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72주년 추념 시화전 원고 청탁이 왔다
몇 년 전에 < 제주-베트남 평화시집 >에 원고를 보낸 적이 있다
보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도 참 무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보낸 원고를 다시 찾아본다
「폭낭과 야유나무」를 다시 읽어본다
이번에는 좀 신경을 써서 원고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는
「가슴이 넓은 나무」 - 메모
「폭낭과 워싱턴야자수」 - 1차 수정
「폭낭과 야자수」 – 완성(?)
「폭낭과 야유나무」에서 출발하여 「폭낭과 야자수」까지
나는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중이다
폭낭과 야자수 / 마지막 수정 중
제주도 팽나무와
워싱턴 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가지 많은 나무가 허리도 펴지 못하고 그늘을 가꾼다
벌레들에게도 젖을 물리며 숨소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가지 하나 없는 나무가 하늘 높이 탑만 쌓아 올린다
우리들의 하늘을 함부로 들쑤시고 있다
붉은 해가 솟는다
워싱턴야자수 그림자가
팽나무 가슴을 관통한다
붉은 해가 기운다
가슴이 넓은 나무가
홀쭉한 나무를 가만히 안아준다
* 폭낭 : 팽나무의 제주도 방언
배진성 1988년《문학사상》《동아일보》등단. 시집 『땅의 뿌리 그 깊은 속』,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지상에서』,『길 끝에 서 있는 길』, 『꿈섬』.
전자우편 : yeardo@naver.com
폭낭과 워싱턴야자수 / 1차 수정
제주도 팽나무와
워싱턴 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가지 많은 나무가 허리도 펴지 못하고 그늘을 가꾼다
가지 하나도 없는 나무가 하늘 높이 탑만 쌓아 올린다
벌레들에게도 젖을 물리며 숨소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우리들의 하늘을 들쑤시며 함부로 붓질을 해대고 있다
워싱턴야자수 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키 큰 야자수 그림자가 팽나무 가슴을 관통한다
제주도팽나무 쪽으로 해가 기울어진다
넓은 팽나무 그림자가 홀쭉한 야자수를 안아준다
워싱턴 야자수와
제주도 팽나무가
나란히 눕는다
가슴이 넓은 나무 / 메모
폭낭과 워싱턴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붉은 해가 솟는다
워싱턴야자수 그림자가
폭낭 가슴을 관통한다
붉은 해가 기운다
가슴이 넓은 나무가
홀쭉한 나무를 안아준다
* 4월 1일부터 제주4․3평화공원 문주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시화는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 하나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완성될지 아직은 모른다. 우선 메모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4․3이라 말하지 않고 3․1절 발포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외치던 3․1정신을 향해 발포한 미군정, 그리고 무자년 겨울의 초토화 작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는 그런 적군까지 용서하고 안아줄 수 있는 가슴 넓은 민족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이고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겠는가?
<제주-베트남 평화시집>
폭낭과 야유나무 / 배진성
당산나무가 나를 업어 키웠다
제주도 폭낭들은 오늘도
허리가 휘어지도록
바람을 업어 키우고 있다
북촌리 폭낭은 그날을 잊을 수 없다
1949년 1월 17일
그날 보았던 일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당산나무에 임산부를 매달고
대검으로 찌르는 것을 보았다
총탄에 쓰러진 시체 더미 속에서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
피의 가슴을 빨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피가 솟아나는 순간
천둥소리가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그 미친(美親) 바람은 바다까지 건너갔다
야유나무를 한 번 휘감고
퐁니를 거처 퐁넛으로 달아났다
제주도 폭낭처럼 베트남의
그 퐁니 마을 야유나무도 똑똑히 보았다
총소리를 보았고 천둥소리의 뼈를 보았다
1968년 2월 12일 아침
야유나무는 야유나무 학살을 모두 다 보았다
탐라국 폭낭들이 보았고
참파왕국 야유나무가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당산나무들이 오늘도 똑똑히 보고 있다
당산나무는 어미가 되고 싶다
당산나무는 다만 어미가 되고 싶다
당산나무는 이제 다시 어미가 되고 싶다
웃는 아이들을 업어서
웃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어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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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제주작가회의 사무처장 홍경희입니다.
제주작가회의는 제주 4•3 72주년을 맞이하여
올해도 ‘제주 4•3 72주년 추념 시화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원고를 청탁드립니다.
