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남편과 함께 지내는 나는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잠시 들른 한국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딸이자 동생이며 친구, 동료, 선후배, 며느리 등 한동안 잠시 내려두었던 역할들 속의 나를 다채롭게 마주하는 하루를 보낸다. 매일의 내 모습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각 역할이 주어진 자리에 앉게 되면 각양각색의 나로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어떤 이를 어떤 장소에서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이 자연스레 따라왔고, 나누는 이야기 속의 나는 어느 구석인가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직장동료들을 만나면 어딘가 뾰족했던 구석이 살아있는 까칠한 사회인이기도 하다가,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철없이 왁자지껄 웃고 떠들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무던한 막내였다. 오랜 기간 머물지 않다 보니 전에는 자주 보지 못하던 친구들도 하루 걸러 하루씩 만나게 되고, 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의 다양한 옛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조금씩 멍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와 다르게 내가 느끼는 지금과 그때의 나에게는 이런저런 차이들이 존재했고, 어떤 사건과 시간들이 나를 지금으로 이끌어 왔는지 오래 생각하기도 했다.
누군가와는 20대의 젊음을 이야기하기 하고, 어떤 이와는 신입사원 시절의 뭣 모름을 추억 삼고, 떠나기 전까지 함께 고생한 동료와는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그때의 고됨을 상기하며 웃었다. 다양한 역할과는 반대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그땐 그랬지'로 마무리됐고,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각자가 조금씩 그리워지기도 했다. 평소 지난 시간을 잘 돌아보지 않던 나는, 별생각 없이 방문한 한국에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며 내가 거쳐온 다채로운 시간들을 천천히 곱씹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 앞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조금씩 흰머리가 늘고 주름이 생기고 표정에 삶이 묻어났다. 여유가 부족했던 일상을 지내던 때의 나였다면 어쩔 수 없는 노화를 안타깝게만 받아들였겠지만, 지금 만난 그들의 모습은 퍽이나 편안하고 보기 좋았다. 어린 시절의 치열함과 어리석음과 앞뒤 재지 않던 패기를 모두 지나온 우리 모두는 비록 각자가 꿈꾸고 생각하던 대로 살고 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짓는 표정만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정을 겪고 쌓아가며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고,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금 느낀 풍성함과 여유로움이 많은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내게서도 묻어나길 바라며, 아직 만날 약속을 정하지 못한 친구를 찾아 문자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