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꿈삶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un 01. 2023

너에게 나를 보낸다 03



너에게 나를 보낸다 03



고양이가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온다

고양이 같은 당신도 따라서 들어온다

꿈속에서 고양이는 호랑이로 변한다





이어도공화국 고양이들은



1


이어도공화국 식구들이 또 늘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들이다

야옹야옹 이야옹 이야옹

그동안 들어오던 고양이 소리가 아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비틀거리며 나에게 온다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

나에게 다가와서 떠나가지 않는다

어미는 보이지 않는다

두 눈을 다 뜬 녀석도 있고

한쪽 눈만 뜬 녀석들도 있고

두 눈 다 감은 녀석도 있다

눈을 감고도 함께 다니는 녀석이

참 신통하다

고양이들에게

밥 한 끼 따로 챙겨주지 않았는데

눈칫밥 먹고도

잘 자라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이렇게 어여쁜 새끼들 두고

어미와 아비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새끼들에게 젖은 물리지 못하고

나는 다만 아이들과 놀아주기만 한다


눈도 뜨지 못한 고양이 새끼들

벌써 발톱이 길고 날카롭다

두 놈

두 놈

한 놈

외로운 한 놈이 

가장 크고 눈도 가장 크게 뜬다



2


산책길에 만난 고양이들이

자꾸만 나를 따라서 온다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온다

고양이 목에 철사 올가미

상처가 선명하다

상처마다 피가 철철 흐른다

내가 어린 시절 잡았던 산토끼들

겨울산에서 철사 올가미로 잡았던

바로 그 올가미가 나의 목을 조인다

나는 어린 시절 한 때 고향 산 가득

산토끼를 방생하여 생계를 유지할 생각까지 했었다

내가 철사 올가미로 잡은 산토끼는

광주 어느 토끼탕 골목으로 사라져 갔었다

나는 늘 겨울을 기다렸고 눈을 기다렸다

싸이나로 잡은 꿩과 철사로 잡은 토끼가

나의 겨울을 풍성하게 했고 흰 눈이 좋았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양이가 나를 후빈다