바쁘시더라도 옥고를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주 4.3 72주년 추념 시화전 원고 청탁서>
1. 장르 : 시·시조 등 운문 분야
2. 작품 주제: 4•3정신, 화해, 상생, 인권, 평화 등을 소재로 한 신작
3. 원고 분량 : 시·시조 – 1편
4. 원고 마감 : 2020년 3월 1일
(시화 이미지 편집 및 시화 제작 기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마감 기일은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5. 원고 형식 : ‘하ᆞ간글’문서로 작성하여 E-mail로 보내주십시오.
6. 보내실 곳 : E-mail jejugod@hanmail.net(홍경희)
7. 문의 : 제주작가회의 사무처장 홍경희(010-7743-2243)
8. 작품은 4월 1일부터 제주4.3평화공원 문주에 전시할 예정입니다.
9. 죄송합니다만, 예산 사정상 원고료는 지급되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다만, 작품집을 발간하게 될 경우 개별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 원고 끝에 약력과 주소 및 연락처를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약력은 ‘등단년도, 등단지, 작품집, 수상 경력’순으로 간략하게 작성하여 주십시오.
※ 또 단행본은 『』, 개별 작품은 「」로 표시하여 주시고, 한자(漢字)는 가급적 괄호 안에 넣어서 표기해 주시면 편집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 작품 교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않고 있으니, 완성된 원고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집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여 뒤늦게 찾아본다.
제주·베트남을 잇는 아픔, 문학으로 치유한다 /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제주의소리 승인 2015.02.02 14:07
제주문학의 집, 국내 최초 베트남어 시집 양국어 번역 발간
수 만 명의 도민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제주,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수 백 명이 숨진 베트남 꽝아이. 역사적인 아픔을 공유한 두 지역이 문학으로 교류하는 뜻 깊은 행사가 마련됐다.
제주문학의 집은 제주와 베트남 시인 78명이 참가한 공동시집 <낮에도 꿈꾸는 자가 있다>를 최근 발간했다고 밝혔다.
2014년 국제문학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공동시집은, 한국 문학계 최초로 양국어로 번역 발간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1월 5일에는 베트남 꽝아이성 현지에서 제주 작가들과 베트남 작가들이 함께 모인 발간기념회를 개최한 바 있다.
베트남 꽝아이성 반호아 지역은 1968년 1월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에 의해 5개 마을에서 민간인 430명이 학살당한 지역이다.
전쟁을 겪은 베트남 작가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시 작품 속에서는 진정한 평화를 소망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4.3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도민들이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베트남 탄 타오 시인은 발간사를 통해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고 세계인들의 ‘사랑의 천당’이 된 고향 제주를 칭송하는 시들이 가득 울려펴지기를 바란다”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제주문학의 집 작가들의 공동 발간사에서도 “제주와 꽝아이 모두 성격은 다르나 비극적 역사의 아픔을 겪으며 남겨진 상흔이 새겨져 있는 곳”이라며 “그 상처를 극복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제주와 꽝아이 시인들이 함께 한 발걸음이 그래서 더욱 소중한 까닭”이라며 공동시집이 양 지역의 따뜻한 우정의 징표가 되기를 기원했다.
제주문학의 집 관계자는 “국제문학교류 행사를 통해 제주의 작가들에게 보다 많은 창작 모티브의 제공과 문학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서출판 심지, 1만원
제주 폭낭과 베트남 야유나무 / 고영직
한겨레 신문 등록 :2015-04-03 18:41
베트남 시인 탄타오는 노래한다. “1848제곱킬로미터 / 270,000 인구 / 30,000명 피살 / 1948년 4월3일”. 2008년 4월4일 제주도를 찾은 탄타오 시인이 제주 진혼굿 무당이 연출하는 해원굿을 보며 쓴 시의 부분이다. 위 대목 바로 다음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돌아가라 돌아가라 / 제주 예수 / 십자가에 못 박힌”.
