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주체로 살아가기
관습이란 한 공동체나 사회 내에 확립되어 있는 행동 유형
습관은 개인이 습득한 개개의 상습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에 비해 관습은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의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 속에서 전통적으로 그 구성원의 대다수에 의해 상급적으로 수행되고 승인되어 온 행동양식 전반을 의미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개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에 대해 썼다. 대표적으로 관습 때문에 개별성이 손상될 수 있음을 그는 경고한다.
나의 감정은 항상 타당하다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모든 자명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행복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늘 해 왔던 것들을 의심해 봐야 한다. 철학 박사 강신주의 책에서 퍼 온 문구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나 글귀는 노트나 다이어리에 적어 놓는다. 한때 강신주 강의에 빠졌었다. 책을 보다가 책이 좋으면 그 작가의 이전 책들로 넘어간다. 그렇게 읽으면 그 작가의 인생 역사도 알 수 있다. 책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나는 집중력이 저질이라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 독서를 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고 너무 기뻤다. 난 미치지 않았어. 바보 아니야. 이렇게 마음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아무튼 난 이런 사람이다. 남과 다르면 뭔가 내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고 한다. 인류 조상의 DNA가 21세기를 사는 내 속에 있다. 이런 유전적 형질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동물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이득이었다. 하지만 이제 본능적인 것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 개인적인 삶도 그렇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맞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의 개인이기도 하다. 개인이 행복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관습 또한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며... 양반은 아닐 것이고 일반 상민으로 치고 생각하면 글공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관습이고 모두 그렇게 하고 있으니 의심을 하는 것 만으로 큰 일이었을 것이다.
왜? 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경향은 사회 전반에도 미치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의견이 진리가 아니다. 대중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공을 세운 것은 맞다. 지금은 정치도 대중의 의견에 따라간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올바른 진리와 선에 다다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알고 있고 확신에 차 있는 것들도 항시 의심을 품어야 한다. 이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을까? 당연히 피곤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빨간약을 먹는 것과 같은 거다. 공상과학 이야기만은 아니다. 관습이든 사회 통념이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행동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으로 살게 될 것이다. 개별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못생기고 못나도 다르게 살고 싶다.
오늘도 작은 몸부림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