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를 보낸다 008
이슬 한 방울을 본다
안개 한 방울을 본다
구름 한 방울을 본다
태초에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떤 사람은 흙에서 왔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바람에서 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불에서 왔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먼지에서 왔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없음에서 왔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에서 왔다고 말한다. 나는 이슬 한 방울을 보면서 물을 생각한다. 나는 태초의 사람은 몰라도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나는 아직 바다 이전의 나를 기억할 수 없다. 나는 다만 바다에서 출발한 나를 기억할 뿐이다. 나는 멀고도 먼 여행을 통하여 아버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나는 아버지가 약을 드시다가 흘려버린 물방울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이 지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눈물 한 방울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니,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 속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물방울 하나에서 출발하여 눈물방울 하나로 마무리를 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 지상을 떠나 또 다른 세상에 태어나 새롭게 살아갈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슬방울이 나무속에서 나온 눈물인 줄 알았다. 처음에 나는 이슬방울이 땅 속에서 뿌리를 타고 올라와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이슬방울이 풀잎 속에서 나온 영혼인 줄 알았다. 처음에 나는 이슬방울이 풀잎의 맑은 눈인 줄 알았다. 이슬방울 속에 들어있는 나를 보여주려고 나를 찾아온 만화경인 줄 알았다. 이슬방울이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들이 응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도 나는 나의 숨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방울이 안개방울이랑 구름방울과 같은 식구임을 알아버린 지금도 나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물방울 안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또한 토성에서 날아온 먼지 하나에서 태어났다. 먼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소리라고 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의 자궁경부를 무사히 통과하고 수많은 백혈구들의 공격을 피해 양 갈래길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 나팔관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바로 그때 번쩍, 하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에 나는 나의 운명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비추는 번개 같은 한 줄기 빛이었고 천둥소리 같은 말씀이었다. 그렇게 나는 너를 만났다. 그렇게 나는 난소에서 오래도록 기다렸을 너를 만났다. 우리는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서 38주 266일 동안의 긴 여행을 함께 떠났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기적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황홀한 여행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들이 흔히 삶이라고 말하는 이 지상의 여행은 그렇게 문득, 시작되었다. 우리들이 죽음이라고 말하는 저 세상으로의 여행 또한 그렇게 시나브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이슬 한 방울에서 눈물 한 방울을 본다. 눈물 한 방울에서 이슬 한 방울을 본다. 나는 그렇게 이슬 한 방울을 본다. 나는 그렇게 이슬 한 방울이 된다. 나는 그렇게 눈물 한 방울을 본다. 나는 그렇게 눈물 한 방울이 된다. 나는 그렇게 나를 보고 나는 그렇게 너를 본다. 나는 그렇게 또 다른 나를 보고 또 다른 너를 본다. 우리는 그렇게 나는 너고 너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