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토지”를 읽으며
도서관에 가서 박경리의 [토지]를 빌리려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항상 1권이 없다. 예약도 여러 명이 되어 있어 게으름뱅이인 나에게는 여러 번 시도를 하다 포기한 책이기도 하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큰 마음을 먹고 [토지] 20권을 질렀다. 명품백 대신 [토지]를 선택한 나 자신이 멋지기도 했다. 이런 자부심(?)도 잠시 책은 책장도 아닌 옷장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원했던 [토지]1권을 몇 장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인물들이 사용하는 대화체는 구어로 발음되는 대로 쓰여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이게 한국말인지 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생소한 낱말들이 책을 읽는 내내 거슬리고 집중할 수 없었다. 나에게 [토지]는 영문으로 된 책을 더듬더듬 읽는 것과 같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장편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데 장편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감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토록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획을 긋는다는 평을 가진 책을 꼭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때가 되면 읽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때가 지금이다. 현재 3권을 읽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타면 그런 것은 추측이 가능하다. 문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봐야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의미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간다.
[토지]의 시대적 배경은 동학운동에서부터 행방 직전까지이며, 최참판댁이라는 양반가의 손녀 “서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군중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3권을 읽고 있는 현재 나의 생각이다. 장소는 하동 평사리이며 그 지역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최고의 양반가 최참판댁과 소작농, 노비, 무당, 스님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살이를 볼 수 있다.
요즘 ‘오징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당연히 메인으로서 이야기의 흐름의 중심이다. 하지만 조연들을 보면 역할로는 조연이기는 하나 각각의 캐릭터만 놓고 보면 주인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각자의 스토리와 개성이 있기때문에 조연이지만 주인공 같은 조연들이다. 뜬금없이 ‘오징어 게임’을 꺼내는 이유는 [토지]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오징어게임’에서 처럼 하나같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을 받혀주기 위한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어쩜 내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이유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빛이 난다. 화려한 빛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린 다른 것이다. 그뿐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운명이다. 그러니 주인공이 아니어도 슬퍼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