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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Oct 14. 2019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

한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또는 영원히 접고 외국생활을 앞두면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스치고, 수많은 주변의 말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 생각과 말들은 그 내용과 방향이 너무도 다양해서 일일이 글로 다 옮길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그것들이 던지는 바는 '달라진 환경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것임은 틀림없다. 나 또한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에 휩싸였었고, 지금도 그것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제 어느 정도는 안다. 들려오고 생겨나는 많은 말과 생각들에 맞아떨어지는 대답은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처음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했고, 가끔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내가 안타깝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해외생활은 배우자의 진로에 따른 부차적인 것인지라 나의 의지나 목표하는 바와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핑계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나를 마주하는 두려움을 감추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시간을 지나고 난 지금, 살면서 어떠한 일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이 나를 필요 이상으로 힘겹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선택을 한 이후로 이어진 나의 조금은 무료한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일상을 부정하던 나의 굳건한 믿음을 보란 듯이 무너트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은 바꿔 말하면 내가 무언가를 하느라 보고 느끼지 못했던 너무도 사소하고 다양한 것들의 존재를 확인하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하는 일이 없으면 생산적이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면 지루할 것이라는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생각만에 사로잡혔던 나는 그 반대를 경험으로 체득하는 중이다. 나아가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게 될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는 생각지 못한 매력과 너그러움'을 열심히 설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의 일상은 평온함을 더해가지만, 아주 가끔은 다시 일하게 될 또는 해야 할 때의 나를 상상하곤 한다. 명쾌하게 그려지는 대답 없이 '에이 나중에 다시 생각해'라며 생각을 접는 게 다반사지만, 그 막연한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처럼 그저 흔들리며 시간을 보낸다. 다만 그 흔들림에 힘겨움을 더하지 않고 필요 이상의 행복함을 부가하지 않게 된 것이 내가 얻은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미국의 시골에서 보던 일상의 여유로움과는 확연히 다른 딱딱하고 분주한 서울의 삭막함 속에 보내는 오늘의 나는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조용히 보낸다. 새삼 글을 쓰며 이 고요한 일상이 아주 잠깐 감사했다. 그리고 꼭 무엇인가가 되고 어떠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내가 이제서야 인정하고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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