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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Dec 16. 2019

메일 한 통에 담기는 것

나는 다방면으로 예민한 편이지만, 겉으로 그 예민함을 드러내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또한 민폐라 여기고 잘 숨기는 편이다. 그리고 나의 예민함이 정답일 수 없기에 타인에게 당연히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을 하면서 나의 예민함을 격하게 드러내던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업무용 메일. 직장생활에서 주고받는 메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크게 소리 내어 외칠 수 있다. 메일은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꽤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나는 신입사원 교육에서 메일 쓰는 법을 가르치는 곳을 자주 보지 못했다.


총괄업무를 하다 보면 하루에 쌓이는 메일이 수십 통을 넘기기 일쑤다. 강박증적인 나의 습관일 수 있으나, 나는 내가 수신한 거의 대부분의 메일을 확인한다. 자주 수신하는 사람의 메일은 별도 폴더로 구분해 두고, 퇴근 무렵이면 '읽지 않은 메일' 숫자에 0이 떠야 마음이 놓였다. 내가 보내는 메일도 마찬가지로 수신확인은 기본이고, 혹시나 중요한 메일의 수신이 늦어지면 전화를 통해 보낸 목적과 주요 내용을 알렸다. 업무가 주는 특성일 수도 있었겠지만, 허투루 그냥 보내는 메일은 한통도 없도록 하고 싶었다.


메일은 말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둔 서신이다. 인사말과 소속, 이름을 밝히고 보내는 목적과 요구하는 내용을 적시한 후 끝인사를 마침으로 정리되는 하나의 편지이다. 이 단순한 수단을 이용하는 모든 이들은 제각각의 스타일을 가진다. 스타일이 다양한 것은 절대 해로울 것이 없지만, 기본을 해치면서까지 스타일만을 드러내는 메일들이 가끔 보였다. 그 형태와 내용은 너무도 다양해서 모두 열거할 수 없지만, 요약해서 말하자면 읽는 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쓰는 사람의 입장만이 고스란히 담긴 메일이 그렇다고 하겠다. 


사적인 메일이야 어떤 것이든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적어도 업무용 메일은 토대 자체가 공적인 업무를 기반으로 한다. 개인적인 친분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 등이 굳이 공적인 업무 메일에 영향을 미칠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데면데면한 사이인데도 무언가 업무적으로 부탁하는 메일에는 여지없이 "^^*"표시가 등장했고, 직위가 한참 높거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반말을 자유자재로 섞어가며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소한 메일 한 통이 스스로에 대한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모든 오가는 메일에 심혈을 기울여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겨우 메일 한통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업무에 대한 서로 간의 암묵적 약속이고, 그렇기에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을 조금 더 기민하게 지켰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엔 내가 경험한 표본의 수가 턱없이 적지만... 메일 한통의 무게감을 아는 사람이 일을 못하는 경우는 (적어도 나는) 본 적이 없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매일 입는 옷 중에 양말 정도가 업무상의 '메일'의 역할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신지만 신경을 쓰든 쓰지 않든 기본적인 역할은 다하고 있는 양말. 하지만 양말 기본의 역할을 다하되 재질이나 색상, 디자인을 조금 더 신경 써서 고른다면 그것은 사소하지만 확연히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된다. 하지만 그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기능은 양말 자체의 보온성과 흡습성이다. 그것 없이는 그저 멋 내기일 뿐. 출근해서 퇴근까지 가장 자주 다양하게 접하는 것이 업무용 메일이지만, 기본기를 충실히 다진 것 만이 그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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