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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17. 2023

나는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 006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언제 어디서 왔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똑, 똑, 똑, 제습기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숨 쉬는 공기에 이렇게 많은 물방울이 숨어 있었구나. 내가 살아있는 목숨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방울이 숨어 있었구나. 밖에는 이미 6월 장마가 시작되었고 안에서도 역시 장마가 시작되었구나.     


6월 장마에 돌도 큰다,라는 속담이 있다. 6월 장마에 특히, 수국과 산수국 그리고 대나무들이 가장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고 있다. 그들 중에서 나는 오늘 산수국을 오래도록 본다. 산수국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 깊이 생각한다.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더 먼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렇게 저 먼 곳으로 다시 찾아가 나의 뿌리를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는 1931년 3월 26일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 몸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아마 1965년 6월 장마가 시작되고, 산수국과 수국이 한창 피어나던 이 무렵에 아버지 몸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나의 모든 전생을 한 번쯤 더 되풀이하여 생각했을 것이다. 물에서 살았던 시절부터 물 밖으로 기어 나왔던 경험까지, 그중에서 많은 것들은 생략하고 꼭 필요한 정거장들만을 거쳐서 돌아왔을 것이다. 아가미 시절과 허파 시절을 짧은 10개월 동안 다시 한번 속성으로 살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1966년 어느 봄날에 힘차게 울면서 이 세상으로 나왔을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어도공화국에는 아버지 같은 산수국이 피어나고 어머니 같은 수국이 피어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어도공화국에는 아들 같은 큰 유리새도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들을 점검하고 확정하여, 꼭 필요한 것들만 이 세상에 남기고 빈 몸으로 저 먼 곳으로 다시 한번 떠나야만 하리라.     





* 제주의 산수국과 큰 유리새        


산수국 꽃차례


산수국(Hydrangea serrata for. acuminata)은 제주도 한라산 정상까지 자라는 낙엽성 작은 키나무이다. 습기가 많은 계곡 사면이나 바위틈에서도 잘 자란다. 꽃은 붉은색에서 파란색까지 다양한 색깔로 피며 수정이 이뤄진 뒤에는 꽃의 색깔이 변한다. 이런 특성은 ‘변하기 쉬운 마음’이라는 꽃말에서도 나타난다.


활짝 핀 산수국 꽃


제주에서는 변덕스러운 도깨비의 마음과 닮았다고 해서 ‘도채비고장’이라고도 부른다. 도채비고장은 ‘도깨비꽃’이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제주에서는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부터 8월까지 핀다. 산수국은 꽃잎이 없이 암술과 수술로 이뤄져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만든 무성꽃이다. 산수국은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뿌리는 한방에서 ‘토상산’이라 부르며 피부병 치료에 이용한다. 수국 종류의 잎은 단맛과 박하향을 갖고 있어 차로 이용하기도 한다.


큰 유리새 수컷


큰 유리새(Cyanoptila cyanomelana)는 참새목 솔딱새과의 여름철새이다. 몸의 크기는 17cm이고 수컷과 암컷은 몸 빛깔이 다르다. 수컷은 이마부터 등, 날개, 꼬리까지 푸른색을 띠며, 목과 뺨, 가슴은 검은색으로 배의 흰색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암컷은 몸 윗면이 갈색을 띤다. 번식기에 수컷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며 바위틈이나 계곡의 흙벽에 이끼로 둥지를 짓는다. 주로 계곡 주변 울창한 숲에서 번식하며 중산간지역의 숲, 곶자왈 등에서 관찰된다. 푸른색 몸 빛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름이 시원해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큰 유리새 암컷






* 산수국의 다양한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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