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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30. 2023

너에게 나를 보낸다 01


너에게 나를 보낸다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25년 만에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 너에게로 간다.    






           





시인의 집이 시를 쓰고 있었다          



시인의 집이 글쎄 시를 쓰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도 시를 쓰고 있었다

검은 돌담에 푸른 담쟁이 가득했다

돌담에서 햇살의 파도소리 들렸다

조심히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푸른 잔디의 파도가 잔잔해졌다

뱀과 고양이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기 호랑이와 뱀이 놀고 있었다

감나무 아래서 시인의 어머니가

사시(斜視)로 시집을 읽고 계셨다

방에서 시인은 남포등을 켜고

타자기로 시를 두드리고 있었다

오래된 라디오는

그리운 성산포를 낭송하고 있었다

시인의 친구들은

카페로 리모델링한 창고에 있었다

우영팟에서는 감귤꽃 옷을 모두 벗은

어린 알몸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시인의 집은 조용히 시의 집이 된다   


       

깨달은 바가 있어서 책상부터 정리를 하고 쓴다          



이병률 시인의 작업실을 보고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우선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정리정돈이 중요하다. 마음의 정리정돈도 중요하지만 내 주위 환경의 정리정돈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지금껏 너무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했다. 달라져야만 하겠다.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면 진짜 중요한 것들이 쓰레기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것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들 때문에 소중한 것들이 묻혀서는 안 될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나의 평생 소망은 아름다운 숲을 가꾸며 숲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들의 고향 같은 그 아름다운 나라가 바로 <이어도공화국>이다.     


<이어도공화국> 가장 기본적인 사업으로는 다음과 같다.     

1. 사람이 태어나거나 공화국에 들어오면 그 사람의 나무를 한 그루 심어준다.

2. 그 아이가 성장하거나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의 나무를 스스로 돌본다.

3. 절망이 깊어지거나 슬픔이 많아지면 자신의 나무를 찾아와서 위로를 받고 회복한다.

4. 성년이 되거나 들어온 사람이 안정을 되찾으면 자신의 나무를 스스로 한 그루 더 심는다.

5. 대부분의 어른들은 두 그루, 자신의 나무를 돌보며 삶의 동반자로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6. 죽음에 가까워지면 나무 한 그루 베어 자신의 자서전이나 기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다.

7. 숲에는 무덤 대신 도서관이 있는데, 그 도서관에 죽은 사람들의 기록물들을 보관한다.

8. 죽음이 오면 살아서 함께했던 자신의 나무 아래서 자신의 나무로 새롭게 부활한다.

9. 가끔 조상들의 나무를 찾아와서 소풍을 즐기거나 나뭇잎 한 장 책갈피에 넣고 돌아간다.

10. 제사를 지내는 대신에 도서관에 와서 조상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삶의 지혜를 배운다.     


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잘 못 살아온 것들이 많다. 나는 부모님 걱정 때문에 25년 동안 선천성 심장병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홀로 쓰러지면서 별빛과 달빛에 너무 많이 젖었다. 어렵게 심장병과 이별을 하였으나, 나의 준비 부족으로 다시 심장병을 만났다. 더 깊이 생각하면 나는 어쩌면, 나와 다른 사람들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나와 이웃을 더욱 진심을 다하여 사랑해야만 하겠다.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이병률 시인의 작업실에 갔다. 깔끔하게 잘 꾸며진 작업실이 부러웠다. 특히, 창고를 개조한 카페 같은 부엌이 가장 부러웠다. 반성을 많이 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너무 학대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학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도 하루 종일 발전소 근무를 하였고, 퇴근하여 수국과 옥수수를 돌보았다. 농막에서 밤비 소리를 들으며 홀로 누워서 생각한다. 나의 작업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나의 숲과 나의 수국들이 있어서,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률 시인의 작업실은 이병률 시인을 닮았고, 나의 작업실은 나를 닮아서 편안하고 좋다. 보통 사람들의 집은 사람이 중심이고, 나무는 장식품처럼 몇 그루 있지만, 나의 집은 나무들이 주인이고 숲이 중심이다. 나는 새집처럼 아주 작은 방에 깃들어서 산다. 그래도 앞으로는, 나 자신에게도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나 자신에게도 더욱 감사하며 살아야만 하겠다.          