이에 제주 시인 김수열은 화답한다. 베트남 꽝응아이 외떨어진 바닷가 마을에서 통일전쟁에서 한국군과 맞서 싸우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사람을 만난 경험을 시로 표현한다. 김수열 시인은 “해거름에 탄타오 시인을 만나 / 그 사람 이름을 묻지 못했다 하니, 시인은 / 그 이름을 ‘꽝아이’라 하자 한다 / 강물은 쉼없이 흐르고 / 별빛 또한 유난히 깊은 밤이었다”라고 시를 끝맺는다. 김수열이 쓴 시는 한국과 베트남 시인이 공동으로 쓴 합작품인 셈이다. 상상력의 국제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제주 작가 38명과 베트남 꽝응아이성 작가 38명이 십년 가까운 내면의 문학교류를 결산하는 차원에서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된 공동시집 <낮에도 꿈꾸는 자가 있다>를 제주문학의집에서 출간했다. 1948년 4·3의 슬픈 기억을 간직한 제주 작가와 전쟁의 참화를 겪은 베트남 꽝응아이성 작가들의 만남은 각별했다. 베트남 작가들은 아름다운 땅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이 겪은 국가폭력의 상처에 대해 이해했고, 제주 작가들은 한국군의 피와 야만이 스며 있는 베트남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더불어 시적 정의(Poetic Justice)를 구현하는 기회가 되었다. 제주와 꽝응아이 모두 한국과 베트남에서 서울과 하노이(또는 호찌민) 같은 ‘주류’적 질서로부터 떨어진 변방 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제주와 꽝응아이 작가들은 4·3과 전쟁에서 죽은 원혼들을 위무하며 ‘원통한 죽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원통한 죽음은 애도가 결여된 죽음이다. 애도가 결여된 죽음은 사색과 기억, 행동과 의례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사회·문화적 과정을 지연시킨다. 인류학자 권헌익은 1968년 베트남 하미 마을과 밀라이 마을에서의 학살 문제를 다룬 <학살, 그 이후>(2012)에서 베트남의 전쟁 기념의 경우 “국가 독점에서 민간과 공동체 부문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미와 밀라이는 각각 한국군(1968.2.22)과 미군(1968.3.16)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진 곳이다.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일어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고경태의 <1968년 2월 12일>도 최근 출간되었다. 구수정, 김현아 같은 활동가들은 베트남전의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지금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제주 시인 배진성의 <폭낭과 야유나무>는 상상력의 국제연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1949년 1월17일 제주 북촌리 폭낭(팽나무)과 1968년 2월12일 베트남 퐁니 마을의 야유나무를 연결해 시적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시인은 말한다. “탐라국 폭낭들이 보았고 / 참파왕국 야유나무가 보았다”라고. 어쩌면 이것이 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는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에의 책임이 아닐까. 오는 4월30일 종전 40년을 맞아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2명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게 된다.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원통한 죽음을 잊을 권리는 없다.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연약한 부위가 ‘귀’라고 한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죽음은 애도와 위로를 받을 절대적 권리가 있다는 말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가장 존중되어야 하지만, 철저히 묵살당하는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아니한가. 죽어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기억하자. 산 자의 ‘넋두리’를 들어줄 줄 아는 작가적 가슴이 요청되는 잔혹한 사월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나른한 권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사랑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오늘 나는 흔들리는 깃털처럼 목적이 없다
오늘 나는 이미 사라진 것들 뒤에 숨어 있다
태양이 오전의 다감함을 잃고
노을의 적자색 위엄 속에서 눈을 부릅뜬다
달이 저녁의 지위를 머리에 눌러쓰면 어느
행인의 애절한 표정으로부터 밤이 곧 시작될 것이다
내가 무관심했던 새들의 검은 주검
이마에 하나 둘 그어지는 잿빛 선분들
이웃의 늦은 망치질 소리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
규칙과 감정 모두에 절박한 나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에 젖었는지 잊었다
오늘 나는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
다음 주의 욕망
다음 달의 무(無)
그리고 어떤 결정적인
구토의 연도
내 몫의 비극이 남아 있음을 안다
누구에게나 증오할 자격이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오늘 나는>을 나는 권태에 관한 시로 읽는다. 흔들리는 깃털이 목적 없듯이 오늘을 통과하는 내 삶에 어떤 목적이 없다. 해는 떴다가 지고, 낮이 간 뒤 밤은 온다. 수억 년 지구 위에서 되풀이해 온 새로울 게 없는 사실이다. 되풀이는 권태를 불러온다. 이 시는 권태의 나른함으로 가득 차 있다. 권태에 사로잡히면 목적에 대한 열정은 휘발하고 욕망은 그 부피가 준다. 권태의 유일한 덕목은 분노와 증오마저 누그러뜨려 외견상으로는 주체의 관용이 커진 듯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욕망의 부피가 줄었기에 무욕한 인간으로 비치기도 할 것이다. 실은 관용이 아니라 무욕함이 아니라 그 일체에 대한 나태와 피동성에서 빚어진 사태인데 말이다.
