한 딱 그 정도였다. 타고난 환경도 평범하기 그지없고, 인간성 또한 개인적인 것 같다가도 사람 챙기는 게 제일 우선순위이기도 한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일을 하면서 그리고 빵을 배우면서 줄기차게 생각했던 게 하나 있다. 

나는 왜 특출 나지 못할까? 나는 왜 어떤 분야에 이렇다 할 재능이 눈에 띄게 보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아주 뒤처지지도 않는 것 같고(차라리 확연히 못하는걸 스스로 느낄 만큼이면 포기라도 쉬울 것을), 항상 어중간했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보단 왜 더 나아가지 못하냐고 다그치는 날이 훨씬 많았고, 항상 답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잘한다 라고 스스로를 평할 수 있는 분야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미국에 와서 살림이라는 것을 주업으로 하다 보니 요리 또한 내 분야가 아닌 듯했다. 정말 어중간한 실력이다. 어떤 날은 맛이 괜찮다가 어떤 날은 역시 내가 그렇지 하며 혀를 찰 만큼 맛이 없다. 그 결과에 따라 내 기분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요리도 아니구나. 매일 하는 운동이나 영어공부도 비슷한 패턴을 그려간다. 이유가 뭘까? 내 노력 부족인가? 아니면 나는 정말로 능력이 부족한 것인가? 끝없는 질문 끝에 이제야 그 답을 찾아가는 첫 단서를 찾은 것 같다.


나는 완벽하고 싶었다. 그 욕심에 가려져 아주 조금씩 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눈에 띄는 성장이 없다고 자책했던 것이다. 그리고 안다. 세상에 완벽하다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만족감을 최고치로 느끼는 그 상태가 완벽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자타가 공인하는 완벽의 기준이나 상태는 없다. 이제서야 내가 얼마나 무모한 도전에 매번 실패하며 나는 영원한 패배자라고 매일같이 도장을 찍어냈는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스스로에게 너무 모진 내가 짠했다.


물론 소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무한한 시간과 성실함을 들이면 혹여 누군가가 완벽하다는 상태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만, 그 소설 속 노인 또한 사내에게 판 방망이를 끝끝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자기만족이다. 나 좋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함의 다른 표현이 아니라 어떤 노력과 성실, 시간, 애정을 담아서 결과물을 냈다면 그것의 완성도는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평할 수 있다. 남이 아주 잘했다고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이면 조금 더 분발하면 되고, 남이 뭐라든 내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홀가분함을 느끼며 만족한다면 그게 전부다. 


이제 아주 조금 알았다. 그리고 내 어중간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 잘 알면서 나는 모든 걸 잘 해내는 1인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어중간하기에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을지도 모르고, 어중간하기 때문에 까칠한 듯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둔다. 이런 내가 나는 싫지 않다. 아직 내가 너무 좋다고 속에 없는 표현까지는 꺼내기 힘들지만, 나는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조금 바보 같을 때도 있고, 의미 없는 무언가에 몰두할 때는 진짜 바본가 싶다가도 정말 예상치 못하게 똑똑한 생각을 해 내는 때도 있는 내가 싫지 않다. 그리고 잘해주고 싶다 이런 나에게. 너무 모질게 몰아붙이지도 그렇다고 나태함을 여유로 둔갑시켜서 그 속에 두고 싶지도 않다. 내가 쉬고 싶은 만큼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움직일 것이다. 어중간한 나와 함께 잘 사는 법을 아주 느리게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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