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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Jul 22. 2021

휴가 중

놀고 싶은 자, 억지로 하는 자,아무 생각없는 자,의무감에 하는 자

올여름 휴가지는 남쪽으로 갔다.


제주도로 갈 예정이었지만 렌터카 비용이 미쳤다. 하루에 20만 원이라니. 처음엔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코로나 여파로 해외여행 대신 제주도로 여행가는 사람이 많아서란다.


아무래도 이번 휴가는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이 없을 법한 곳을 찾아보았다. 해변도 유명하지 않은 곳으로 골랐다. 막내는 바다에 들어가길 원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숙소로 가길 바랐다. 혼자 하는 여행과 가족여행의 차이는 이런 거다. 아무래도 가족여행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위한 장소와 할 거리가 중심이 된다. 중간중간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넣어보지만 힐링보다는 봉사하는 느낌이랄까.


2박 3일의 여행에서 첫날은 막내 데이로 정했다. 물놀이가 목적이다. 이 시국에 놀러 가는 것 자체가 민폐이긴 하다. 최대한 조심해서 다녀보지만 이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숙소는 오후 3시 입실이라 여수에 도착해서 약 5시간은 시간은 다른 곳에서 보내야 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진짜 안 난다. 00 해변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1미터 거리두기 입장 팔찌를 차고 해변으로 갔다. 200~300미터 정도 되는 해변이다. 다섯 가구(?) 정도가 입장해 있었다. 부부 커플 4명,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부부, 나머지는 연인 커플 한쌍,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몇 명이 있었다. 먼저 튜브 대여소를 찾았다. 여행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뭔가 빼먹고 오는 일은 항상 있는 일이다. 돗자리와 튜브, 그리고 구명조끼를 안 갖고 왔다. 해변 왼쪽에 위치한 샤워장 옆에 튜브 대여소가 있었다. 사장님은 현지 주민인 것 같았다. 햇빛에 탄 얼굴과 굵은 주름이 눈에 띄었다. 사투리 말투. 막내의 시선은 일반 튜브가 아니라 고무보트에 가 있다. 역시나 고무보트를 타 겠다고 했다. 신랑이 없는 틈을 타 태워주기로 했다. 우리 신랑은 이런 것들에 인색하다. 사장님은 막내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인기 있는 녀석이라고 넌지시 자랑하신다. 2시간에 2만 원이란다. 일반 튜브는 5천 원인데 비싸긴 하다. 

'어차피 2시간도 못 탈 텐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장님은 주의사항을 몇 번씩 내 등짝에 퍼 부셨다.

"가장자리를 누루고 타거나 내리면 안 된다!"

 "그럼 망가지거든~~"

휴가지에서는 돈 씀씀이도 봉인 해제된다. '여행'이라는 마음가짐이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막내는 고무보트를 들고 신이 나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아빠와 큰아이는 모래사장 위쪽에 있는 솔나무 그늘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다. '이건 뭐지.' 당연히 큰 아이가 놀아줄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같이 놀아주면 안 돼?"

막내는 눈을 반짝인다.

첫날은 해변에 올 생각은 하지 못했던 터라 평상복 차림이었다. 나는 두 남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두 남자들은 화답으로 손을 흔든다. '음. 놀아줄 생각이 없군...' 막내에게 일단 혼자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잠시 후 큰 아이가 왔다. 눈을 보니 억지로 떠밀려 온 듯싶었다. 팔짱을 낀 채 입이 나와 있다. 햇볕이 뜨거웠다. 폭염주의보가 전국적으로 발효되고 있었다. 마음도 더웠다. 막내는 형이 온 것을 보더니 다시 우리 쪽으로 왔다. 신이 난 얼굴이다. 큰 아이는 마지못해 물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가족이란 게 항상 마음의 색깔이 일치하는 게 아니다. 놀고 싶은 자, 아무 생각 없는 자, 의무감에 하는 자, 억지로 하는 자...


막내(놀고 싶은 자)는 보트에 자신이 탔다가 형을 태웠다가 해보기를 여러 번 한다. 억지로 하는 자(형)는 이내 자리를 이탈한다. 뭐든 억지로 하는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여기서 아무 생각 없는 자(아빠)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 나(의무감에 하는 자)는 막내가 즐겁기를 바란다. 근데 평상복 차림으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하기 싫다. 아니면 차에 가서 입수를 할 만한 옷을 갈아입는 수고를 해야 한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때 아이와 신나게 놀아줄 걸 후회하겠지.' 이런 생각도 머릿속을 스친다. 근데 몸은 귀찮음을 이기지 못한다. 대신 고무보트가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냥 튜브를 고를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나는 잔머리를 굴린다. '튜브를 바꿔주면 혼자서도 놀 수 있냐고.' 아이는 그렇다고 한다. 땡볕에 고무보트를 둘이서 끌고 대여소로 갔다. 사장님은 왜 이리 빨리 왔냐고 한다. 아이가 고무보트를 잘 못 타서 그렇다고 하면서 대신 튜브로 바꿔달라고 했다. 어차피 조금만 더 있다가 갈 거라고. 평상시 같으면 반납을 하고 갔을 것이다. 그렇다고 30여분 정도 빌려 타고 그냥 가기는 좀 억울한 것 같았다. 해변에 튜브를 대여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개인 튜브를 갖고 온 사람들뿐이었다. 사장님은 고무보트를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타는데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아무튼 튜브를 하나 다시 얻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노란 고무튜브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 혼자서 둥둥 떠다니면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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