내가 무관심했던 새들의 검은 주검
이마에 하나 둘 그어지는 잿빛 선분들
이웃의 늦은 망치질 소리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
새들의 검은 주검이나 이마에 느는 주름들, 그리고 늦은 밤 이웃집에서 벽에 못 박는 망치질 소리…. 이것들은 삶의 표피에서 일어나는 거품들에 지나지 않는다. 잠깐 이마를 찌푸렸다가 푸는 순간 그 거품들은 지나간다. 세계에 대해 피동적인 사람이 그나마 반짝, 하고 열정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대할 때뿐이다. 사람이란 언제나 자기 영혼의 가장자리를 따라 여행하는 존재인 것이다(니코스 카잔차키스). 지구의 끝,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기 영혼의 내부를 벗어나지 못한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새로운 풍물이 아무리 넘치더라도 결국은 “우리 존재의 필요와 호기심에 가장 잘 부응하는 것들만” 선택하고 받아들인다. 보라, 시인은 다음과 같이 그 잠언을 새기고 있다. “나는 지상에 태어난 자가 아니라 지상을 태우고 남은 자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최후의 움푹한 것이다. 환한 양각이 아니라 검은 음각이란 말이다. 나의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신화들을 읽은 후 비탄에 젖어 일생을 보내다가 죽은 후 다음 생에 최고의 전기 작가로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명심하라. 그 운명을 점지하는 자도 바로 나다.”(<아이의 신화>)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에 젖었는지 잊었다
권태는 자기방기며, 결과적으로 책임과 의무에 대한 면죄부를 만든다. 어떻게? 망각으로써. 잊는다는 건 삶의 텅빔에 대한 소극적인 부정의 한 방식이다. 공허와 뜻 없음, 실망과 오류들을 잊음으로써 마치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멀리 도망간다. 지난 시절, 죽은 친구들, 소소한 번민들을 잊음으로써 그것들을 과거라는 무덤 속에 묻고 새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새 삶이라고? 그렇다. 이 시는 끝에 놀라운 반전을 숨겨 놓았다. 만사가 재미없음, 혹은 시들함이라는 징후들을 늘어놓으며 나른하게 펼쳐지던 이 권태의 시는 끝에 가서 팽팽한 긴장으로 조인 사랑의 시로 바뀐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애절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시의 화자는 돌연 사랑을 찾음으로써 권태와 망각이라는 종교에서 세상으로 환속한다. 그것은 개종이고 환속이다. 머잖아 나태는 열정으로, 무욕의 느릿함은 욕망의 사나운 질주로 바뀔 것이다. 사랑은 세계를 욕망해야 할 분명한 동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식후에 이별하다>) 사랑이 때때로 무도덕이나 무분별로 빠지는 것은 그것이 세계에 대한 절박한 욕망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심보선(1970~ )은 서울 사람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오고 콜럼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고, 올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가 나왔다. 심보선에 대해 아는 바는 이것이 전부다.
나는 심보선을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시집을 따라가면,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뒤늦게 초급영어를 배우는 중이다. 그는 장남이다. 그것도 “크게 웃는 장남”(<웃는다, 웃어야 하기에>)이다. 그는 장남으로서 “애절함인지 애통함인지 애틋함인지 모를 / 이 집안에 만연한 모호한 정념들”과 싸운다. 그의 장모는 “모국어를 그리워하고 있을 사위에게”라고 시집 속지에 쓴 황지우 시집을 유학 중인 사위에게 부쳐 주었다. 그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그 시집을 읽었다.
그는 대학 다닐 때 데모 한 번 한 적 없는 아내와 함께 산다. 아내는 좌파가 아니면서도 그의 좌파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에 기댄다면, 그는 좌파다. 사회운동가인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에서 온 좌파 급진주의자로 오해”(<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를 받는 좌파다. “나는 씨익, / 웃을 운명을 타고났기에 씨익, / 한번 웃으면 / 사나운 과거도 양처럼 순해지곤 합니다”(<편지>)라는 시를 보면 순하고 낙관적인 좌파다.
글쓴이 장석주님은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다. 그동안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붉디 붉은 호랑이》, 《절벽》 등의 시집을 내고, 《20세기 한국문학의 모험》(전 5권)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생방송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고 있다.
* 《topclass》2008년 08월호