꿈속까지 따라 들어와 나를 물어뜯는다

겨울밤 싸늘하게 식어가던 꿩과 산토끼

뒤늦게 다시 살아나 나의 마음을 할퀴고 물어뜯는다





나는 꿈을 많이 꾼다

내가 꾸는 꿈은

나의 삶이다

그리하여 나는

꿈과 삶을 함께 쓴다     


그레고르 잠자야, 이제 잠에서 깨어나라.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갑충이 아닙니다. 저는 바퀴가 없는 바퀴벌레입니다. 너는 바퀴가 없는데 어찌하여 바퀴벌레라고 하느냐? 요즘 사람들은 바퀴를 굴리지 않고 바퀴를 타고 다니며 삽니다. 저는 바퀴가 아니라 나비입니다. 저는 카프카를 모르는 나비입니다. 카프카는 몰라도 까마귀는 알지 않느냐? 아닙니다. 까마귀 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까치들은 많은데 까마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라산 윗세오름까지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나비야, 이제 그만 일어나라. 아닙니다. 저는 나비가 아니고 고양이입니다. 성진아, 이제 그만 꿈속에서 나와 인간의 삶을 살아라. 아닙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저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만 꿈속에서 걸어 나와 눈을 뜰 시간이다. 알 수 없는 따뜻한 손길에 눈을 떠보니 석가모니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서 이제 막 떠나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신다. 나는 부랴부랴 옷자락을 붙들고 큰 절을 올리며 간청한다. 저는 하늘을 찌르는 히말라야산맥입니다. 저의 하늘이 되어주십시오. 저는 폐소공포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버스를 타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버스 지붕 위에 엎드려 불안하게 가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하늘이 되어 저의 지붕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서도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허허허, 웃으시며 떠나는 부처님의 뒷모습에 아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나는 요즘 잠을 많이 잔다. 잠을 많이 자면 꿈을 많이 꾼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꿈속에서 많이 일어난다. 나는 내가 꾸는 꿈도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꾸는 꿈들이 오히려 내가 쓰는 시보다 더 좋은 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쓰는 소설보다 오히려 더 좋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꾸는 꿈들이 오히려 나의 삶보다 더욱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꾼 꿈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 많은 꿈들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가끔이라도 기록해보려고 한다. 특히, 꿈을 깬 다음에 오래도록 생각나는 꿈들을 위주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꾼 꿈들과 내가 사는 모습을 함께 기록하면서 진짜 나의 참모습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여 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다. 요즘 세상에는 글들이 너무 많다. 너무 비슷한 글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직 나만 아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모내기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다. 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논이 있어도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접 씨를 뿌려서 벼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물이 부족한 경우에 주로 하는 농사법이다.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접 파종하여 농사를 지으면 모내기를 하는 농법에 비하여 좀 더 쉽지만 그만큼 소출이 적은 단점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모내기할 논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밭에 볍씨를 뿌려서 벼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 살면서도 논이 없었다. 밭도 없었다. 먼 거리에 있는 산밭을 일구어 밭농사를 조금 지었을 뿐이다. 심 씨 문중의 심산을 개간하여 ‘띠야굴’이라는 곳에서 밭농사를 지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그 심산 주인에게 ‘밭수’라는 이름으로 일정량의 곡물을 주어야만 했다. 그 밭수가 아까워서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밭수를 대신 받아주는 일을 하여 우리네 밭수는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반월산 아래 할아버지 산소가 생기면서 작은 밭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을 ‘댓등밭’ 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나는 논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다못해 집안에 감나무라도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논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는 감나무 하나 심을 수 있는 마당도 없었다. 참으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나마 감나무도 심고 살구나무도 심을 수 있는 밭이 있어서 참 좋다.      


나는 가끔 모내기하는 사진을 꺼내서 본다. 한쪽에서는 소로 써레질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모를 심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다랑이 논 하나 갖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의 꿈을 꺼내서 본다.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 논에 모내기하러 가시면 점심때쯤 꼭 나를 부르시곤 하셨다. 새참을 얻어서 먹이려는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아는 주인집 아주머니도 반갑게 맞이하며 아낌없이 밥을 퍼 주셨다. 그러면 나는 밥값을 한다고 못줄도 잡아주고 못단도 던져주고 때로는 모를 함께 심어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서 내 피를 빨아먹곤 하였다. 나는 거머리가 붙은지도 모르고 한참을 있다가 거머리를 발견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시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거머리가 핏줄 속으로 들어가 내 몸속에서 평생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내 핏줄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내기하는 풍경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대부분 기계를 이용하여 모내기를 할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모내기를 떠올리면 소와 어머니와 거머리가 함께 따라 나온다.     


