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1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음치여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듯, 그림도 마구 그려야 한다. 글도 마구 써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디로든 가겠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잘 보이려는 욕심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 못해도 된다. 못나도 된다. 그냥 글 쓰고, 그냥 그리고, 그냥 노래 부르며 살면 된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 서두가 장황하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데, 손과 마음이 따로 논다. 손으로 익히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그림도 운동 같다. 글 쓰는 일과 같다. 그림도 타고난 재능 같은 건 없으니. 기대는 없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무념무상의 순간들이 있다. 일명 멍 때리기. 그냥 멈추는 시간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이것과는 결이 다른 한 차원 높은 경지는 몰입이다. 몰입은 다른 차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사람마다 이런 순간이 있다. 나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멍 때리기와 몰입의 어디쯤에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면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만화책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좋아하는 주인공을 그릴 때 행복했다. 완벽히 똑같이 그릴 수는 없었지만 비슷하게 그리고 나서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뿌듯함이 가슴에 가득했다. 그 경험은 가슴 한편에 꼭꼭 숨어 있었나 보다. 어른이 되어서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사실, 그림 그리는 재능(?)도 애매한 수준이었고, 공부도 애매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애매한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나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뭐!’ 낙서면 어떠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그만이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방의 끝은 언젠가 나에게도 있겠지…
오늘도 한 장 (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