이병률 시인의 성산포 작업실에서          



이병률 시인의 성산포 작업실에 왔다. 나의 집은 제주시 외도에 있고 작업실은 마라도가 보이는 화순에 있다. 그러니까 성산포와는 정 반대쪽에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성산포 쪽에는 잘 오지 못한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이병률 시인과 연락이 되었고 이곳에 작업실이 있는 것도 알았다. 이병률 시인은 요즘 이곳에 잘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혹시나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여 이곳까지 1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왔다. 집은 사용을 하지 않으면 빨리 낡기 때문에 통풍이라도 시켜주고 싶어서 왔다.     


외국여행을 자주 하는 이병률 시인은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 자주 가지 못해서 이곳 제주도에 자주 온 듯하다. 이제 코로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니 다시 외국으로 나가면서 제주도 작업실은 잘 사용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작업실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있어서 더욱 놀랐다. 이병률 시인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이 작업실은 사실 제주도 오조리 시인으로 유명한 강중훈 시인의 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이라고 들었다. 길가에 있는 집으로 집 앞에 바로 주차장도 넓게 있어서 편리하고 좋다.     


푸른 담쟁이가 덮고 있는 돌담이 나를 맞는다. 이병률 시인이 알려준 방법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푸른 잔디가 깔려있다. 마당에도 돌담이 있고 왼쪽에는 돌담 너머로 감귤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문이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오른쪽 낮은 돌담 뒤에는 감나무와 벚나무가 있는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심하게 한 상태다. 감나무 아래 강중훈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바닥에 펼쳐진 책모양의 검은 돌에 새겨져 있다.           


어머니          


앞뜰

감나무 낡은 의자에

촉수로 매달린

물음표

살짝 비틀어

사시(斜視)로 쳐다보며 앉으신

당신     

               

               2014년 8월

               아들 강중훈 짓고 세우다.     


어쩌면 이 집은 강중훈 시인의 생가가 아닐까 혼자 생각을 한다. 나중에 이 집은 강중훈 시인의 문학관이 들어서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작은 집은 우리 시대의 시인을 탄생시킨 집이며 또한 현재도 이병률 시인의 작업실로 사용되고 있으니 시인의 집이 분명하다. 이렇게  귀하고 의미 있는 집이라면 아주 먼 훗날까지 시인의 집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이 집의 중심 건물인 안채가 보인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오른쪽 창고 건물로 먼저 간다. 문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 리모델링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바로 그 문 앞에 호피무늬 고양이 한 마리 햇볕을 쪼이고 있다. 내가 들어와도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작은 뱀 한 마리 지나가니 그 뱀과 장난을 치다가 그냥 보내준다. 어쩌면 뱀과도 친구가 아닐까 나 혼자 생각을 한다.

    

우선 마당과 우영팟을 둘러본다. 감귤나무 십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마당과 우영팟 경계에도 낮은 돌담이 쌓여 있다. 어쩌면 이 낮은 돌담이 좋아서 작업실로 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돌담이 참 예쁘다. 바깥쪽 빙 둘러 울타리도 돌담이고 마당과 우영팟 경계도 낮은 돌담으로 되어있다. 시인의 집답게 미적 감각이 살아있다. 작업실 책상에서 보면 왼쪽은 반달모양이고 오른쪽은 반듯한 돌담이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채부터 둘러본다. 어쩌면 제주도 전통가옥에다 앞에 방충망과 유리문을 나중에 추가로 설치를 했을 것만 같다. 유리문을 열면 좁은 마루가 나오고 중간에 대청마루가 나온다. 제주도 전통 가옥들은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에 방이 있는 구조다. 이 작업실 역시 그렇다. 기본적인 구조는 그대로 두고 화장실과 샤워실만 현대식으로 개조를 하였다. 첫인상이 영락없는 시인의 집이다. 책상과 책꽂이가 중심을 잡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고 성냥이 있고 잘 깎아진 연필들이 있다. 옛날 선풍기와 옛날 라디오 등이 장식품으로 있고 우리 세대의 시인답게 어여쁜 타자기가 있다. 책상에는 세워진 도마가 있고 잘 깎아진 연필들이 스스로 어둠의 중심을 녹여서 천정에 시를 쓰고 있다.     


병률 시인의 작업실에서 가장 신경을 쓴 곳이 부엌이 아닐까 싶다. 이병률 시인은 요리를 좋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을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는 소문이 있다. 창고를 통째로 부엌으로 개조해 놓았다. 부엌이라기보다는 작은 카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병률 시인은 역시 멋진 시인이다. 이렇게 멋진 시인이 나의 친구라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럽다. 여기는 영업집이 아니라 창작의 공간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고 참으로 나는 좋다.



                                             

      


* 추신 : 추천의 글을 써주신 이병률 시인에게 격하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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