오늘 밤에도 일찍 잠이 들었다. 기이한 꿈을 꾸고 일찍 일어났다. 밤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중천에 떠 있는 달도 생각에 잠겨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하니 아들이 부처님으로 보인다.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달을 보며 생각하니 부처님이 보인다. 아들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이렇게 문득 깨닫고 다시 보니 저 달도 나처럼 며칠을 굶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가 홀쭉하다. 배가 고프니 오히려 마음이 부르다. 달의 문도 환하게 보인다. 달의 뒷모습까지 환하게 보인다. 저 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의 길도 환하게 보일 것만 같다. 그렇게 오래도록 배고픈 달을 바라보니 나의 문도 서서히 열린다. 그 문 틈 사이로 나의 새로운 길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길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긴 편지를 쓴다. 아들과 나는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좀 더 깊이 알고 보면 사실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달을 보니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거울이 보인다. 달을 보니 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해도 보인다. 달을 보니 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네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네가 보인다. 달을 보니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나의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너의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달에 도착한다. 나는 이렇게 문에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 나에게 도착한다. 나는 이렇게 너에게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 달이 되고 거울이 되고 해가 된다. 나는 이렇게 내가 되고 네가 되고 또 하나의 길이 된다. 너는 아마도 나보다 더 배가 고플 것이다. 너는 아마도 저 달처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꿈도 없이 잠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모내기 한 논을 잘 볼 수 없어도 보리밭은 가끔 볼 수 있다. 가파도 청보리밭과 내도 알작지 곁의 보리밭이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내가 사는 화순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보리밭을 볼 수 있다. 보리밭도 많고 밀밭도 많다. 그리고 특히 맥주보리밭이 많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유명하다. 가파도에서 제주도 본섬을 바라보는 감회도 새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가파도에는 자주 가지 못한다. 내도 알작지와 내도 보리밭은 나의 주요 산책코스여서 자주 가는 편이다. 보리밭을 보면 나는 마냥 기쁘거나 아름다운 추억만을 떠올리지 못한다. 보리밭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가지런한 벼와 달리 마구 뿌려져서 빽빽하게 자란다. 이모작을 하는 논에서는 벼를 수확하고 늦가을에 보리를 파종한다. 보리는 물이 없는 밭에서도 경작할 수 있다. 겨울에는 어린 보리들이 추위를 견디며 더디게 자란다. 자란다기보다는 차라리 견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린 보리 싹들은 서로 몸을 비벼대며 추운 겨울밤을 뜬눈으로 견뎌야만 한다. 가난한 흥부의 자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듯 그렇게 힘겨운 밤을 견디며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겨울을 넘겨야만 한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벌레들도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로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병충해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좀 살아보니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도 가난을 알고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겪어본 사람들이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면 보리밭 밟는 일을 많이 했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잔디밭도 그렇고 다른 작물들을 밟으면 혼이 나는데 왜 보리밭은 일부러 밟아주는 것일까? 농촌봉사활동 한다고 전교생이 몰려가서 보리밭을 밟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크고 무거운 쇠바퀴를 굴려 밟아주기도 하였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들뜬 뿌리를 다시 땅에 밀착시켜서 보리 뿌리의 활착을 돕기 위해서 밟아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도 이렇게 가끔 자신의 들뜬 마음을 밟아줄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이어도서천꽃밭에 고양이들이 많다. 옛날에는 강아지들도 많았으나 요즘에는 고양이들만 있다. 강아지들은 밥을 주지 않으니 모두 떠나버렸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밥을 주지 않아도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산다. 강아지들은 자라나서 개가 되고 개들은 강아지들을 많이 낳았다. 불어난 개와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기가 어려워졌다. 기아자동차에서 나왔던 세렉스 트럭으로 식당에서 잔밥을 실어 나르다가 어깨를 다쳤다. 내가 개와 강아지들의 머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밥을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모두 떠났다. 개도 사람도 밥을 주지 않으면 떠난다. 아니다, 사실은 내가 강아지들을 모두 떠나보냈다. 내가 큰 수술을 받으면서 모두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밥을 주지 않아도 떠나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산다. 내가 밥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 산다. 나와 고양이들은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롭다.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는다. 이어도서천꽃밭은 농약을 하지 않아서 좋은 모양이다. 새들도 그렇고 벌들도 그렇고 지렁이들도 좋은 모양이다. 나비도 그렇고 잠자리도 그렇고 달팽이들도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 자꾸만 요즘에는 고양이들이 나의 꿈속으로 들어온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온다. 낮에 보았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내 꿈속까지 드나들기 시작한다. 검은 고양이와 호피무늬 고양이가 있다. 꼬리가 잘린 호피무늬 고양이가 두 마리 새끼들을 잘 기르고 있다. 작년에도 일곱 마리 새끼를 잘 낳아 잘 길렀던 고양이다. 올해도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는데 나에게 우연히 아지트를 들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세 마리의 새끼를 잃었다. 세 마리 새끼를 어디에서 잃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새끼들이 아주 어릴 때 나는 청소를 하다가 그들의 아지트를 무심결에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는 바람에 어미가 어린 새끼들을 물고 어디론가 이사를 떠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 새끼들이 좀 자란 다음에 내 곁으로 다시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새끼들이 두 마리뿐이었다. 밖에서 그 고양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과 달리 올해는 호피무늬 어미 고양이가 유난히 더 예민해져 있다. 평소에 잘 지내던 검은 고양이와도 자주 으르렁거린다. 새끼들과 함께 있다가 나를 보면 어미는 다른 쪽으로 뛴다. 나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 틈에 새끼들은 안전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어미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자꾸만 내 앞에서 얼쩡거리며 나를 따라오라고 한다. 


