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세발자전거까지
눈이 와서 설렘보다는 짜증부터 나는 나이가 되었다. 눈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동생들이랑 동네에서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들자며 온 동네 눈을 치우다시피 했었는데...
눈이 많이 내렸다. 어른이 되면 달라지는 게 많다. 눈이 오면 걱정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즐거웠던 것들이 더 이상 무용지물이다. 눈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변해서다. 해가 바뀌면 커다란 달력을 엄마에게 얻어 남동생들이랑 그림도 그리고 딱지도 만들기도 했다. 올해는 그냥 버리기 아까워 식탁 위에 놓아두었다. 메모지를 만들던가 막내 수학 풀이 연습장으로 하든가 해야겠다. 눈이 오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 혼자 외롭기도 하셨고 우리 집이 세명이라 손주 한 명을 키워 준 셈이다. 할머니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시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남동생 둘은 내가 본인들의 누나임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집에 들어온 이방인 취급을 했다. 둘만 같이 놀고 왕따 취급 비슷한 것을 당했다. 물론 나의 기억이 과장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지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 어떤 계기가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동생들이 남자아이들이라 나를 놀리고 해서 힘(?)을 좀 썼다. 그 이후로 대접이 달라졌다. 나는 나의 힘으로 내 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런저런 풍파 끝에 우리는 셋이 놀게 되었다.
세발자전거가 기억에 남는다. 큰 동생은 페달을 밟고 나는 뒷좌석에 앉고 막내는 뒤에서 밀었다. 내 권위도 찾았다.(풋) 이렇게 내부가 평화로우면 항상 외부 악당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때는 아랫마을과 윗마을 이렇게 놀았다. 우리 집은 윗마을에 살다가 아랫마을로 집을 옮기면서 아랫마을 아이들이 텃세를 부렸다. 지금은 귀여운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는 뭐랄까.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느 날 아랫마을 패거리들이 우리 세발자전거 앞을 가로막았다. 원래 너희들 동네로 가라고 억지를 부리는 거다. 그 아이는 덩치가 큰 편이었고 초등학생이었다. 큰 동생과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겁에 질렸다. 막내가 뒤에서 보고 있더니 말리 사이도 없이 가로막고 있던 아이에게 돌진해서 넘어트렸다. 그 아이는 코피가 났다. 주위의 아이들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협박한 아이들도 협박당한 우리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한가로운 시골마을에서 ‘피’를 보다니. 우리 엄마는 사과도 하시고 먹을 것도 같다 주시고 했다. 이 계기로 우리의 세발자전거를 막는 아이들은 없어졌다. 시간이 흘러 아랫마을 아이들과 늦은 시간까지 놀았다.
어린 시절 눈은 놀잇감
어른이 되어서 눈은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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