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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Sep 04. 2019

일머리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 단어로 정의되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예컨대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다는 걸 느끼고 난 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어도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명료한 꿈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늘 불안했고,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면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무엇이든 열중해야 했다. 아마 직장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이것 말고 지금 당장 무언가 해야겠다고 박차고 나갈 만큼의 동력이 아직까지 없었다는 것. 물론 일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 포기했던 한번 정도를 제외하면 나는 이직하지 않고 한 회사를 11년째 다니고 있는 셈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신입이 시절, 아~나는 사회생활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체득했다. 흔히들 말하는 넉살이 나에게는 조금도 없다. 그래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음이 가장 편했고, 업무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식사자리 등은 깔끔하게 가지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원치 않는 자리에 앉아있는 내 표정과 모습을 내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재밌지 않은데 웃어야 하고, 마시기 싫은데 마셔야 하며, 대단치 않은데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그런 문화들이 내가 입사했던 시절만 해도 일반적이던 시기였으니까. 그렇게 지내다 운이 좋게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잘 만난 덕에 사내에서 친구라는 것도 생기고, 특히나 나의 유별난 까칠함을 섬세함과 책임감이라는 시선으로 봐주는 윗분들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10년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다.


10년 차 즈음이 되면 어느 부서에서든 허리 역할을 맡게 된다. 윗사람의 의중도 대충은 알아차릴 연차가 쌓였고, 후배들의 어려움이 뭔지도 겪어 본 지 오래지 않아 잘 기억하고 있는 딱 중간의 정도. 입사 3년 차 전후반으로 나는 '일 잘하고 싸가지 없는 사람이 일 못하고 사람만 좋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는 것은 결국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 영향력이 닿을 수도 있기에 불편함이 크고, 가급적이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피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는 안다. 사람을 저렇게 내 나름의 기준과 잣대로 나누고 호불호를 갈라놓을수록 내가 피곤해진다는 것을. 또한 세상에는 일 못하면서 성격 나쁜 사람도 있고, 일 잘하면서 된 사람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무엇보다도 10년 차를 겪으며 가장 정확히 배운건, 일머리와 공부머리는 다르다는 사실. 나는 공부머리가 뛰어나지 않아서인지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조차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일을 잘한다는 개념의 명확한 정의는 잘 모르겠다. 이는 매우 미묘한 지점에 있는 표현이라,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일잘함의 기본 내역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업무 이해도가 높으며(팀 전원이 어떤 업무를 어떻게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발생한 문제에 대한 유연성이 좋고(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빠른 시간 내에 해결 가능한 답을 찾아 실행하느냐)

책임감 있지만(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알고, 보고 타이밍 등을 귀신같이 알아차릴 수 있느냐)

후배에게 '대리지만 과장같은 마인드로 일하라'는 도가 넘는 충고 따위 하지 않는 깔끔함을 가진 정도라 하겠다.


물론 일잘함의 기본기는 글로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많은 영역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일을 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일잘함의 능력을 보유한 이들은 '일머리'라고 대충만 말해도 안다 어떤 걸 의미하는지. 내가 겪어본 바가 전부는 아니지만, 나의 경험통계상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비례하지 않음을 너무도 많은 경우에서 나는 확인했다. 직접적인 이유나 연결고리 등은 찾을 수 없겠지만, 참 신기하게도 일머리를 타고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를 꿈꾼다. 모든 이들이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조직, 회사 나아가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일머리를 가진 사람의 수가 비례하며 늘어나야 조금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가당찮은 믿음은 있다. 


어려서부터 꿈이 명확치 않던 나이기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직함을 꿈꿔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일을 업으로 하는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에는 꼭 일머리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고 늘 생각한다. 일잘러가 되는 비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또 어떤 이들은 꼭 일을 잘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신입시절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내 모습이 보기 싫어 불필요한 회식자리를 피하던 나도, 일머리를 장착한 프로 직장인이 되고 싶은 나도 그저 내가 좋아서 그런 것임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 일을 하면서 곁에 좋은 사람들을 가급적 많이 둘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같은 욕심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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