그 호피무늬 고양이를 따라가니 아름다운 집이 나온다. 그 집 거실 창문 앞에는 길 고양이들 먹으라고 고양이 사료와 물그릇이 놓여 있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빛나는 털을 다듬고 있다. 호피무늬 고양이와 그 흰 고양이는 서로 잘 아는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둘은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피무늬 고양이는 집 안에 사는 흰 고양이의 안락함을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집 안의 흰 고양이는 호피무늬 고양이의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꿈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컨테이너 지붕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검은 고양이와 호피무늬 고양이가 또 다투고 있는 듯, 밤하늘을 물어뜯고 있다.     


고양이들의 다급한 발자국소리에 깨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꿈의 무대가 서울 남대문시장이다. 남대문시장 길거리에 침대가 나란히 있다. 병실처럼 침대 사이에 커튼이 쳐져 있다. 장도 보지 않고 함민복 시인이 누워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장을 본 이진명 시인이 침대에 누워 시를 읽는다. 시장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다.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라며 백호를 노래한다. 배호야 배호야 노래 한 번 불러보렴. 나는 백호를 배호로 듣는다. 그런데 안개가 갑자기 백호가 되어 달린다. 백호를 부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백호야 백호야 힘차게 달려오렴. 백호야 백호야 힘차게 나에게로 달려오렴. 안개 자욱한 남대문 시장의 아침이 백호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나는 느닷없이 김기택 시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나는 시인의 안부를 물어보지 못하고, 나의 휴대폰에 충전을 시켜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다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백호 발자국소리 속에서 나희덕 시인과 정끝별 시인이 함께 나온다. 시장바구니를 든 나희덕 시인이 별을 든 정끝별 시인을 나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나의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아 나의 손을 잡는다. 그러자 갑자기 나의 몸에서 산목련 꽃이 피어난다.     


꿈에서 깨어나 나는 얼른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을 메모하고 그린다. 고양이 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시인들 꿈은 왜 꾸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엉뚱한 꿈이다. 더구나 나는 이진명 시인과 정끝별 시인을 직접 만나본 기억이 없다. 나희덕 시인과 김기택 시인은 아주 오래전에 인사동 평화 만들기에서 몇 번 만난 기억이 있지만 왜 갑자기 꿈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다. 그 시인들은 왜 내 꿈속으로 들어왔을까? 그 원인을 나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나의 꿈 이야기를 그 시인들 허락도 없이 쓰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인들이 내 꿈속에 나타난 원인을 찾아보기 위해서 일단 사실대로 기록해 두기로 한다. 대강 기록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새들이 먼저 맛을 보았는지 감귤을 부리로 쪼아 먹은 흔적이 남아있다. 나도 황금향 하나를 따서 먹어본다. 황금향은 참으로 달고 맛있다.          


함민복 시인과 함께 오규원 선생님 나무를 찾아가는 꿈을 꾸기도 하고 여수에서 찾아온 갈무리문학회 시인들과 함께 한라산을 오르는 꿈을 꾸기도 하고 제주도 산방독서회 사람들과 함께 김도수 시인의 고향 진뫼마을과 (많은 사람들은 김용택 시인의 고향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김도수 시인의 고향으로 기억한다. 김도수 시인은 내가 아는 김인호 시인과 함께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김도수 시인의 고향 사랑은 꾸밈이 없고 깊어서 그의 곁에만 있어도 향기가 전해진다. 그에 비하여 김용택 시인을 생각하면 국화와 배상금 생각이 떠오른다. 어느 여름날 그가 심었다는 정자나무 아래서 수몰지 이야기를 하면서, 배상금을 많이 받으려면 국화를 심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김용택 시인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때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김용택 시인의 참모습을 잘 보지 못한다) 순천 낙안읍성 문학기행을 하는 꿈들을 꾸더니 드디어 이런 꿈까지 꾸게 되었다. 이런 꿈들은 어쩌면 나에게 다시 시를 쓰라는 계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1990년 1차 심장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만난 붉은여우 때문에 시를 쓰지 못한 이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시를 쓰라는 강력한 계시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산목련으로 변한 것은 어쩌면 그의 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나무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주로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와 정성껏 다시 살려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더니, 그는 나에게 한 가지 좋은 사업을 제안했었다. “나무 고아원 원장이 되어보면 어떻겠느냐?”라는 말을 하면서 각종 개발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나무들이 많다는 이야기와 구체적인 방법까지 말해주던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1차 심장 수술 후의 상황과 지금 2차 수술 후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나날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가 강해서 그때처럼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을 생각하고 그때처럼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1차 수술에 비하여 2차 수술은 더욱 심각하고 위험한 수술이었다. 1차 수술은 판막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대동맥 판막 아래 있는 혹 하나만 떼어내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2차 수술은 타격이 크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바로 그때 나는 병원에서 생중계를 보았다. 심장내막염 때문이었다.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나는 1차 수술 후에 병원에도 가지 않고 관리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무리하여 심내막염에 걸리고 말았다. 패혈증의 일종인데 참으로 위험한 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보통 사람들은 잘 걸리지 않는 병인데 심장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잘 걸리는 병이라고 하였다. 심장에 칼을 한 번 댄 사람은 그 상처에 병균들이 잘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대동맥판막 부분에 병균들이 달라붙어서 염증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동맥판막이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대동맥판막뿐만 아니라 승모판막까지도 상처를 입었으나 다행히 승모판막은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지 않고 성형수술만으로 가능해서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기계판막으로 바꾸면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나의 경우는 수술받을 때 곁에 있던 환자가 대동맥이 찢어져서 인공대동맥으로 바꾼 환자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나도 혹시 대동맥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참 많다.


만약에, 내 몸속에 들어있는 기계판막이 불량품이거나 다른 이유로 두 개의 날개 중에 하나라도 이탈된다면, 그 이탈된 날개는 칼이 되어 나의 대동맥을 찢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내 곁 침대에서 고생 많았던 그 대동맥환자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퇴원한 후에도 그분은 중환자실을 드나들며 많은 고생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옛날 것들이 더 좋다. 천성이 촌스러워서 현대적인 것들보다 예스러운 것들이 좋은 촌놈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것들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나의 길을 조용히 만들어 갈 뿐이다. 물론 자연은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요즘 제주도 자연이 많이 파괴되었다. 유입 인구의 급증으로 제주시는 거의 서울을 닮아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머리를 맞대고 좋은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의 자연보전을 위하여 통일을 하지 말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밝은 눈이 필요하고 현명한 정책들이 요구된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하여 내 몸까지 뜯어고친 사람이다. 심장에 칼을 들이대고 급기야 심장 안에 금속까지 설치한 기계인간이다. 이런 내가 어찌 무작정 개발을 반대할 수 있겠는가?


고양이들도 요즘에는 세월이 변해서 쥐를 잘 잡지 않는다. 아니, 쥐를 잡고 싶어도 예전처럼 쥐가 많지 않다. 사람들과 친해지거나 사람들이 버린 음식으로 연명하는 고양이들이 많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바뀌고 가옥 구조가 바뀌면서 쥐가 없어지므로 어쩔 수 없이 생존전략을 바꾼 것이리라. 짐승들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변하더라도 자연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현명하게 변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이 일은 어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들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적정이다. 오늘도 고양이가 나에게로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게 나를 보낸다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